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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145) 파주를 걷는 가수, 곽푸른하늘

입력 : 2025-02-22 07:59:03
수정 : 2025-02-22 07:59:20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145)

파주를 걷는 가수, 곽푸른하늘

 

▲ 곽푸른하늘이 자주 걷는 출판도시에서  

 

곽푸른하늘은 요즘처럼 음악이 정신없이 소비되는 세상에 앨범 단위로 차근차근 음악을 내는 뮤지션이다. 2022년에 세 번째 앨범을 냈으니 3집 가수인 셈이다. 처음 세상에 얼굴을 알린 건 슈퍼스타K에 출연했던 2015. TOP 10 직전까지 올라가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음악적 깊이를 더하는 길을 택했다. 그 여정에는 파주가 함께 있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파주에 살고 있는 파주시민이다. 그리고 파주의 가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청년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을 파주에서 완성했고 2집부터는 온전히 파주에 살면서 영감을 받고 모든 곡을 쓰고 앨범을 제작했다. 특히 3집을 만들 때는 출판단지를 거닐며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했다고 하니 이미 파주의 가수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아티스트다.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산책로 파주출판단지, 그 안의 헌책방 블루박스에서 뮤지션 곽푸른하늘을 만났다.

 

▲ 공연 연습 모습 (씨티알 사운드 제공)

 

생명력과 쓸쓸함의 도시, 그런 파주가 좋아요

중학교 때 일산에서 가족이 이사왔어요. 그때부터 쭉 살다가 열여덟, 열아홉쯤에 부모님 모두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떠나시고 저만 남게 된 거죠. 보통 음악을 한다고 하면 홍대를 떠올리잖아요. 하다못해 서울에서 자취를 하든지.... 근데 저는 그런 바쁜 도시생활과는 잘 맞지 않는 거 같았어요. 파주가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 싶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종종 서울로 나갈 때면 한적한 곳에서 도시로 가는 느낌, 다시 도시에서 한적한 곳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좋았다고 한다. 물론 불편한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냥 서울에 가서 살까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기본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이동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운전을 하기 때문에 그런 불편함은 없어졌을 뿐더러, 파주에서 받는 좋은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파주가 분단의 아픔, 동시에 평화의 상징이기도 한 공간이잖아요. 저도 그런 감각을 많이 느껴요. 파주엔 다른 지역이 보여주지 못하는 어떤 쓸쓸함이 있는데 제가 많이 공감을 하는 부분이예요. 하지만 여름이 되면 생명력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모이고. 또 해마다 철새들이 왔다가고... 스스로 자연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그래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느낌들이 제 노래에 담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의 유일한 취미가 출판단지 걷기. 집에서 나와 출판단지를 한 바퀴 돌면 딱 10km가 나온다. 그 시간과 거리가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곱씹기 딱 알맞은 시간이라 출판단지 걷기는 자신에게 운동 이상이라고 한다.

 

▲ 3집 발매기념 공연 (씨티알 사운드 제공)
 

삼무곡청소년마을에서 나로 살아가도록 배워

삼무곡청소년마을은 곽푸른하늘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다닌 삼척의 대안학교이다.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이다. 그는 삼무곡에서 했던 모든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책없는 여행이라고, 히치하이킹 해서 설악산까지 가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봉화에 가서 나홀로 존재하기. 여행에선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찬 곳이 아니란 것, 홀로 되기 위해선 철저히 고립돼 봄으로써 나를 마주해보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배웠어요. 지금 학교에서는 한 가지만 골라서 하는 친구도 있고 둘 다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전 둘 다 했었어요.”

그는 삼무곡을 자랑스러워한다. “누군가가 되라고 하는 학교는 많지만 나로 살아가도록 배우는 학교는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삼무곡 졸업작품, 1집 앨범 있는듯 없는듯

곽푸른하늘의 1있는듯 없는듯은 대안학교 재학시절 만든 곡들을 엮어 졸업작품으로 만든 앨범이다. 청소년기에 배우고 느낀 경험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졸업선물이 된 셈이니 개인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앨범이다.

처음부터 가수가 되려고 음악을 한 건 아니예요. 제가 밴드부였는데 보컬이었어요. 근데 노래 연습을 하려면 꼭 옆에 기타 치는 친구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기타를 배워야겠다란 생각이 들어서 처음 시작을 했어요. 당시 파주에 사시는 좋은 선생님을 소개받아서 클래식 기타를 처음부터 배우게 됐죠. 연주를 하는 법을 먼저 배운 셈인데 악기와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냥 끄적거리던 것들을 묶어서 앨범을 만들게 됐어요.”

데뷔 앨범부터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개성과 완성도를 보여준 가수, 곽푸른하늘은 겸손한 아티스트였다. 겸손하다는 건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현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노래, 가사, 연주 등에 관해 차분하고 정돈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노래를 잘 못해요. 소찬휘, 아델처럼 못하죠. 다만 제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사뿐만 아니라 악기에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거나 노래하고 있진 않지만 기타를 칠 때도 분명히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봐요.”

 

▲ 공연 사진 (씨티알 사운드 제공)
 

3, “하니랜드, 진짜 이름은 허니랜드

곽푸른하늘의 1집부터 EP앨범, 그리고 과도기적인 2집을 지나면 한층 원숙해진 3집에 이른다. 그리고 이 앨범에 파주시민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노래가 있다. ‘도시+하니랜드란 트랙인데, 여기서 하니랜드는 바로 조리읍에 있는 하니랜드에 갔다가 쓴 곡이다. 파주의 지명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노래이기도 하다.

