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차 전문가포럼 - 중남미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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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차 전문가포럼 - 중남미의 현재와 미래
발표 : 민원정 (칠레가톨릭대학교 교수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 지도는 태평양이 한가운데에 있지만, 칠레 사람들이 바라보는 지도에는 대서양이 한가운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칠레까지 북반구, 남반구 어떤 경로를 가도 비행기로 24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여름일 때 칠레는 겨울이다. 시차도 12~13시간 차이가 난다. 그 정도로 먼 곳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칠레는 잘 모르는 나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온갖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서양에서 아시아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어서 바라보듯 우리나라에서는 중남미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똑같은 스페인어를 써도 나라별로 여러 가지 특징이 다르고 또 브라질의 경우에는 포르투갈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영어, 네덜란드어, 영어와 프랑스어가 섞인 방언을 쓰는 등 여러 지역이 존재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해하는 중남미라고 하면 비록 지리적으로는 북미에 위치해 있지만 중남미로 분류되는 멕시코를 포함하여 그 이하의 남미 여러 나라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중남미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부르지만 이곳은 정치, 문화적 함의에 따라 불리는 용어들이 다양하다.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중남미를 스페인,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와 연결시킬 때에는 히스패닉 아메리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는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이 대립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라틴 문화권을 묶는 의미에서 쓰인다. 한편 요즘 미국 대학의 중남미 연구소나 중남미 학과 사이트에서는 성별구분이 없는 형용사로 라틴스(latinx)라는 말을 사용하는 곳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중남미에는 위치한 33개 이상의 국가들 중 카리브해의 국가들과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을 제외하면 모두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스페인어의 차이가 있고 또 인디오의 언어를 이중 언어로 허용하는 곳과 아닌 곳 등 다양하다.
또 사람들의 피부색도 인주 원주민의 거주 비율, 유럽 이민의 비율, 혼혈 비율 등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민족 개념이 간단하지 않다. 500년 이상 아랍의 지배를 받으면서 무어족, 켈트족 등과 이미 혼종이 이루어진 스페인 인이 중남미로 건너와서 다시 원주민과 섞인 ‘혼혈의 역사’로 인해 인종 또한 어느 인종이라고 딱 꼬집어서 말할 수가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극심한 빈부격차, 폭력이 난무하는 위험한 곳, 그러면서도 뭔가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친근한, 어떤 상반된 이미지가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 바로 중남미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노래인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 뮤직비디오를 보면 한국인들이 보통 상상하는 중남미의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마초적인 분위기, 섹시한 여성,다양한 인종, 레게톤 음악과 관능적인 춤들. 그러나 이 뮤직비디오의 이면에는 슬픈 중남미의 역사가 담겨 있다. 우선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인물들은 모두 푸에르토리코 출신인데 이 나라는 미국의 속국으로 미국의 한 주로 취급 받는 듯 아닌 듯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다양한 피부색의 배경에는 예전에 카리브해 지역으로 유입된 흑인 노예들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흥겹게 느껴지는 레게톤 음악도 사회 저항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다.
중남미의 빈부 격차
칠레는 중남미 최초의 OECD 가입국이지만 불평등 지수나 지니계수는 한국의 두 배가 훨씬 넘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이다.
그나마 칠레가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되고 세계적 기업들도 많이 진출해 있고 또 OECD 가입국이기도 했으나 팬데믹, 그리고 그 이전에 발생한 지하철 요금 시위 사건을 기점으로 지금은 중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중남미의 계급 개념, 인종 개념 부의 개념과 빈부 격차의 개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남미는 전체적으로 상위 15~20%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과두계급사회다.
이것은 식민지 시절부터 대를 이어온 계급의 개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계급 사회가 아니라도 함부로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한계가 이미 내재해 있다.
여기에 팬데믹이 겹치면서 여러 나라의 상황들이 더 어려워졌다. 일단 백신 문제도 있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고 혼란한 시기를 겪고 있다.
다같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가 오늘날의 많은 나라로 갈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중남미의 자연환경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다.
