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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미·일 외교정책의 총점검에 나서야 한다

입력 : 2022-10-06 00:03:03
수정 : 0000-00-00 00:00:00

 

 

 

대 미·일 외교정책의 총점검에 나서야 한다

 

순방에서 드러난 윤석열 외교의 난맥상 

 

  영국과 북미 순방을 마치면서 윤석열 외교의 총체적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조문 빠진 조문외교로 시작해서, 미국과 일본에게는 정상회담을 구걸하다시피 하여 짧은 간담을 겨우 얻었으나 제대로 된 성과도 없이, 누군가(그것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에 대한 비속어 뒷담화로 구설에 오르는 외교를 목격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윤석열 외교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실수 때문만은 아니다. 설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이 이번 순방을 통해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비속어 문제가 정쟁의 소재가 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대미, 대일 외교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다.

 

  9월 22일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15분 주어진 시간에 11분을 사용하면서 ‘자유’를 21번 강조했다. 그리 길지 않은 연설에서 30초에 한 번 꼴로 ‘자유’를 언급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반도 평화 메시지는 전혀 없었다. 이례적인 일이지만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순방에 나서기 직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라는 특정한 급우에만 집착했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구했던 모든 것을 적폐로 몰아가려는 ABM(Anything But Moon) 정책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정부가 지향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 번영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강조했던 평화와 번영을 빼고 나니 자유가 남은 것이다. 

 

  애초 유엔 연설에는 ‘담대한 구상’이 포함될 것이라는, 희망 같은 전망도 있었으나 결국 빠졌다. 이것도 ABM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채우지 못한 4분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책임 방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3항에 따라 우리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또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통해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가장 중요한 다자외교의 무대에서 윤 대통령이 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신 윤 대통령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연대’를 강조하며 국제사회에서 ‘자유’의 투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가치동맹 외교의 실상과 위험

 

  뉴욕에서 기시다 총리와 가진 짧은 간담에서도 일본에 대한 메시지는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데 강조점이 놓였다. 그러나 이미 미국으로부터는 전기차 보조금 배제라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고, 기시다 총리와의 만남이 성사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차례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미국이나 일본의 행태에서 가치를 공유하며 집단안보의 의무를 함께 나누어 질 동반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윤석열 외교는 이러한 미국과 일본에는 한없이 너그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글로벌 중추국가의 외교라 강변한다면, 그것은 세계가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되고 있다는 미국의 인식에 우리의 인식을 일치시켜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인 바, 스스로 신냉전 구도를 만들어 그 전위에 서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순방외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이 벌어지는 가운데 북한이 연일 쏘아대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지역의 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실시된 대규모 한·미 전술훈련은 4년 10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었다. 30일에는 한·미·일이 동해 공해상에서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했다. 2017년 4월 제주 남방 한·일 중간수역에서 한·미·일 대잠전 훈련을 실시한 이래 5년 만의 일이다. 그 너머에서 자연스럽게 지소미아 복원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북한은 연일 미사일 시험 발사로 응수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없던 일이다. 한·미 연합훈련에 미사일 시험발사로 응수하는 것은 우발사태를 부를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북한은 비교적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랬던 북한이 급기야 10월 4일에는 일본 너머로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이것도 2017년 9월 이후 딱 5년 만의 일이다. 미국과 일본, 필리핀이 10월 3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카만닥 훈련’에 우리 해병대가 사상 최초로 참가하고 있는 것을 겨눈 것일 수 있다. 이처럼 복원되어 강화되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북한도 이례적인 무력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그 와중에 10월 1일 밤 파주에서는 북한의 강력한 보복 경고에도 탈북민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국익이 안보 위기 고조로 겨우 확보되는 것이라면 이를 ‘자해외교’라 부르지 않고 뭐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가치동맹은 현재의 긴박한 국제정세와 맞물려 세계 규모에서 분쟁 당사자의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나토와 러시아가 정면충돌하고 핵전쟁의 위험마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는 대만 유사시 우크라이나에서와는 달리 이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의 투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 국무부는 한국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대만 방어에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완곡하지만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한·미·일의 연합훈련이 실시되고 이에 대해 북한이 격렬히 반발하면서 동해가 긴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가치동맹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허구에 불과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는 트럼프를 뺨칠 정도여서 그의 노선을 트럼프 2.0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산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제외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산 우대’를 담은 ‘칩과 과학법’도 통과되었고, 반도체, 바이오 등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조하는 행정명령도 발동되었다. 이들 모두 보호주의적 조치이며 WTO 규정을 위반하여 비관세 장벽을 설정함으로써, 미국 스스로 자유주의 무역질서를 깨고 있다. 그 덕분에 지지율이 회복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48초의 간담이 아니라 48분의 회담을 가졌다고 해도 법안 수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외유의 ‘성과’가 필요했던 윤 대통령 입장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하여 노력해 보겠다는 대답을 받아내는 장면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48초의 간담은 가치동맹의 최전선에 서겠다고 나서서 얻은 작은 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논란의 비속어가 그에 대한 자괴심의 표현이었다면 그 심정이 이해는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치열한 외교 무대에서 실전 학습을 통해 가치외교의 허상을 확인했길 바라며, 이를 토대로 무익한 비속어 논란을 털어버리고 우리 외교 노선의 총점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자승자박의 대일 외교

