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64) 프랑스 부부작가 다니엘과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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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64
프랑스 부부작가 다니엘과 모리스
(사)문화예술나눔이 놓은 예술의 징검다리에서 프랑스작가를 만나다
지난 8월 26일 헤이리 예술마을 ‘With Artist 갤러리’에서 다니엘 마리와 모리스 마리의 전시회가 열렸다. 20여 작품을 전시한 이 전시회 제목은 ‘자연 속의 우울한 경계와 조망’. 전시회를 연 다니엘과 모리스는 프랑스 화단의 중견 작가이다. 이 부부작가는 (사)문화예술나눔에서 매년 추진하는 8주간의 한·불작가 교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와서 작품활동을 하고 전시회를 연 것이다.
원로들의 예술 사랑- 봉일천고 지원에 이어 한·불 작가 교환 레지던시
(사)문화예술나눔(대표 정지태, 대한의학회 부회장, 고려대 의대교수)은 민간인들이 모여 예술을 지원하자고 뜻을 모아 2009년에 만든 사단법인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 민간인들이 예술을 지원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은 무겁지 않게 시작되었다. 10여명의 사회원로들이 ‘우리가 사회를 돕는 일’중의 하나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해보자’며 매월 10만원씩 내기로 했다. 매달 100만원씩 모이는 돈으로 예술행사를 개최하였다.
2010년부터 3년간은 파주 봉일천고등학교 미술반 등 지역 예술 교육활동을 지원했다. 어느날 파주 봉일천고등학교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미술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던 데에는 이 (사)문화예술나눔의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2012년부터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진 유토피크(Usine Utopik)’ 단체와 협력하여 한국과 프랑스의 화가 교류를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매년 한·불 작가 1명씩을 8주간 상호 교환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작가의 주거와 생활비, 재료비를 부담하고, 도록 제작을 포함한 전시회도 열어 주고 있다. 다니엘과 모리스는 이렇게 초대받아 한국땅 파주, 헤이리에 깃들어 6주를 보냈다.
짧은 6주, 전시를 못할까봐 걱정
작가에게 6주는 아주 짧은 기간일 것이다. 두 분은 모두 잠시 지내기에 적당하다며, 연구와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시를 하는데 보통 1년에서 2년정도 연구 및 준비 시간을 가져요. 새로운 재료나 방식을 찾는데요. 그러나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연구 및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다니엘 : “화가의 관점에서 6,7개월이상 하나를 탐구하는 것도 다반사에요. 무언가 시간을 정해두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치밀하게 계획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는 계획성 있게 물감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전시를 끝내지 못할까봐 많이 걱정했어요.”
‘자연 속의 우울한 경계와 조망’ 전시회
“이번 전시는 두 작가가 남한과 북한 땅이 임진강을 경계로 접해 있는 한강 하구와 임진강변 등을 둘러보고 자연의 한 가운데에 있는 헤이리에서 작업하면서 느낀 인상을 작가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니엘과 모리스는 비무장지대(DMZ)를 끼고 있는 접경지역을 ‘우울한 경계와 벽’이라고 현실적인 진단을 하면서도 결국 ‘자연의 풍요로움이 미래를 밝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술적 해석을 다니엘은 그의 독특한 소묘와 회화 방식으로, 모리스는 종이를 활용, 조각처럼 만든 미니멀니스트적인 설치작품으로 조형화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주관한 (사)문화예술나눔의 박옥희 운영위원의 소개말이다.
전시회 제목과 도록이 주는 무게감과 달리 부부는 경쾌했다. 밝은 표정으로 만나 야외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무겁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려대 한지균 학생이 인터뷰어로 나서주어, 파주를 찾은 프랑스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 계시면서 어려운 것이 없었냐는 질문에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편안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모리스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다며 “더 오래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분 모두 고기를 많이 먹지 않고, 아시아 요리와 생선을 좋아하고, 채소가 많이 든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완벽’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사)문화예술나눔의 회원이신 박종일님으로부터 매일 아침 6시에 국선도를 배우고, 다양한 그룹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저희는 평화가 있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한국의 ‘경계’와 유럽의 ‘테러’
이곳 헤이리에서 프로방스쪽으로 조금만 나가도 북한이 보인다. 그리고 북한의 대남방송도 들린다. 두 분 모두 대남방송을 들었다한다.