두 개의 노래를 한 트랙으로 만들었다는 이 노래엔 파주를 바라보는 곽푸른하늘만의 시선이 담겨있다. 어딘가 동화적인 스산함이 느껴지는데, 바람처럼 살랑거리는 기타반주 위에 얹히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떠났네’, 그리고 다신 오지 않았네라는 슬픈 가사가 있다. 하니랜드의 진짜 이름은 허니랜드(honeyland)’라며 주문처럼 반복되는 가사가 오래된 비밀 이야기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곽푸른하늘은 아직까지 하니랜드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라며 방긋 웃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노랫말

그의 노랫말은 간결하고 함축적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멋을 부렸거나 현학적이지도 않다. 하얀 벽에 사진을 걸어놓은 듯 어떤 상황 속으로 빠져들며 음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런 작법은 삼무곡청소년마을의 영향이 크다.

예전에 학교에서 연습하던 것들이 있는데요. 짧은 문장을 불필요한 단어나 미사여구를 빼고 만트라처럼 되풀이하면서 말하는 거였어요. 그 습관이 좀 남아있는 거 같아요. 불필요한 말들이나 감정들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사에 함축적으로 적는... 그래서 좀 함축적으로 들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부끄러움도 많고 제가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 홍대 왓차홀 단독 공연 (씨티알 사운드 제공)

 

음악은 어려움을 대면하는 나만의 기록

나는 과연 음악가로서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동그라미를 뺑글뺑글 돌고 있는데 그게 조금씩 확장을 한다고 생각해요. 돌아가더라도, 가장 빠른 길로 가지 못하더라도 계속 넓혀가면서 안 가본 길도 가보고 안 해본 것도 해보고 안 써본 얘기도 써보고 이렇게 노래를 계속해 나가도 괜찮겠다 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는 음악을 자신의 창작 과정을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그걸 대면하고 풀어가는 기록이라고 얘기한다. 그 기록이 곧 노래란 뜻이다. 그런 어려움을 계속 곱씹다 보면 어떤 결정체로 나오는 게 음악이고 그럴 때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과정도 결과도 진주 같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 지는 몰라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담담히 웃었다.

행복할 때 곡을 쓰고 싶기도 해요. 근데 아직은 그 행복을 즐기는 편이지 굳이 기타를 잡고 곡을 쓰진 않아요. 다만 아픔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두 감정이 모두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기쁨과 슬픔의 공존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명장면처럼, 곽푸른하늘만의 음악적, 인간적 신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헤이리 삼무곡어린이마을에서 교사로 일하는 중

그는 자신의 앨범을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체화해서 담아놓은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20223집을 낸 후 다소 텅 빈 마음인 상태라며, 요즘은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워넣기 위해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걸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헤이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아이들과 함께 한 활동은 즉흥극이었다.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에 유튜브를 보며 익숙해지는 있는 중이라 말했다.

연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공연도 어떻게 보면 노래로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꺼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극과 맞닿는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전 최근 10년 동안 거의 음악만 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었고 재밌게 하고 있어요.”

그가 일하는 곳은 헤이리에 있는 삼무곡어린이마을이다. 그가 졸업한 삼무곡청소년마을에서 운영하는 분교인셈이다. 본교는 삼척에 있지만 어린이 과정은 파주에 있다. 자신을 포함해 모든 교사진이 삼무곡 졸업생이자 예술가라며 한 명씩 이름과 분야를 말해주는 등 애틋하고 자랑스러운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작지만 큰 사람

곽푸른하늘은 아이들을 작지만 큰 사람이라고 말했다. 건강하고 순수한 아이를 표현하는 근사한 말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학교 다닐 적 어려워하던 하이쿠 짓기도 척척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 진짜 시인이란 어린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고.

제가 예전 학교에서 하이쿠 짓기를 할 때만 해도 인생을 좀 깨달으신 흰수염 할아버지 정도나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어린이마을의 아이들은 달라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직관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해요. 그게 감동을 줘요.”

 

어떤 음악을 할 것어떤 사람이 될 것은 같은 질문

기술적으로 나도 저런 음악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뮤지션은 많아요. 하지만 결국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온전한 내가 되고 싶어요.”

3집까지 낸 지금, 이제 조금씩 어떤 음악을 할 것인지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와 같은 질문이란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어린이마을 선생님들과 함께 권정생 작가의 산문집을 읽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스스로 증명한 그 분의 삶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서 다양한 책도 봤지만 결국에는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단 걸 깨달았어요. 내가 지금 예술을 하고 있지만 나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을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그는 관심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인생이란 이웃과 사회에 손을 내밀고 위로하는 것이란 작은 결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정말 내 안에 갇혀서 누가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그런 노래들을 썼어요. 이제는 내 이웃,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 이런 얘기들을 조금씩 끄집어내서 들려드리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려고 하고, 제가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아픔을 겪고 계신 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파주를 포함한 여러 현장에서도 제가 노래를 많이 하는데 감히 어떻게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도 적어도 그 분들의 이야기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곽푸른하늘이 소속된 레이블 씨티알싸운드홈페이지에는 경쟁, 경제논리에서 반발짝 물러나 독립정신이 투철한 음악을 추구합니다.’라고 적힌 소개글이 있다.
소개글처럼 곽푸른하늘은 자기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자신이 사는 도시와 깊이 교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정갈한 언어와 음악으로 구축하는 아티스트였다. 파주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더 많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홍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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