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현안진단]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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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 현안진단]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
한·미·일 준동맹 시대의 개막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준동맹’ 시대를 맞이했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8월 18일 미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가 만들어낸 결과다. 세 정상은 ‘획기적’,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들을 동원하여 그 성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최초의 한·미·일 3국 정상회의 개최 자체가 최초이며,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일이었다. 거꾸로 그동안 이러한 정상회의가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 특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세 정상은 회담 결과를 세 문서에 담았다. 정상회의 정례화 등 3국 간 포괄적 협력방안을 망라한 한·미·일 공동성명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협력 추진 과정의 원칙을 문서화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한 정보 교환, 메시지 조율, 대응조처를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내용의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등이다. 한·미·일 3국에 위협이 닥쳤을 때 즉각적으로 공동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맹에 준하는 안보협력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써 대중, 대북 견제 목적을 전면에 내세운 인도·태평양 지역협력체 가동이 공식화되었다.
강제 의무(duty) 조항은 없지만, ‘정신’과 ‘원칙’을 조합할 때, ‘공약’은 사실상 위협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자동개입(트리거) 조항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문서에 ‘의무(duty)’라는 말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미국 측은 이 문서가 의무(obligation)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의무(duty)로 해석될 여지를 부인하지 않는다. 백악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협의할 의무라고 부르는 것(what we would call a duty to consult)을 서약”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서로 한 국가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상황이나 위기가 발생할 경우, 서로 협의할 것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틈새’를 보이면서 어긋나 있던 상황을 교정했다는 점, 즉 두 양자 동맹을 일체화하여 ‘틈’을 없앴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회담을 ‘획기적’이며 ‘역사적’이라고 평가하는 최대 덕목(?)이 되고 있다.
만시지탄의 깨지기 쉬운 꿈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성과들은 미국 입장에서는 만시지탄일 것이다. 그만큼 행복감은 더욱 큰 모양이다.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실제 그렇기 때문”이라며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던 바이든 대통령, 그와 함께 정상회의에 배석했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커트 캠벨 국가안전보장회의 인도·태평양담당 조정관은 모두 오바마 정권 때 악화해 있던 한·일관계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다. 미국이 리밸런싱(재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견제를 개시하던 시기다. 이들 입장에선 오랜 꿈을 이제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깨지기 쉬운 꿈이기도 하다.
이번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고 기시다 총리가 적극 호응했으나, 이들이 보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주간 뉴스레터(8.17.)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최대 공로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 정상이 모두 퇴임한 뒤에도 이번에 만들어진 협력의 틀이 이어질지 의문을 던졌다.(Robbie Gramer, Jack Detsch, “Biden’s Big Bet on Japan and South Korea” [Situation Report] Foreign Policy, 2023.8.17.)
이러한 생각은 8월 15일자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실린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세 명의 연구원들(Andrew Yeo, Mireya Solis, Hanna Foreman)이 작성한 논문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기회의 창(America’s Window of Opportunity in Asia)”에서 필자들은 그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속도감 있는 추진력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제언하고 있다. 논문은 미국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준 윤 대통령의 대일정책이 한국에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이어서 이르면 내년 한국에서 실시되는 총선 결과에 따라, 또는 정권이 교체될 경우 한·미·일 협력의 틀이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저조한 것도 위기 요인으로 들었다.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도 내년 재선을 위한 대통령 선거전에 몰두하게 되면 3국 정상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진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신속한 행동을 요구했다.
유엔군사령부의 존재감
캠프 데이비드에서 확인된 것은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의 제도적 장치로 여러 수준의 3자 회담과 합동군사훈련을 정례화한 데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를 담보할 기구를 현재 갖고 있지 못하며, 이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 측은 핫라인 개설을 성과로 제시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 핫라인 개설의 문구는 들어가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존 연락체계를 활용해서 대화를 보다 정기적으로 실시해 나가는 것으로, 새로운 제도를 창설하는 것은 아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상회의 정례화라는 것도, 쿼드처럼 각국에서 돌아가며 실시하는 것과 달리, 국제회의에서의 회담을 포함해서 연1회 실시한다는 데 그치고 있다.
그래서 주목되고 있는 것이 유엔군사령부일 것이다. 캠프 데이비드의 합의에도 그 실행을 담보하기 위한 기구로 동북아 지역에서 NATO와 같은 다자안보기구를 창설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유엔사는 아시아판 NATO를 대신할 수 있는 기구가 될 수 있다. 2018년 판문점선언에 따라 종전선언의 가능성이 가시화하고, 이에 따라 유엔사 해체 논의가 나옴으로써 유엔사의 불안한 미래를 시사하고 있었다. 정전체제 감시를 핵심 기능으로 하는 유엔사는 정전체제 해체와 함께 존속의 의미를 잃게 된다.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한·미·일 준동맹이 지속가능한 중국 견제 체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 정전체제가 지속되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8.15에 어울리지 않게 유엔사의 기능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논쟁 가능성을 차단한 것은 캠프 데이비드를 향하는 길에서 사전 포석의 의미를 지닌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유엔사가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사 회원국의 전력을 즉각적이며 자동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것이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이유”라고 못 박아 유엔사의 존재에 이의를 달지 못하게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언급도 종전선언이 유엔사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기는 하다.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또 주목할 부분은, 유엔사 기능을 강조하는 대목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한·미·일 간 정찰자산 협력과 북핵 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의 필요성에 이어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이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억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방의 한국 내 유엔군사령부와 일본의 유엔군후방사령부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에 이어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가능성을 암시한 대목이다.