 

  가치라는 허상을 좇으면서 스스로 놓은 덫에 걸려드는 모습은 한·일관계에서 더욱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 결과 관계 개선의 책임을 전적으로 우리 정부가 지게 되었다. 한·일관계 악화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국제법 위반으로 몰아갔던 일본 정부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하면 되게 되었다. 강제동원과 관련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으니 현금화는 한국 정부가 알아서 막아야 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으니, 한국 정부가 이행할 것만 남았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이제 이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 되어버렸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열리는 일본에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한 한덕수 총리는 기시다 총리를 면담한 날 일본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신임도에 손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꾸준히 소통해 크레딧이 돌아오도록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본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국제법 위반론’은 일본 정부의 일방적 주장일 뿐 사실에도 논리에도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제대로 반박 한 번 못하고 스스로 먼저 다가서서 그 논리에 스스로를 내맡긴 한덕수 총리의 발언으로 대한민국의 신임도는 결정적으로 손상을 입었다.

 

  더구나 이 발언이 나온 것은 아베 국장 다음 날로, 스가 전 총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먼저 보내고 슬픔에 빠진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마음에 스스로를 빗댄 추도사를 읽은 직후였다. 이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고, 혹시 야마가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일본의 한국 병합이 그가 제시한 ‘이익선’ 개념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해 두고자 한다. 스가 전 총리가 한국의 대표단이 참석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그의 추도사는 한국 국민에 대한 도발이고, 의식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존재는 그의 안중에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대표로 파견된 총리로서, 마땅히 그 진의를 확인하고 항의했어야 함에도, 그런 행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우리 대표단의 무대응을 장례에 참가한 자의 도리를 우선한 처신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추도사 직후에 도쿄에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와서는 안 되었다. 이제 한덕수 총리의 발언으로, 우리 정부는 대일 외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한 걸음 들어서게 되었다. 공이 한국에 있다는 일본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일본 정부가 받을 수 있는 공을 던지는 것이 윤석열 정부에 숙제로 남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관협의회 등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기본적인 원칙에서는 거의 일본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서 만점 답안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 같다. 즉 우리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인데, 다만 혼자서 백기를 들 수는 없으니, 서로 양보하는 모양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이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금화 문제에서는 피해자들의 동의가 필요한 대위변제의 난점을 우회할 방법으로 병존적 채무인수라는, 법 전공자에게도 생소한 방법이 논의된 적이 있으나, 정작 일본 측이 채무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다. 민관협의회에서 확인된 우리 피해자 측의 최소한의 요구는 피고 기업 및 일본 정부의 사죄 표명과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일본 측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이상 일본에게 사과 표명의 의무도 기금 참여의 필요도 없게 되었고, 일본 정부는 이 입장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하다.

 

  행여나 일본 측이 우리의 요구를 부분적으로라도 받아들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다. 그 반대급부로 일본이 구상하는 지정학 전략에 깊숙이 이끌려 들어가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과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를 확정하고, 그 전위에 한국을 세우는 것이 현재 일본 정국을 주도하는 일본 우익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러한 전략에 기꺼이 따라줄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적당히 매듭 짓는 것이 일본의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가치외교의 뒷면에 남겨진 것들

 

  그 이면에서 일본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는 기류가 보인다. 윤 대통령의 입을 통해 대북 메시지가 전혀 나오지 않았던 유엔 총회에서 북한에 대화를 촉구한 것은 기시다 총리였다. 기시다 총리는 올해가 북·일 평양선언 20년의 해임을 상기하면서, 이 선언에 입각해서 납치, 핵, 미사일 등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여 국교정상화를 이룬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이 불변임을 확인하고, 일본은 쌍방의 관심 사항에 대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여, 조건 없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결의를 피력했다. 

 

  이는 9월 16일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교섭담당 대사가 발표한 담화에 대한 대답이다. 북·일평양선언 20주년을 하루 앞두고 “일본 정부는 조·일 평양선언을 백지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담화에서 송일호 대사는 일본인 납치문제라는 것은 모두 해결되었으며, 일본의 무성의와 적대행위로 선언이 백지화되었다고 하여 일본을 비난하면서, 선언의 핵심은 식민지 과거 청산이라며 일본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북한식의 대화 제의다. 이에 일본 정부가 일본식의 호응을 보인 것이다.

 

  남북화해 국면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경사하는 한국 정부에 제동을 걸었던 일본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이 목표를 실현한 마당에 이제는 남북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스스로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다. 

 

  통일교 문제를 둘러싼 의구심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많은 일본 국민이 반대하는 국장을 강행하여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는 기시다 내각이 한국의 ‘성의’에 보답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과의 수교 교섭 재개는 이를 만회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북·일 평양선언과 함께 납치문제가 드러난 지도 2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는 데 대해 납치 일본인 가족들은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북한에 가장 비판적인 이들이 기시다 수상에게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 회담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대북 강경책의 구심이던 아베가 사라진 것은 북한에게도 기회로 생각될 수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과거사 문제에서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당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결과를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피하기 위해, 대일외교의 전략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전제부터 다시 생각하고,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외교 라인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가치외교에 매몰되어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급우에만 집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 미·일 외교는 우리의 안보와 번영에 큰 기둥이지만 그럴수록 글로벌 차원에서 우리 국익을 위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미·일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할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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