부부 작가가 선택한 주제는 ‘경계’였다. 어려운 주제이다.
다니엘은 우리나라의 경계와 갈등 문제를 스페인의 테러와 연관지어 말했다.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충돌과 갈등을 경험해요. 그래서 한국의 경계(국경)문제도 스페인에서의 테러와 같이 유럽에서 겪는 문제와 다르지 않아요. 유럽에서의 이러한 갈등이 저희에게 크게 다가오듯이 한국에서의 문제 또한 크게 다가왔어요.”
모리스가 말을 이었다. “프랑스에서도 한국과 북한의 경계(국경)문제를 많이 이야기해요. 북한의 지도자들 이야기도 매체에서 많이 다루죠. 그런 정보들을 떠나서, 처음 이 곳을 편견 없이 바라보았을 때 본 것은 벽, 경계(국경)였어요.”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저희도 이러한 사실을 잊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니 저희도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다니엘과 모리스 모두 경계속에서 경계를 잊어버린다는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도 항상 반대편에서만 보게 되죠. 가족, 친척들의 무거운 과거를 통해 보게 되니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죠.”
“경계는 미래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지균 : 또 다른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경계(국경)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 다는 것이죠. 역사적으로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연결하여 생각해야 되는 문제죠. 그러한 면에서 북한사람들과 소통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혹시 모르죠. 나중에 통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니엘 : “저희는 많은 갈등이 있지만 사실 갈등 중에는 유럽의 갈등이 크게 다가왔죠. 하지만 갈등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싶었어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죠. 벽이죠.”
한지균 : “나라 사이의 벽도 있지만 범위와 영역을 달리하면 사람 사이의 벽, 사상 사이의 벽, 경계 등 다양하죠.”
다니엘 : “한국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일반론적으로도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어요. 더불어 전시에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고요함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색깔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전시를 보았을 때, 고요를 느끼고 평안을 느끼기를 바랬어요. 마치 아침에 산책할 때 자연을 느끼는 것처럼요. 전시에서 이러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모리스 : “또 작품들이 처음에는 거칠지만 평화, 평안을 향해 나아가요. 희망을 향해 나아가요.”
다니엘, 모리스 : “저희는 매우 낙관적이에요.”
다니엘 : “한국의 문제와 유럽의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었어요. 모두의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저희도 이 문제에 매우 관련되어 있어요.”
모리스 : 저희는 평화가 있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헤이리 예술마을은 그 자체로 특별함
전시와 작품을 떠나 한국, 파주, 헤이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헤이리 예술 마을은 그 자체로서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어요. 자연, 식물들 한가운데 만들어진 수많은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이 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이러한 부분은 매우 이례적인 것 같아요.” 모리스가 헤이리 예술마을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이례적이다는 표현이 낯설었다.
부부작가는 헤이리에서 ‘아이들이 주말이 부모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책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프랑스에는 이렇게 책이 많은 곳이 없거든요. 여기는 책이 모든 곳에 있어요. 카페에도...”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프랑스에서는 정해진 곳에만 있거든요. 도서관, 서점이나 문화적인 거리에나 있거든요. 더불어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인터넷이 등장해서 젊은이들이 점점 더 책을 덜 읽죠. 만화 같은 것을 많이 읽어요. 소설을 읽는 것은 다른 세대의 일이 되었어요. 그래서 책이 많은 곳을 만나서 더욱 놀랐어요. 모리스와 함께 파주 북시티를 갔는데 매우 큰 인상을 받았어요.”