한·일 ACSA와 일본의 또 다른 꿈
지난해 말 개정된 일본의 안보문서들은 이번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겹쳐 놓고 볼 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들 문서, 특히 『국가안보전략』과 『국가방위전략』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국은 동지국(like-minded countries)의 범주에 포함되어, 다각적 방위협력의 추진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들 국가들과의 원활화협정(RAA)과 함께 ACSA의 추진이 목표로 제시되어 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속도를 내서 추진될 과제들의 목록 가운데 한·일 ACSA는 상위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캠프 데이비드의 정신과 원칙, 공약들로 이루어지는 대 중국 포위망은 한·미·일 3국을 같은 무게로 구속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한·미·일 준동맹이 한반도 정전체제를 배경으로 냉전기의 3각 안보협력과 같은 위계적 질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구속력은 균일하지 않다. 전선(front-line)에 서 있는 한국은 포위망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중국을 정면에서 상대하게 될 것이다.
현재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한·일관계가 위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캠프 데이비드에서도 거듭 확인되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동원 등 과거사 현안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른바 일본 측의 호응 조치라는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의 호응 부족을 지적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정면에서 대답하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국민에게 가장 큰 관심사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후방기지의 자리에 서 있는 일본, 전선과 후방을 연결하여 이를 관리하는 자리에 있는 미국은 한국에 비해 자유로운 공간이 크다. 이미 일본의 행보는 다음 단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9월, 또는 11월에라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실시하기로 하고 이를 조율하고 있는 것 같다. 『아사히신문』은 캠프 데이비드의 성과를 보도하면서 한반도나 대만 유사시에 최전선에서 심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일본으로서 이 지역의 긴장완화는 사활적 문제라고 하면서, 중국과의 긴장완화를 주도하는 기시다 외교를 주문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도 일본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도 깊어서 대립 격화에서 오는 리스크가 매우 크다면서, 지역의 안정이 최우선이며 긴장완화를 위해 대화에도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해가 상충하는 한국과의 연계를 중시하여, 한·중·일의 의사소통을 강화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동북아시아 진영화의 양상, 회피해야 할 신냉전의 악몽
한·미·일 준동맹화에 맞춰 북·중·러 접근이 활발해지면서 동북아시아에 진영화와 대립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하순에는 중·러 해군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인근 동해상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미국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호가 부산에 기항하는 시기에 맞춰 양측 함정 11척과 항공기 30여대를 동원해 실시했다. 이때 중·러 연합함대는 알래스카 인근 해상까지 진출해서 미국을 긴장시켰다. 8월 10일에는 주한 러시아 외교관들이 주한 중국 대사관을 찾아가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이틀 후 평양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대사들이 만나 우호를 과시했다.
8월 17일 이른 아침 미군 전략정찰기가 원산 동쪽 해역 상공 등에서 선회비행을 한 데 대해 북한이 경제수역 상공을 침범했다며 전투기를 긴급발진시켜 대응하는 일이 있었다. 북한은 주권 수호를 위해 어떠한 물리력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8월 19일에는 중국이 대만 주변에서 해공군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중국 당국은 “대만 독립을 획책하는 분열세력이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걸어 온 도발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설명했다. 대만의 라이칭더 부총통이 방미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민진당과 미국이 결탁한 새로운 도발’로 규정하고 강렬한 비판을 표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을지 자유의 방패’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역대 최대 규모로 실시된다. 여기에는 미국을 비롯, 호주, 캐나다, 영국, 그리스, 이탈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등 10개 유엔사 참전국이 참가한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이러한 군사연습을 정례화 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유엔사의 일원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행보를 달리하고 있다. 8월 22일∼24일, 브릭스 정상회의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다. 여기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남아공 정상들이 참가한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진정 이 지역의 평화 증진에 기여할지 여부는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다만,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준동맹이 가시화하면서 가까스로 회피되던 동북아시아 신냉전의 기류가 점차 거세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해방으로부터 반년 만에 모스크바 3상회의를 계기로 세계적인 냉전 개시 이전에 한반도 냉전을 먼저 개시하여,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으로 점철되었던 현대사를 성찰할 때다. 한국 외교는 신냉전의 기류에 스스로를 내맡기기보다 이를 회피하고 평화의 방파제를 구축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금년에 우리에게 개최국 자격이 주어져 있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우리 외교에 가까스로 ‘기회의 창’으로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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