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48) "오늘의 나는 과연 알일까, 애벌레일까?"
입력 : 2018-03-01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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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과연 알일까, 애벌레일까?”
대길이 이야기 – 먹부전나비
어느 겨울 아침 거실에서 먹부전나비를 만난다. 이 한 겨울에 대체 무슨 일이지?
마당에 있다가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따라 들어온 걸까? 어쩐다지? 먹을 게 없으니? 과일즙이라도 먹어보라고 사과를 내놓고선 이 녀석을 눈으로 따라다니며 엄청 즐거워했다. 어라?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 세 마리?
까닭은 둥근잎꿩의비름에 있었다. 꿩의비름과나 돌나물과를 먹는 먹부전나비들이 둥근잎꿩의비름에 알을 놓아둔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내놓았던 화분들을 겨울 들어 안으로 들여놓으니 그네들도 함께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나야 할 애들이 집안 공기가 따뜻하니 봄인 줄 알고 부랴부랴 번데기가 되어 우화했나보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나비들은 계절에 맞춰 태어난 애들보다 훨씬 힘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설탕물을 타주고 해보아도 날갯짓이 활발하지 않다. 눈 뜨고 일어나면 그네들과 내내 숨꼭질이다. 그네들을 찾는 게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이젠 해마다 화분을 꼼꼼히 살펴보곤 한다. 또 다른 만남을 꿈꾸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을 생명들이 또 있을 법! 한 생의 주기를 지켜보고픈 기대로 내 마음은 설레임 가득하나 때를 맞추지 못하게 된 그네들에겐 어쩌면 불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곧 우화할 번데기를 발견한다. 연둣빛 번데기가 까맣게 변한걸보니 우화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지켜보기로 한다. 밤 11시, 다음 날 아침 6시,11시, 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이 다가도록 번데기는 열리지 않고 있다.
눈이 쓰리고 머리가 휑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으면서도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앗! 번데기 아랫부분 안에서 노크를 하는듯한 작은 움직임이 보인다. 드디어 우화가 시작되고 있다. 역시 머리부터 나오고 있다. 더듬이도 보인다.
한 세상이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순간을 나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날개가 빠져나오며 번데기는 텅 비어 간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만들어낸 번데기는 이제 그 역할이 끝난 것이다.
오늘은 마침 입춘 날, 한 해의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는 날에 태어난 먹부전나비이다. 딸아이가 입춘대길을 이야기하며 이름을 대길이로 지어 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켜본지 18시간 만에 번데기에서 나온 대길이는 날개를 잘 펼치지 못했다. 아, 우화부전인가보다. 우화부전은 일종의 장애인 것이다. 내가 혹 뭘 잘못한 것일까? 그저 끝없이 지켜본 것일 뿐인데 대길이 날개는 왜 펼쳐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알, 애벌레, 번데기 그 어느 과정 중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대길이는 나비로 태어나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나는 대길이를 둥근잎꿩의비름 화분에 다시 묻어 주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대길이가 날개를 가진 나비로 생을 끝냈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대길이는 대체 어느 과정에서 장애를 얻은 것일까. 알에서부터 그 어느 한 과정이라도 무사히 건너지 않고서는 결코 나비로 태어날 수가 없다. 지금 앞에 주어진 이 순간을 잘 살아내지 못하면 다음의 세상은 맞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알의 상태로, 애벌레의 상태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에게라도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모든 과정들이 소중하다. 나에게도, 나비에게도, 당신에게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이유인 것이다. 만일 내가 나비라면 오늘의 나는 과연 알일까, 애벌레일까, 번데기일까? 찬란한 날개를 꿈꾸며 나의 순간순간들에 온 마음을 다하고자한다.
숲 해설가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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