예를 들어 칠레 산티아고의 해발이 무려 1,200m이다. 바로 앞에 유명한 안데스 산맥이 보이는데 트레킹을 30분만 올라가면 그냥 해발 2,000m이다. 또 화산이 있는 환태평양 지대이기도 하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에는 안데스 산맥이 있고, 칠레와 북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페루에는 아타카마 사막이, 브라존질에는 아마존 밀림과 폭포가 있다.
이런 자연환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정복자들에게 중남미 지역 내의 육로 이동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카리브해로 들어와 멕시코를 거쳐 남하하는 식으로 정복을 시작하는데, 칠레와 아르헨티나 지역은 비교적 늦게 정복되었던 이유가 사막과 호수와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이 넓은 땅덩어리를 지배하기 위해서 부왕령 제도1)라는 것을 만들었다.
크게는 페루, 멕시코, 브라질을 중심으로 구역을 나누었고 이후 조약을 통해서 브라질은 포르투갈 땅이 되었다. 당시 스페인은 브라질이 온통 밀림이고 땅만 넓었지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왕령으로 다스렸는데 부왕령으로 나누었다고 해도 그 당시에 칠레는 페루 부왕령에 속해 있었지만, 페루 부왕령에서는 중앙 집권을 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자연환경 탓도 있었지만 내부에서 정복자들끼리도 이권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은 부왕령 안에서도 각 지방 자치 정부가 생겼다. 그리고 중남미 식민지에서 태어난 본토인들의 후손, 이른바 ‘크리올2)’들은 자신들이 본토에서 온 사람들에 비해서 서자 취급을 받는 데 대한 반감이 컸다. 중남미의 독립운동은 원주민들이 아닌 크리올들이 일으킨 운동이었다. 당시 시몬 볼리바르3) 같은 사람이 남미 대통합을 이루려고도 했지만, 결국 중남미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크리올들이 지배하고 있던 권역을 중심으로 이권에 따라 33개국이 넘는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다.
중남미의 정치적 특성
중남미의 정치적 좌우 개념은 어떤 대척할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좌우 개념과는 좀 다르다. 민주주의를 기본 전제로 하고 경제 정책을 어떻게 펼치냐에 따라서 좌파
정권이냐 우파 정권이냐 이렇게 나누기도 한다. 요즘 들어서는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좌파 정권 하에 있다.
한국에서는 중남미에 반미감정이 심하다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 사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나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하는 중미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남미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그렇게 밀접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일단 거리가 멀어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기 어렵다. 또 피노체트가 미국 정권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칠레 국민들의 경우 반미 감정이 심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칠레에서 17년을 살면서 반미시위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1) 부왕령(영어: viceroyalty) 또는 부왕국은 본국의 국왕을 대신하는 직책인 부왕에 의해 통치되는 식민
지를 말한다. 주로 에스파냐 제국의 식민지들이 부왕령 체제를 지녔다.
2) 크리올(Criole, 스페인어: Criollo 크리오요, 프랑스어: Créole 크레올)은 본래 아메리카 식민지 지역
에서 태어난 유럽인의 자손들을 부르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보통 유럽계와 현지인의 혼혈을 부르
는 말로 쓰인다.
3) 시몬 호세 안토니오 데라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볼리바르 팔라시오스 이 블란코(스페인어: Simón José
Antonio de la Santísima Trinidad Bolívar Palacios y Blanco, 1783년 7월 24일~1830년 12월
17일)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산 마르틴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리
베르타도레스, Libertadores)이자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칠레는 국토 길이가 4,329km에 해당한다. 남한의 크기는 칠레의 한 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긴 나라다.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북쪽 아타카마 사막까지는 버스로 20시간이 넘고, 남쪽으로는 버스로 15시간, 비행기로도 4시간이 걸린다. 북쪽 사막부터 남극까지 온갖 기후가 공존하고 자연환경의 규모도 크다.
전체 인구의 약 2/3에 해당하는 1,900만여 명이 수도 산티아고에 밀집해 있다.
2019년도 10월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다.
