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43) 13. 모색2. 경계에서 찾은 길/ 연암, 다산, 풍석 그리고.
수정 : 2022-11-15 00:26:23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43)
13. 모색2. 경계에서 찾은 길/ 연암, 다산, 풍석 그리고.
(4) 최한기라는 돌출. 갈피 잃은 임진강
▲혜강 최한기 초상
서유구는 1823년 60세에 다시 벼슬에 나서며 장단 난호를 떠난다. 지방관으로 떠돌던 그는 1837년 아예 거처를 서울 동쪽 번계로 옮긴다. 박지원이 장단에 묻힌 뒤 그 자손은 연암골을 떠나 서울로 온다. 손자 박규수는 연암골을 그리워했지만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한때 임진강에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쳐 보였던 정약용은 남쪽 끝으로 유폐됐다가 간신히 돌아와 고향 두릉에 머문다.
▲수리기술에 관한 저서 ‘육해법
임진강을 떠난 이들은 돌고 돌아 번계에서 만난다.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이 서유구의 번계시회에 참여한다. 당대의 변화를 모색했던 거장들이 세대를 넘어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서유구는 흘러서 다시 정약용이 살던 한강의 두릉으로 이주한다. 정약용은 고인이 된 뒤였다. 박규수는 그를 따라 거처를 두릉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이 임진강을 떠난 것, 그것은 각자의 사연을 따른 것이지만 거기엔 그때는 분명치 않던 시대의 변화가 내장돼 있었다.
비슷한 시기 이들과는 다른 이유로 임진강을 뜬 사람이 있다. 개성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서울에서 살다간 사람, 조선 사상사에 뜬금없이 돌출한 인물 최한기. 최한기의 서울행은 귀경이 아니라 상경이었다. 서울을 대하는 태도 또한 앞선 거장들과 사뭇 달랐다. 누군가 시골로 돌아가 농사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자 최한기는 답한다.
▲최한기가 김정호와 함께 만든 ‘지구전후도’ 중 전도(1834)
“나의 견문을 넓히고 지려를 열어주는 것이 오직 모든 책의 덕택인데 책을 구하기가 서울보다 편리한 곳이 없다. 기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과문 누습에 빠져 살 수가 있겠는가.(이건창. 「혜강최공전」 중에서)”
책을 구하는 데 서울보다 좋은 곳이 없으므로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라 안의 책장수들이 다투어 몰려올 만큼 많은 책을 샀다. 북경에서 책이 들어오면 누구보다 먼저 사들였다고 한다. 집을 팔 지경이 되어서도 책 사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책 구입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이야기에 이렇게 대꾸한다.
“이 책 속의 사람이 나와 한 시대에 살아 있으면 천만리 길이라도 내 반드시 찾아갈 터인데, 지금 나는 앉아서 책을 통해 만남이 가능하다. 비용이 든다고 하더라도 양식을 싸가지고 멀리 찾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은가.(이건창. 「혜강최공전」 중에서)”
▲최한기의 대표작 ‘인정’
서유구는 도성 밖을 황량한 곳이라 여기면서 도성에 붙어살려는 선비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전공부는 종이로 떡을 만들겠다는 헛짓이고 농사만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고 했다. 최한기의 삶은 얼핏 서유구가 비판한 고루한 선비들을 닮아 있다.
서유구는 자가 준평(準平)이다. 이름 유구(有榘)는 ‘곱자’를, 준평(準平)은 ‘수준기’를 표현한다. 그는 공허한 학문을 배격하고 과학적 지식을 탐구했다.
최한기의 접근법은 달랐다. 서유구가 공허한 학문이라고 배격한 경전에 대해서도 준적, 즉 표준을 요구했다. 세상에 무형은 없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는 유형에서 비롯한 추상일 뿐이다. 세상은 오로지 유형의 세계이며, 유형의 가장 극소한 단위는 ‘기’다. 그는 공허한 경전의 세계를 유형의 생물인 ‘기’로 설명한다. 북경에서 온 책을 통해 얻는 동서양 모든 과학지식이 그의 ‘기’ 철학에 동원된다. 유형의 표준을 통해 학문을 과학화한 그의 사상은 당대의 돌출일 뿐 아니라 현대도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다. 주석이 붙지 않은 논문을 본 적이 있는가. 최한기는 일체의 주석이나 경전의 인용이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사유로 경전을 썼다. 그는 이를 ‘성경’과 대비해 ‘천경’이라 했다. 서유구는 경전을 버렸지만 그는 경전을 전복했다. 이건창은 그를 이렇게 평한다.
“혜강은 어려서 남달리 영특하여 글을 읽다가 깊은 뜻을 만나도 문득 스스로 해결했다.”
최한기는 그만큼 단절적이며 돌출적이다.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은 이제 임진강을 떠나서 벌어졌다. 중심과 변방의 경계라는 임진강의 위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울과 지방, 조선과 중국이라는 단선적 관계망이 해체되면서 중심과 변방의 지정학은 재구성됐다. 천하론의 관계망은 지구의 자장에 맞춰 조정돼야 했다. 영국은 거문도로, 프랑스는 강화도로 접근했다.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으로 들어왔고, 일본은 부산과 원산, 인천을 개항시켰다. 임진강은 더 이상 세계를 들고나는 통로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책을 통해 세계를 만나고, 저술을 통해 세계 보편을 추구했던 최한기는 죽어서야 태어났던 개성으로 돌아온다. 임진강을 건넜을 테지만 이때의 강은 그저 무심한 강물일 뿐이었다. 다른 무엇이어도 상관없는. 임진강은 그렇게 지금까지 역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저자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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