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성예술컬럼 <상처와 치유의 예술> 1회 -자신의 귀를 자른 순례자, 반 고흐
수정 : 2023-08-08 06:30:04
신경다양성예술컬럼 <상처와 치유의 예술> 1회- 자신의 귀를 자른 순례자, 반 고흐
전승일(애니메이션 감독, 신경다양성예술센터 대표)
연재를 시작하며
“예술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나온다.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다” 현대미술의 대가 피카소가 한 말이다. 인간의 심리적 내면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명언이다. 인간에게 정신적 · 심리적 동기는 역사적으로 예술의 본질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어왔다. 이에 본 컬럼은 상처와 고통, 장애와 역경을 딛고 일어나 탄생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그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봄으로서 신경다양성예술의 창조성과 고유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자신의 귀를 자른 순례자, 반 고흐
<귀를 자르고 나서 그린 자화상, 1889>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스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파, 표현주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고흐는 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드로잉들을 1890년 권총 자살을 감행하기 전 10여 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창작하였다.
아버지를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그는 동생 테오의 권유로 1880년 브뤼셀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원근법, 해부학, 소묘 등을 공부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고, 파리에 머물던 1887년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만나 친구가 되어 프로방스 아를에 있던 ‘노란집’에서 동거를 하며 ‘예술공동체’를 꿈꾸지만, 고흐의 믿음과는 달리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 끝에 결국 파국을 맞는다.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Vincent van Gogh Painting Sunflowers, 1888)>는 두 사람 사이의 불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고흐는 오른쪽에 몸이 잘린 형태로 그려져 있고, 표정은 마치 술에 취한 듯 초점을 잃고 게슴치레하다. 그리고 해바라기는 꽃잎이 떨어진 채 시들어져 있는 상태이고, 붓은 고흐의 거칠고 역동적인 필치에 어울리지 않게 얇고 가느다란 막대로 그려져 있다. 심리학적 견해에 따르면, 그림의 구성에서 고갱이 고흐를 지배하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해석한다.
고흐는 188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일요일 밤에 고갱과 말다툼을 후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이를 자화상으로 그렸다. 그는 왜 자신의 귀를 잘랐던 것일까? <반 고흐의 귀>(버나뎃 머피 지음, 박찬원 옮김)에 따르면 고흐는 ‘발작’을 일으킨 상태에서, 밤에는 매춘업소에서 일하고, 낮에는 청소 일을 하는 한 여성의 망가진 피부를 회복해보려고 귀를 잘라 여인에게 가져갔다고 한다.
고흐의 발작은 정신적 ·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커다란 충격과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공동체’를 꿈꾸었던 동료 화가 고갱의 결별 통보, 전적인 재정적 지원을 했던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으로 인한 삶의 불안감과 절망감, 그리고 그리고 섬망(譫妄, Acute Confusional State, 급성혼란상태), 조울증, 측두엽간질, 청각질환 메르니에르병, 압생트(정신착란을 일으킬 수 있는 술) 과음으로 인한 튜온 중독, 경계성 인격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나타난 행동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으로 인해 그는 1889년 5월 생레미 프로방스에 있는 생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 정신의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1판이 발간된 시기가 1952년이기 때문에 고흐의 정신질환 진단명은 ‘추정’으로 봐야할 것이다. DSM은 미국정신의학협회(APS)에서 출간하는 서적으로, 정신질환의 진단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슬픔에 찬 노인>
반 고흐의 <슬픔에 찬 노인(Sorrowing Old Man)>은 1890년에 기존 작품인 연필 드로잉과 석판화를 바탕으로 그린 유화 작품으로, 그가 자살하기 두 달 전쯤인 5월초 완성되었다. 고흐 연구자 얀 헐스커는 이 <슬픔에 찬 노인>은 분명히 고흐가 자신의 과거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고흐의 ‘정신적 붕괴’에 대한 명백한 징후들이 이 작품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흐는 절망과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노인의 모습에 대하여, 이 노인은 삶의 역경 속에서 고뇌하며 기도하는 자화상이라고 하였다. 즉, 이 그림은 고흐가 인간 삶의 본질과 영원성에 대한 순례적 여정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천착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던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 입원 중에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영원의 문에서>라고도 불리며, 2018년 줄리안 슈나벨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 <영원의 문에서>로 만들어졌다.