모리스가 덧붙였다. “한 쪽에는 책이 있고, 다른 쪽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었어요. 이 곳 사람들은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프랑스는 그렇지 않아요. 이 정도는 아니에요.”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항상 핸드폰이 손에 쥐어 있어요.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핸드폰을 보고요.”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다는 인터뷰어의 말에 모두들 크게 웃었다.
다니엘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국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한국 하늘이 프랑스보다 멋있지 않냐는 질문에, 다니엘은 한국의 하늘이 빛이 다른 것 같지만 더 예쁘다고 할 수 없다 했다. 자신들이 해안가에 살기 때문에. 하지만 “안개가 껴있는 지평선은 여기에서만 볼 수 있다”며 다니엘이 한국의 풍광에 대해 칭찬을 하자, 모리스도 덧붙였다. “이 곳의 풍경은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요.”
한국의 소주는 너무 쎄다며 혀을 내두르며, 금촌 5일장에서 맛보았던 ‘호박식혜’를 좋아했다고 다니엘이 말했다.
다니엘은 종이작업을 하고 있어서 한지에 관심을 보였다. 한지 제조 공정을 인터넷에서는 보았지만, 직접 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6주간 작품활동에 전력하느라 아직 한국을 다 맛보지도 못한 작가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한국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과연 프랑스 예술가들은 어떤 단어를 뽑아들까?
모리스는 ‘고요’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두 단어를 썼다. “저도 고요 혹은 친절함인 것 같아요. 고요가 저희를 파고들었고 친절함도 저희에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들과 인터뷰를 끝내고 ‘고요’와 ‘친철’이 어디서 왔을까 잠시 고민했다. 오랜 관행과 부조리와 억압을 벗어나려고 국민들의 촛불이 넘실대고 있는데.... 사실 이 뜨거운 변화의 물결은 변함없이 도도히 흐르는 ‘고요와 친철’이란 심성에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억지 생각을 해보았다.
다니엘과 모리스 부부에게 ‘고요’와 ‘친철’이란 이미지를 준 헤이리 (사)문화예술나눔 사람들과 헤이리의 모든 풍광, 안개와 공기,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경계인 북한땅까지도 고마웠다.
글 사진 임현주 기자
<작가 소개>
다니엘 마수-마리(Danièle Massu-Marie)
회화와 소묘 사용
다니엘의 작품은 하나의 시선, 여러 감정, 자연과 예술 사이의 교류로부터 시작하고, 다양한 재활용 종이를 활용해 자신의 작품에 풍경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다니엘 마수-마리(Danièle Massu-Marie)의 “파편(éclats, 조각, 표출, 섬광)” 연작(시리즈)에서 빈약하고 긁히고 뚫리고 찢어진 종이는 잔혹한 풍경을 표현합니다. 그 풍경 속에 있는 단 하나의 하얀 꽃[개양귀비꽃]은 우리를 사로잡는 고요 또는 허무에 하나의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개양귀비(coquelicots)” 꽃밭[연속된 개양귀비꽃 작품]의 섬세함과 연약함은 황폐한 땅과 혼란을 사라지게 합니다.
<작가소개 >
모리스 마리(Maurice Marie)
- 모리스 마리는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수거한 재료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는 이 재료를 자연의 동반과 빛의 유희라는 관점에서 설치미술의 형식으로 본래의 환경에 재투입합니다. 이어서 그는 작업실에서 이 재료들이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 작업을 진행합니다.
모리스 마리(Maurice Marie)의 “지워진 후속(suite effacée, 삭제된 연속)”은 트레싱 페이퍼에 빛을 활용해 미니멀리스트적인 구성으로 우리를 벽들의 점진적인 소멸로 인도합니다. “탈주(evasion, 탈옥)”의 사다리는 어쩌면 우리를 달아날 수 있게 해 주거나 우리 머리 위에 떠있는 덜 위험한 “구름들(nuages)”을 넘어서 그 벽들의 붕괴로 우리를 이끄는 “몰락(chute, 추락, 하락)”을 함께 꿈꾸게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넘을 수 없는 경계와 벽이라는 현실, 그리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동시에
발견하였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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