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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아파 보면 알게 되는 의료계 문제들

입력 : 2016-05-26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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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아파 보면 알게 되는 의료계 문제들

'발전소책방5'와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가 커피발전소에 모여

 

▲커피발전소에서 '환자가 된 의사들'의 역자인 의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의사들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의학 지식만으로 치료하는데, 이것은 환자를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산통을 호소하는 내게 남성 산부인과 의사가 "누가 죽여요?" 하고 말했다.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다."

 

치과 대학을 나와 윤리학을 전공한 강명신 교수(강릉원주대 치대)의 말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이런 비슷한 경험을 당한 이들이 있을 법하다. 누구든 의사들이 짜인 체계 속에서 지식만으로 진료하는 것에 대해 섭섭하고 야속하여 마음이 언짢은 적이 종종 있을 테다.

 

지난 5월 14일(토), 교하의 카페 커피발전소 안 '발전소책방.5'에서 강명신 교수는 이런 생생한 경험을 풀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신익 치과 의사, 곽노규 한의사를 비롯해 철학을 전공한 김시천 교수와 심의용 교수가 함께했으며, 동네 주민도 한자리에 모였다.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 '저자(역자)와의 수다' 공개 녹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공개 녹화는 발전소책방.5와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가 공동 주최해 동네 주민들의 참여 속에 이루어졌다. 이날 함께 이야기를 나눈 책은 <환자가 된 의사들>(로버트 클리츠먼 지음)로 이 책을 번역한 강명신 교수가 참여한 것이다.

 

<환자가 된 의사들>이라는 책은 정신과 의사인 클리츠먼이 쓴 것으로, 그는 우울증을 경험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의사였던 그가 환자가 되어서 보니 비로소 환자의 이익에 반하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며 전과 다르게 의료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클리츠먼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환자가 된 의사들을 찾아 나섰고, 70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기록한다. 환자가 된 의사들의 고백은 오늘날 의료 체계의 여러 문제에 대해 반성하게 한다. 나아가 실증주의 의학과 생의학 모형의 한계를 돌아보고, 오늘날 의료 제도와 정책의 틈과 균열을 돌아보게 하는 문제적인 작품이다.

 

공개 녹화에 참여한 의사들은 먼저 자신이 크게 아팠던 경험부터 털어 놓았다. 곽노규 한의사는 40대 초반에 6개월 동안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며 그때 자기 치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은 자기 치료를 할 때 무척 과격하고 급하다. 이를 테면, 약을 한 번 먹어 보고 낳지 않으면 바로 버린다. 그래 놓고 환자에게는 기다리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며 의사의 모순된 태도를 고백했다. 의사였을 때에는 환자에게 상황을 천천히 보자거나 참으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이 아파 보니 그 아픔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고 빨리 해소하고자 다급해져 과격한 치료 방식을 행했다는 것이다.

 

이에 강명신 교수는 의사도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서 자기 치료를 과격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 자기 문제를 과소평가하다가 큰 병을 키운 의사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의용 교수는 <환자가 된 의사들>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며,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돌아보았다. "나도 철학을 가르치지만, 과연 내 삶에서의 모습은 어떤한가 돌아보게 된다."며 운을 떼었다. 이어 한의원에서 겪은 일에 대해서도 말했다.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봤는데, 나를 보지 않고 맥진기만 보더라. 마주 앉아 있는 나를 전혀 보지 않고 기계만 보고 진료하기에 신뢰가 전혀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강신익 교수가 답하며 말했다. "오늘날 의료 제도에 환자의 경험이 빠져 있는데, 의료 제도를 환자의 경험 중심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그것은 현대 의학의 근본적인 관점에서 오는 문제라는 점도 지적했다. 즉 현대 의학이 인체를 기계로 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오늘날 과학은 확률이라는 말로 불확실성을 숨긴다. 그렇지만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명신 교수 역시 과학적 태도의 본래 모습에 대해 논의를 이어갔다. "의심과 불확실성은 과학의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과학에 기반한 현대 의료는 그것을 잊어버린 것 아닌가. 생명의 본질이 유동성과 변화이기 때문에 기계와 같지 않다. 과학은 본래 '회의주의'를 기본 자세로 하며 또 그를 통해 발전해 왔다. 과학에 기반한 오늘날 의학은 회의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야기의 후반부는 자연스럽게 오늘날 의료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넘어갔다. 강신익 교수는 "환자의 걱정과 관심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며 환자의 삶을 중심에 놓는 '내러티브 의학'을 소개했다. 이는 새롭게 등장한 의료 방식으로 환자의 이야기에 주목해 오늘날 의료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회를 맡은 김시천 교수는 오늘날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의사에게 '의료 윤리'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즉 "의사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병원에 고용된 의사'라는 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결국 환자의 삶과 의료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는 정치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며 더 큰 시야에서 이 문제를 다룰 것을 제안했다.

 

강명신 교수도 "의사 권력보다 더 큰 권력이 주변에 있다."며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병원과 그 안에서 너무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들의 지친 현실 등을 언급했다. "결국 시민들에게 좋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의사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날의 대화는 마을 주민이 주최하고 참여하여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 의료의 수동적 대상이던 시민들이 의료계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고, 의료에 대해 시민의 불안과 기대를 털어 놓을 수 있었다.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와 발전소책방.5가 공동 주최하는 '저자(역자)와의 대화'는 한 달에 한 번씩 교하의 카페 커피발전소에서 이루어진다.

 

누구나 와서 방청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음 공개 녹화는 6월 11일(토) 오후 5시 30분에 있으며 <김진균 평전>에 대해 저자 홍성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글 서상일(자유기고가)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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