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부처님 오신 날, 3세대의 보현사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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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3세대의 보현사 나들이
부처님 오시는 날이면 항상 시부모님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3대가 절에 간다.
휴일이라 늦은 잠에 곤히 빠져 있는 아이들을 깨워 나갈 준비를 서두르고 집에서 가까운 보현사로 향한다. 5월의 막바지. 자연은 더 깊은 봄의 녹색 향연으로 가고있다. 이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니, 어느 순간 고운 색의 옷을 차려입은 연등이 눈에 들어왔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라는 보현사의 환영 현수막을 지나 울퉁불퉁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른다. 고개를 돌리면 나지막한 키의 화려하고 강렬한 자태를 순수하게 뽐내는 작은 꽃들이 시선을 머물게 한다. 사루비아, 노란 민들레, 억새, 토끼풀.... 꽃들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자유로움에 그저 편안하다.
아버님은 절에 오시면 꼭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라며 옛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아버님의 어머님, 애들에게는 왕할머니 이야기다. 아버님은 초등학교때 공부하기는 싫어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절에 오는 일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였다고 회상하신다. 절에 와서 맛나게 나물 밥을 먹으면 어머니는 흐믓해 하시며 칭찬해주셔서 행복을 느꼈다는 기억 한가지. 또 하나는 중학교 시절, 어느날 일엽스님께서 “똘똘하다”하시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큰일하겠다.” 말씀해 주신 일이 너무나 또렷이 기억나신다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마칠 즈음 보현사가 서서히 눈앞에 들어선다. 화려한 외관은 아니지만 부처님과 마주하는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고, 마음이 더 가까이 다가감을 느낄 수 있다. 앞 마당에서부터 중앙 사찰로 향해 뻗은 알록달록한 연등은 부드러운 바람결에 나지막하게 흔들린다. 우리도 부처님께 올리는 연등에 이름표를 붙여 달았다. 본당으로 올라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손을 모아 다소곳하게 절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아이들도 역시나 할아버지를 닮아 뒷풀이 절밥, 비빔밥을 무척 좋아한다. 오늘도 한 그릇 소담하게 골고루 담은 고사리나물, 콩나물무침, 두부조림, 버섯볶음, 오이 도라지 무침이 풍성하다. 표고버섯을 넣은 미역국에다 이름 모를 산나물까지 맛있게 한 숟가락씩 떠 먹는 아이들 모습에서 그 시절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나간다.
먼저 식사를 마치신 아버님은 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느 아프리카 마을의 어린이에게 1등으로 먼저 뛰어 오면 맛있는 음식을 주겠다고 내기를 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손을 잡고 뛰고 와서 다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정말 그랬냐며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조금 놀라했지만 할아버지가 전하고자한 한 메시지를 이해 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우분트(UBUNT)!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I am because you are”라는 의미이다.
절을 나서서 돌아오는 길. 작은 길목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와 손녀들 모습이 말 그대로 우분트이다. 마치 함께여서 행복하다 말하고 있는 듯...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고….
글 · 사진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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