* 영화 트레일러 보기: https://youtu.be/vPaXA-QfG6Y
<까마귀가 있는 밀밭>
그의 또 다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은 1890년 그가 생레미 정신병원을 떠나 파리 근처의 오베르쉬르우아즈에 머물면서 자살하기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이다. 캔버스 천 표면 위에 거칠게 요동치는 붓 터치로 그려진 밀밭과 검푸른 색의 음울하고 어두운 하늘, 죽음을 암시하며 어딘가 불길한 느낌의 까마귀 떼, 세 갈래로 나눠진 갈림길에 놓인 삶의 딜레마 등은 자살 직전 그의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가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그의 다른 밀밭 그림에 비해 매우 어두운 느낌이 짙게 배어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은 성난 하늘 아래의 거대한 밀밭을 묘사한 것이고, 나는 그 안에 있는 극도의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썼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절망감과 고립을 담은 이 그림은 불안한 화면을 통해 인간 영혼의 고독과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꿈> 5편 ‘까마귀’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또한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가 1990년에 만든 8편의 단편이 묶어진 옴니버스 영화 <꿈(Dreams)>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까마귀>편에서 직접 영화적 공간으로 등장하는데,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던 주인공이 <아를르의 도개교(The Langlois Bridge at Arles, 1888)> 속으로 빠져 들어가 돌아다니다가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직접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고흐 역할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를 연출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스스로 “저는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입니다”라고 말한 고흐는 기독교와 예술을 결부시켰던 가문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성장했으며, 빈농의 삶에 천착했던 <이삭 줍는 여인들(The Gleaners, 1857)>을 그린 장프랑수아 밀레를 동경하면서, 밀레의 그림과 비슷한 구도의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 1888)>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고흐는 벨기에 보리나주에 있는 가난한 탄광촌에서 18개월 동안 전도와 희생적인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
<예술, 상처를 말하다>(심상용 지음)에 따르면 “보리나주 시기에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난 그림이며,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비참한 현실에 대한 기록이나 고발 이상의 것,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 삶과 노동 자체의 존엄함과 숭고미에 대한 예찬을 담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복음 활동에 대하여 중단 통보를 받은 후, 고흐는 당시 교회 제도에 커다란 실망을 하고, 1880년 교회와 결별하게 된다.
1890년 7월 27일 자신의 심장에 권총을 발사하고, 7월 29일 사망한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는 이렇게 떠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였고, 동생 테오는 어머니한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형은 이 땅에서 찾을 수 없는 평화를 찾았어요”
<별이 빛나는 밤>
고흐가 생전에 판매한 그림은 단 한 점으로 평생을 가난과 실패, 번뇌와 슬픔,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의 끝이 어쩌면 죽음이 아니라, 신과 이어지는 영원의 세계, 즉 자신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처럼 우주의 광대함과 영원불멸과의 연결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
01 : 자신의 귀를 자른 순례자, 반 고흐
02 : 비운의 천재적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03 : 참혹한 고통의 영혼, 프리다 칼로
04 : 전쟁과 가난에 마주하다, 케테 콜비츠
05 : 치유와 명상의 화가, 마크 로스코
06 : 거리의 이단아, 바스키아
07 : 불안과 공포의 반복, 뭉크
08 : 신경증의 승화, 쿠사마 야요이
09 : 병원에서 생을 마치다, 아돌프 볼 플리
10 : 아르 브뤼를 발견하다, 장 뒤뷔페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