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박사의 통일 문화 산책 ⑭ 통일의 필요조건과 남북한(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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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력이 원심력보다 더 커야
통일의 필요조건 2
두 번째 통일의 필요조건은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더 커야 한다는 것이다. 대립하고 있는 양국의 국력 균형이 무너진 후 통일에 대한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더 커야 통일의 동력이 작동한다. 물리학에서 두 물체 사이의 힘의 균형이 깨진 후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밀어내는 힘보다 강해야만 합쳐질 수 있는 이치와 같다.
통일의 구심력은 민족공동체 의식과 물질 유인으로 이루어진다. 민족공동체 의식은 관념적 요인으로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교류를 통해 길러지며, 물질 유인은 각종 협력을 통해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동독인들, 서독으로의 즉각 합병이 번영을 가져올 거라 기대
통일 당시 독일, 예멘, 베트남에서는 구심력이 원심력을 압도했다. 독일의 경우 사실상 통일은 1991년 3월 동독의 자유총선거에서 결정됐는데, 동독 국민들이 신속한 통일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드메지에르가 이끄는 국민연합에게 압승을 안겨주었다. 동독인들의 이런 결정은 서독으로의 즉각적인 합병만이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동독인 대다수는 70년대 이후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서독의 번영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 동서독 통합시 1 : 1 화폐교환으로 인해 생기는 재산 증식도 한 유인이었다.
남예멘, 북예멘과의 즉각 통일이 번영 지름길로 여겨
예멘의 통일을 촉발시킨 동력도 오랜 식민지 경험과 반외세 투쟁을 통해 공유된 민족주의 외에 통일시 발생되는 물질적 유인이었다. 70년대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던 남예멘 국민들에게는 남예멘 사회주의 정권의 개혁보다 북예멘과의 즉각적인 통일이 번영으로 가는데 더 지름길로 여겨졌던 것이다. 남 · 북 예멘의 4차 통일협정인 1988년 사나협정 체결 이후에는 신분증 제시만으로 국경 통과가 가능해져 남예멘 노동자들이 북예멘으로 넘어가 취업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국경 지대에서 발견된 유전은 통일이 될 경우 개발을 통해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베트남인들의 강해진 민족주의
베트남의 통일도 민족주의와 물질적 요인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베트남인들은 오랜 독립 투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가 강해졌다. 프랑스와의 8년 전쟁에서 승리한 54년 당시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과 긍지의 상징이었다. 전쟁 후 프랑스와 맺은 제네바 협정대로 2년 후 총선거를 치렀을 경우 호치민에 대한 지지가 80%를 넘길 것이라는 게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제네바 협정이 지켜지지 않고 55년 남베트남에서 미국 후원으로 고딘디엠의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진 것이다. 호치민 중심의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더욱이 고딘디엠의 남베트남 정부는 절대 다수 농민들의 소망이었던 토지개혁을 외면하고 국민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불교도에 대해 종교차별을 함으로써 외세의 대리인으로 비쳐져 남베트남인들의 외면을 받았다.
남북한의 구심력과 원심력 관계
한반도에서는 통일에 대한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약하다. 90년대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대규모 아사자를 내며 체제위기를 겪을 때 남북간 통일의 움직임이 발생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애써 힘들게 시작된 남북간 교류·협력이 우발적 사건 하나로 곧장 중단돼 버리는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통일을 희망한다면 구심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간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 교류를 통해 민족공동체 의식을 회복시켜야 하며, 협력을 통해 상호 의존도를 높여 통일할 때 발생할 물질적 이득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80년 이후 서독인들은 누구나 동독을 방문할 수 있었으며, 동독인들도 당국의 허가 아래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했고 연금수혜자들은 임의로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그 결과 1988년 한 해만 해도 서독인 667만 명이 동독을 방문하였으며, 동독인 675만 명이 서독을 방문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자유로운 왕래가 서독의 포용정책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 차원에서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액수가 69~89년 기간 무려 576억 달러로서 매년 29억 달러씩이나 된다.
정치학박사 ?nbsp;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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