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육연재(5) 자연에 담기다
수정 : 2022-11-25 00:54:00
미술교육연재(5)
자연에 담기다
머릿속 돌멩이는 회색이지만 세상엔 회색 돌멩이가 없습니다.
▲2014년 임유빈의 모습. 2012년에 만나 미술수업을 시작한 유빈이가 미술작업에서 폭발적 변화와 성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도라산평화공원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많은 어른은 자연을 섬기는 대상으로 얘기하곤 했습니다. 마치 신이 깃들어 있다는 듯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것을 과학적 근거로 증명하고 수치화하는 근대적 사고는 그러한 시각을 전근대적 미신으로 폄훼했습니다. 자연을 무한한 착취의 대상으로 대하는 모더니즘의 폭력적 시각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숭고의 미학을 얘기했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그러한 추상적 개념을 넘어 지구온난화를 대두로 한 인류생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현대인의 질병을 연구하던 의학은 숲이라는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이로움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고, 자본은 ‘음이온' ‘피톤치드' ‘면역력' 등으로 세분화하여 상품으로 만들어냈고, 동물과 벌레가 없는 안전한 정원을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로움이 담긴 알약을 삼키고 벌레 없는 정원을 거닐면, 과연 우리는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을 섭취하는 것일까요?
▲[소금쟁이] 종이 위에 수채화 물감. 2014년 임유빈 (초1)
자연속 수업은 소유와 비교와 경쟁 관계를 탈피하도록
한동안 작업실이 사라지는 바람에 미술도구를 싸매 들고 아이들과 공원에서 미술 수업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속 평화공원 가는 길에는 고라니가 산책했고, 공원 안에는 사슴을 키우는 울타리가 있었고, 숲과 연결된 공원에는 온갖 벌레가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자연으로 들어갔다고 아이들의 작품이 단번에 변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에 걸친 자연 속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의 대화와 작품에서 분명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 종이 위에 수채화물감. 2014년 임유빈 (초1)
콘크리트 건물 속,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수업하다 보면 아이들 대화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 대한 관계로 이뤄집니다. 물건은 소유 대상이고, 소유물은 비교 대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대상과 나의 관계가 그것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옆 사람과의 관계 역시 그렇습니다. 소유와 비교와 경쟁 관계라는 정서 공간. 그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면 삶의 무늬가 그렇게 형성됩니다. 하지만 자연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로부터 탈피하기 시작해요. 어릴수록 탈피의 속도가 더욱 빠르기 마련입니다.
▲[사슴] 마블링을 이용한 콜라쥬와 파스텔. 2014년 임유빈 (초1)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손을 높이 들어 펼치면 손가락마저 파랗게 물들일 것만 같은 하늘과 조물주의 실수인 양 원근법이 파괴된 구름과 무엇이 동물의 똥인지 작은 돌멩이인지 젖은 흙인지 알아볼 수 없는 곳에 모든 생명이 발을 딛고 있는 땅,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개체. 자연 속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대화에선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울타리 속 수사슴이 탈출했을 때 아이들은 자유를 만끽하는 사슴에게 환호의 응원을 보냈고, 몇 개월 후 수사슴이 암사슴을 잊지 못해 스스로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을 땐 ‘사랑 없는 자유보다 울타리 안의 사랑'을 얘기했고, 모든 생명에 대한 공감과 상상은 무생물에도 생명을 불어넣곤 마음을 전합니다.
▲[사슴] 천사점토와 나무. 2014년 임유빈(초1)
자연을 대상이 아니라 파묻혀 느끼는 것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자연이란 그러한 것이 아닐까요. 음이온이 아니라. 피톤치드가 아니라. 유산균이 아니라. 소유 대상도 아니고 돈이 되는 대상도 아닌.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쓸모 있는 것'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돈이 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느끼고 찾도록 해주는 자연.
▲[낮과 밤] 종이 위에 연필, 수채화 색연필, 수채화 물감. 2014년 송윤주 (초1)
자연을 단순한 힐링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늬를 풍요롭게 이끌어주는 주체로 마주했을 때, 자연은 인문학과 예술의 시작점과 일치합니다. 야외스케치는 ‘자연이란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파묻혀 보고 느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 완성된 그림이란 결과물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요. 보고 느낀 것이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인 만큼 자연에 푹 파묻혀 한없이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때로는 먼 산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도 합니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뿌리 밑을 탐색하기도 하고, 다양한 돌멩이 색깔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머릿속에 도식화된 돌멩이는 회색이지만 세상엔 회색 돌멩이가 없습니다. 자연엔 같은 모양과 색이 반복되는 일이 없을 지경이니까요. 그렇게 보고 느끼는 것이 충분히 많아지면 드로잉북에 빠르게 담아냅니다. 좋은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순간순간 찾아낸 자연의 특별함을 빠르게 주워 담는 거죠. 일종의 크로키라 할 수 있습니다. 작업실 실내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자연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을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말이죠. (야외스케치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는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민들레] 전지 위에 목탄, 크레용. 2021년 김사랑 (초3)
밤고지 예술작업실 김영준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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