칠레의 국민소득은 한국의 절반 정도인데 비해 지하철 요금은 한국보다 비싸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인프라도 약하다. (이와 관련해서 여담으로 칠레 사람들의 여유로운 국민성을 게으르다고 보는 이들도 있으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아등바등 애쓰며 살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깜냥껏 하고 힘들게 살지 않는다는 식의 가치관이다. 그래서 기차가 없으면 버스 타고 가면 되고 하는 식이다. 또 기본적으로 국내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내 여행을 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철도 등 인프라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낀다. 이렇게 한국과는 굉장히 다른 가치관의 문제가 있다.)
지하철 요금 30페소가 그 당시 환율로 0.04유로 정도였는데, 한국 돈으로 그 당시 국민 기본 소득이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하철 요금을 내다보면 생활비를 거의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당시 경제부 장관이 ‘지하철 요금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면 지하철 요금이 할인되는 새벽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라’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처음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지하철역을 점거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팬데믹 발발 직전까지 이어졌고 대부분의 지하철역이 폐쇄되었으며 특히 메인 콤비네이션 역인 바케다노역은 일 년 이상 폐쇄될 정도였다.
경제부 장관에 이어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피녜라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우리는 지금 전쟁 상태(We are in war)‘라고 했는데 이 말은 1986년 피노체트가 군사 독재를 일으키면서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어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한국과 칠레의 시위 문화를 비교하면 한국은 조직성이 강한 반면 칠레는 서양 문화권 특유의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저마다 각자의 요구를 들고 시위에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협상 대표가 없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칠레 시위문화의 재미있는 점은 시위를 페스티벌처럼 즐기는 경향이 있다. 보통 금요일 저녁부터 시위를 하는데 냄비를 두드리며 춤도 추고 노래도 한다. 이런 시위 방식을 ’까세로라소‘라고 한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 쉰다.
또 시위와 동시에 약탈, 방화가 매일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시위대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면도 있다.
그리고 시위대를 보면서 아이러니했던 것은 분명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데 시위 장소를 관광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굉장히 신자유주의적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100년 넘은 문화재급 성당도 불에 타고 시내가 거의 마비될 정도로 오랜 시위 끝에 대통령이 여러 정책을 발표했지만 그런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던 이유는 일단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해서 서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예로 칠레는 통일된 국가 교육과정이 없고 사립학교와 국공립학교의 교과서가 달라서 학생들의 레포트나 말투를 보면 대충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을 정도다. 글쓰기도 말투도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또 칠레에는 공산품, 제조업이 없다. 인구가 1,900만 명밖에 안 되고 국토가 워낙 길어서 운송이 굉장히 어렵고 따라서 제조업으로는 이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FTA를 통해서 모든 상품을 수입한다.
칠레가 주로 수출하는 것은 구리, 리튬 등의 천연자원인데 한창 구리 값이 올랐던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칠레 경제가 붐을 이루었다면 구리 값이 떨어지면서부터 칠레 경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외에 칠레의 주력 수출품목은 와인, 과일, 돼지고기, 연어 등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산업의 주인들이 외국 회사라는 점이다.
심지어 칠레는 수도, 전기, 가스 등의 공과금의 징수 주체도 모두 외국 회사이다. 연금의 경우에도 국가 연금이 아예 없고 사기업 펀드에 투자를 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실제로 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칠레의 월급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연금 수령액 자체가 기본 생활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국민의 반 이상이다. 그래서 이런 사회 문제가 일어났을 때 국가의 해결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국가보험과 사보험이 있다. 칠레는 피노체트 때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경쟁이다. 국가보험도 사보험 회사들과 경쟁하는 체제에서는 누가 침상을 더 많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인데, 국가 보험은 당연히 사보험 회사에 비해 침상 수가 적고 그래서 칠레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 ‘국가 보험을 가지고 있으면 기다리다 죽는다’고들 한다. 또 사보험은 보험액수가 상당하고 한국과 달리 내가 내는 보험 액수에 따라서 받는 병원 서비스의 급이 다르다. 그러니 빈곤층은 제도상으로는 보호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누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궁여지책으로 칠레 정부에서 내놓은 것이 연금의 10%를 미리 상환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10%를 상환한다고 해도 수령액이 한국 돈으로 백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한두 달 살기도 힘든 돈이었지만 사람들은 당장 급하니까 그걸 받았고 현재까지 네 번이나 인출을 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요구를 하고 또 국가에서 재정지원금을 줄 여력은 안 되다 보니 이미 국민의 반 이상이 연금의 대부분을 인출해 버린 심각한 상황이다.
