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더불어 홀로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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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밤, 무남독녀 외동딸과의 대화. “내가 볼 때, 나는 참 이뻐! 좀 넙데데해서 그렇지”. 딸의 말에 무심결에 “네 할머니 닮아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딸의 얼굴을 보니, 그 안에 제 할머니 얼굴이 숨어 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걸까 싶었다.
내 얼굴에도 아비와 어미의 얼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얼굴이 버무려져
그러고 보니 딸 얼굴엔 나의 얼굴도 있고 제 어미의 얼굴도 있고 제 이모의 얼굴도 있고 또 제 사촌들과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어디 딸의 얼굴만 그럴까 싶었다. 내 얼굴에도 아비와 어미의 얼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얼굴이 버무려져 있을 거다. 큰 누이뻘 고종사촌 누이는 몇 년만에 만난 나를 보더니, “너는 어쩜 나이가 들수록 네 아버지를 그리 쏙 빼닮냐, 돌아가신 외삼촌 오신 줄 알았다!”며 반가움을 표하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잉태되는 순간부터는 배속에서 어미와 열 달을 더불어 있지만, 세상에 나올 때는 홀로다. 고독,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은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느끼는 보편 정서이며 존재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존재는 어미와 아비가 더불어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세상에 빛을 볼 수 없다. 그러니 더불어는 홀로의 배경이요 뿌리일 수밖에 없다. 그 더불어의 흔적이 내 얼굴에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리라.
바다위 섬처럼 둥둥 뜬 개체같지만, 수면 아래는 한 뿌리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존재이기에 사람은 따로따로 살아가는 듯 보인다. 각자의 개성과 에너지 흐름에 따라 각각은 이 세상에 때론 적응하며 때론 저항하며 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인간의 필수 생존 조건인 식의주만 놓고 보자. 현대인 중 자신의 먹을거리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직접 조리를 한다해도 그 재료는 마트나 장에서 구해왔을 거다. 시금치 하나만해도 그걸 키워낸 농부가 있으며 캐낸 손길과 운반한 발길과 그걸 운반하는 데에 동원된 자동차와 자동차를 운행하는 데에 필요한 석유와 온갖 부품들이 있다. 식탁에 올라온 시금치 한 뿌리만해도 그럴진데, 옷이나 집은 더 말해 무엇하리.
사람이란 따로 있는 듯 보이지만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마치 섬처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개체들같지만 그 수면 아래엔 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거다. 그러니 딸 안엔 할머니가 또 내 안엔 아비가 있어 그리 어울렁더울렁 어울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인간이란 더불어 홀로 태어나 따로 또 같은 존재들인 셈이다. 내 안에 너 있다. 네 안에 나 있다. 구상 시인은 그래서 홀로와 더불어의 균형과 조화를 노래했으리라.
신호승(가슴으로 대화하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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