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 <20> 엄마의말뚝,조금더넓혀보는것은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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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와 언니들을 낳지 않았다면,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텐데. 초등학교를 다니던어릴 적부터 늘 생각했다. 고학년이 되어 언니들과 대화를 나누다 언니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걸 알았다. 죄스럽거나 미안하기보다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엄마는 똑똑했고, 공부를 좋아했으며, 우리를 키우는 와중에도 틈틈이 지역 사회에 참여하는 열성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언니들이 없이 그대로 사회에서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너희를 키우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다고.” 엄마는 자신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되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더 전문적이고 중요한 일이 있다 믿었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읽고, [발레하는 남자 권투하는 여자]의 6장 ‘모성은 본능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완독하고 난 후에야 나는 엄마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의 말뚝] 속 엄마는 가부장 시대의 가모장으로서 아들과 딸이 공부할 수 있도록 억척스럽게 뒷바라지를 맡는다. 이런 어머니상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가장 많이 봐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체에서나 생활문화 속에서 ‘보살핌 노동’을 천대해왔기에 나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 말한 것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발레하는 남자 권투하는 여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가 불안하고 불안정할수록 희생적인 모성이 강조됩니다.” 엄마들은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맞벌이 시대에는 좋은 일꾼, 좋은 동료로서 일해야 한다. 교육, 양육, 사회에서 제공하는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한데 비해 요구되는 능력은 너무나 많다. 육아의 책임을 ‘엄마’에게만 지우는 문화가 변해야 한다.
“집에서 놀면서 애 하나 제대로 못 보냐”. 이 역시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을 가벼이 보는 말이다.‘아이를 보는 것’을 집안일의 일환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엄연히 다를 뿐더러, 두 일 모두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여길 정도로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여성에게 선택의 권리를 주지 않고 노동의 카테고리에서 아예 육아를 지워버리는 것, 그리고 육아에 헌신하지 않고 일자리로 돌아온 여성을 욕하는 문화. 이 두 가지 모두 ‘모성 본능’이라는 사회의 강요이다. 이 강요된 모성이 사라지고 여성에게 씌워진 짐이 덜어질 때야 말로 사회적 모성이 눈뜬다고 이 책에서 말한다. 사회적 모성은 보편적 보살핌으로 설명된다. 쉽게 말하면 아이를 사회 전체가 키운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보살핌 노동’의 대우 개선과 정착이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엄마에게 나를 낳지 않았으면 엄마는 더 위대한 일을 했을 거라고 말할 때만 해도 나 역시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낮게 두었던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아이 때문에 커리어가 막히고, 발목이 잡힌 여성들이 수도 없이 많으며, 그런 엄마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을 갖고 사는 자식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출산과 육아로 여성의 커리어가 막히는 것은 여성의 책임도 자식의 잘못도 아니다. 사회적 모성, 즉 사회가 아이를 키우면 결국 여성이 아이를 낳고도 꿈을 이루는 어쩌면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조은현 「파주에서」 틴 청소년기자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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