칠레 경제가 더욱 마비된 이유 중에 하나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구리 수출이 줄어든 것 외에 시위와 팬데믹으로 관광 수입이 끊긴 것도 컸다. 경제적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였고 외국투자자들의 허브였던 칠레가 순식간에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되니 외국인들의 투자도 줄어들었다. 시위로 인해 치안도 악화되어 때와 장소의 구별 없이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결국 시위와 팬데믹을 거치면서 피노체트 때 제정된 헌법을 새로 바꾸자는 국민투표를 거쳐 칠레는 새로 헌법을 쓰는 중이다. 부분부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 쓰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페루에서도 시골 고등학교 교사 출신의 카스티요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칠레에서도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35세 젊은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현재 두 나라가 굉장히 혼돈의 시기에 빠져 있다. 페루 카스티요 대통령은 부정부패 혐의로 거의 탄핵 위기에 몰려있고, 칠레의 경우에는 시위가 오히려 더 거세졌는데 이유는 국민들의 기대치는 너무나 큰 반면 그것을 단번에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얘기하는 좌파는 민주정부를 기본으로 깔되 포퓰리즘에 가까운 국민 복지를 추구하는 좌파의 개념이고 우파는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지금 그것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고, 보리치 대통령이 선거에서 50%를 살짝 넘는 근소한 차로 이겼기 때문에 정권도 굉장히 불안하다. 문제는 9월 4일에 나온 새 헌법의 초안 승인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여야 되는데 현재 사전조사 결과로는 반대 여론이 더 높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최소한 새 헌법이 발효되기까지 3년에서 최대 7년 동안 칠레가 혼돈 상태에 빠질 것이다. 9월 4일에 투표가 끝나봐야 하겠지만 현지 교민들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안정을 위해 우파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남미의 미래는 가깝게는 칠레 헌법 개정안의 통과 여하에 따라서도 굉장히 달라질 것이다.
또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천연 자원을 수출하는데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이 줄어들고 관광 수입이 없는 점,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중남미의 빈곤율이 더 높아졌고 경제 신뢰도도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질의응답
Q. 칠레 피노체트 군부 정권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되었는지? 군부가 아직도 칠레 사회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과거 청산의 개념이 칠레에는 없다. 한국은 하나가 바뀌면 싹 바뀌는데 비해 칠레는 헌법 개정이 안 되면 피노체트 시절 제정된 헌법을 그냥 유지한다.
그리고 피노체트도 스페인에 가서 재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은 칠레에 돌아와서 제명을 다하고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반미
감정이 별로 다. 또 교민들은 피노체트 정권 당시에 이민을 가신 분들이 많은데 그때는 칠레가 너무나 치안이 좋고 장사하기 좋았다 보니 오히려 그런 정부를 그리워한다.
빈곤층의 경우에도 좌파건 우파건 나를 잘 먹고 살게 해 주면 되는 거고 과거청산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다.
지금 헌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이유는 바로 ‘이 모든 빈부 격차의 근본이 피노체트 때 만들어진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헌법이니 그걸 다시 쓰자’는 것이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쿠바 혁명도 있었고 제3세계론이니 종속론이니 해서 남미를 굉장히 주목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여러 가지 영향이 있겠지만 중미와 남미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나 칠레처럼 백인들이 많은 경우는 자신들을 유럽에 속해 있다고 여긴다.
피노체트가 스페인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스페인 국적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우리 식의 국가주의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들어와서 자국 산업을 다 점령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다 외국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빈곤층은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 정치 문제를 신경 쓸 여력이 없고 또 칠레 사람들의 기본적인 성향이 정치나 종교 얘기도 잘 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얘기도 잘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부정적이고 어두운 얘기를 되도록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도 한국식의 청산이 안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Q. 남미에서는 유럽연합처럼 남미연합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는지?
없다. 유럽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문화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남미는 그런 것이 없다.
나라마다 쓰는 언어도 다른 유럽은 연합이 되는데 왜 같은 대륙에 있고 언어도 비슷한 남미는 연합이 안 될까? 했는데 지형적인 영향도 있지만 또 은근히 국가 간의 경쟁의식이 심하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칠레, 볼리비아, 페루 간의 경쟁, 또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 문제 등.
그래서 오히려 아예 중미와 남미처럼 떨어져 있으면 서로 신경을 안 쓰지만 남미 내에서는 독립 당시에도 통합이 안 이루어졌고 또 지금도 굳이 통합을 해야겠다는 논의는 없다.
칠레, 볼리비아, 페루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원래 아타카마 사막은 구리를 비롯한 광물자원의 보고로서 3개국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모두 칠레 땅이다.
19세기 말에 세 나라 간에 이른바 ‘중남미의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볼리비아는 자기네 영토에서 칠레 사업가들이 광물을 채취할 경우에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하는 조약을 맺었다가 볼리비아 정권이 복잡해지면서 세금을 물리니까 그걸 빌미로 칠레가 침공을 했고, 그때 페루가 볼리비아와 손을 잡았다. 그 이유는 페루는 식민지 시대에 부왕령이었던 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정작 독립이 되고부터는 경제적으로 부상한 칠레에 밀리는데 대한 경쟁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나라가 모두 칠레에 패하여 그 결과 볼리비아는 내륙 국가가 되었고 페루는 아타카마 사막을 잃어버렸다. 칠레는 그때 아타카마 사막을 차지하면서 향후 경제 발전의 터전을 닦은 반면, 볼리비아는 그 땅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바다로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무역에서 장애를 받게 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이 세 나라의 관계는 좋을 수가 없다.
Q. 남미 국제 정치에서 칠레의 위상, 그리고 한국-칠레의 협력 전망은 어떤지?
순위를 매기는 것은 굉장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이다. 중남미 사람들은 별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누가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별로 안 된다. 물론 칠레 사람들은 원주민이 많은 볼리비아나 페루에 대한 인종적 우월의식이나 경제적 우월의식이 있어서 페루와 볼리비아를
무시하는 경향은 있지만 그걸 가지고 어떤 등급을 매긴다거나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가 많지 않다. 미중 관계가 한국처럼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고 투자의 개념, 누가 더 자원을 많이 차지하느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위상은 칠레가 높았는데 최근에는 나라가 힘들어졌다.
칠레는 한국 최초의 FTA 파트너이며, 한국은 칠레 최초의 아시아 FTA 파트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자동차, 휴대폰을 파니까 FTA에서 우위를 점할 것 같지만 그 속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액수에서는 우리가 손해라고 한다. 구리 등의 천연 자원광물, 먹을거리, 와인 등 내용 면에서는 칠레가 훨씬 수출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와의 문화적인 관계는 그냥 너무 멀고 잘 모르니까 깊이 있는 이해를 서로가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Q. 칠레 또한 태평양 국가인데, 인도 태평양이 국제 정치에서 지정학적 핫이슈다. 중국이 칠레에 여러 가지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는데, 중남미와 중국과의 관계는 어떤지?
요즘은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굉장히 커졌다. 일본은 칠레를 비롯해서 중남미 전체에 자이카(JICA : 일본국제협력기구,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등을 통해서
소프트웨어를 이미 오래전부터 굉장히 뿌리 깊게 박아놓았다. 교류가 100년이 넘었고 보이지 않게 구석구석에 일본이 박혀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칠레만 해도 공자학당이 두 군데나 있다. 미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대학들이 공자학당을 닫는 경우가 늘고 있는 반면, 중남미는 그런 정치적 이슈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다. 중국이 사업 파트너로서 중요한데 공자학당은 중국이 지원하는 거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다. 또 중국이 지금 중남미 전체에서 부동산 구입이 상당하다. 공적 사적 할 것 없이 그런 투자의 규모가 굉장히 크다.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통해 중남미의 큰
형으로 자처해 왔으나 그걸 너무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현재 미국이 다른 나라를 보듬어줄 형편이 아닌 틈을 타 중국은 별로 이념을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왜 중남미에 이렇게 무심할까, 좀 섭섭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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