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하러 징검다리처럼 타고 임진강을 건넜던 유빙(流氷)을 못봤다. 또 다른 전쟁, 기후 전쟁
땔감하러 징검다리처럼 타고 임진강을 건넜던 유빙(流氷)을 못봤다.
또 다른 전쟁, 기후 전쟁
노현기 (전 파주환경운동연합 의장)
▲검은목두루미를 입양한 재두루미가족 윗논에 재두루미떼/ 검은목두루미는 눈만 빨갛고 재두루미는 넓게 붉은 눈화장을 했다.
지난 주말 고등학생들이 오랜만에 DMZ생태체험을 왔다. 임진강, 한강하구 조류 조사를 오랫동안 해온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한강하구교사모임 정진영 선생님이 제자들과 오전에 상류인 연천을 오후에는 파주 임진강을 답사하러 왔다. 새는 정진영 선생이 전문가이고 파주 DMZ와 임진강을 둘러보며 평화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늦반딧불이 철에 어린 학생들이 올 때는 서늘해져야 나오는 반딧불이가 더운 가을날씨에 안 나올까 봐 노심초사했다. 겨울철에는 임진강변 논과 강에 늘 있는 두루미들과 독수리들로 충분히 만족할테니 마음이 편하다. 더구나 계곡처럼 흐르는 임진강 여울에 모여있는 두루미들을 충분히 보고 오면 여기선 멋진 임진강을 풍경을 즐기고 아름다운 곳마다 잠겨 있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느끼면 된다.
“임진강의 아름다운 곳에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잠겨 있다”
사전에 보낸 교안 제목이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덕진산성과 장산전망대에서 보는 초평도 대한 설명자료이다. 임진강이 DMZ를 통과해 남쪽으로 접어든 연천 필승교가 보이는 곳부터 한강과 만나는 교하(交河)까지 임진강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꼽은 임진강 팔경에 두 곳 모두 속한다.
임진강은 6. 25 아침부터 정전협정일까지 3년 동안 밀고 밀리는 격전지였다. 정전이후 분단시대에도 임진강변 사람들은 늘 전쟁을 겪어야 했다. 한겨울 밤중에 벌어지는 ‘나무꾼 학살사건’은 임진강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전쟁이었다. 장산전망대에서 보이는 초평도 위쪽과 덕진산성에서 보이는 초평도 아래쪽 임진강에서 연달아 벌어졌던 슬픔과 분노의 현장을 학생들이 답사한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가 ‘살아나는 임진강’(돌베게, 1992)이라는 실화소설로 1962년도에 있었던 사건을 30년 만에 다시 알려줬다.
임진강변 운천리 사람들이 겨울철 땔감을 하러 한밤중에 임진강을 건넜는데 미군이 나무꾼 두 명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유족들은 이틀 뒤 미군병원에서 시신을 돌려 받았는데 그중 한 명 옷에는 핏자국이 없었다. 알고 보니 정신나간 미군 한명이 나무꾼을 옷을 벗기고 얼음판에 엎어놓고 사냥용 엽총으로 쏘아죽였다. 불행 중 다행히 김충식이라는 기자가 이 사건을 취재해 보도했다. 1962년 1월6일 벌어진 사건기사를 보고 분노한 학생들이 시위를 크게 벌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학생들 시위를 베트남 파병 조건을 위한 협상에 활용해 처음 한미소파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살아나는 임진강’이 절판된 것을 중고서점에서 어렵게 구해 읽은 덕에 묻혀진 ‘나무꾼 학살사건’들을 더 들을 수 있었다. 덕진산성에서 보는 초평도 아래쪽 임진강을 ‘얼음 타고’ 건넜던 마정리 사람들이 겪은 사건들이다. 운천리 사람들이 당한 때와 비슷한 1960년 혹은 61년 1월 초에 있던 일을 마정2리 박덕연 어르신한테 들었다.
▲해마루촌 앞에서 본 초평도
“땔감 때문에 고생했어. 볏짚이 나오는데 볏짚을 땔감으로 쓸 수 없었던 게 초가집 지붕을 해야 해. 겨울에 나무가 없으니까 대낮에는 미군들이 있어. 개네들한테 들키면 안돼. 밤 12시, 1시에 강을 건너 가. 흥기네 살던 정자리로 나무하러 갔다가 얼음 타고 건너와. 그때 17~18살 됐을 거야. 나하고 용덕이 친구들 거진다 임진강 얼음 타고 건너가 갈대를 베어왔어. 근데 그날 ‘빠빵’ 소리가 나. 보통 세뭇을 해갖고 왔는데, 두뭇해서 올려놨는데 총소리가 났어. 나무고 뭐고 냅다 뛰어와 강선이를 넘었는데 ‘죽었어, 죽었어’하는 소리가 들려. 마정리 박원봉, 이병우씨네 앞집 박원봉이 죽었어. 건너와서 한국 경찰들한테 잡혔어. 뒤에서는 미군들이 총 쏘고 이쪽에서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어. 한이네 뒤에 빵커가 있어. 지금도 있을거야. 그 안에 경찰들이 몰아넣었어. 미군한테 잡힌 사람들은 주내에 있는 CID로 갔다가 한국 경찰서로 넘겼어.”
교안에 적은 내용이다. 마정2리 박호연 어르신은 더 많은 사건이 묻혀 있음을 시사하는 말을 했다.
“(나무꾼들이 미군에 총맞아 죽은 일들은) 몰라~ 왜 모르냐면 이박사가(이승만) 보도를 못하게 하는데다 간첩 쐈다고 해. 주민들이 알게 뭐야, 농민인지 간첩인지.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왜 자네(필자) 사는 집에 살던 인섭이, 인섭이 아버지도 나무하러 갔다가 미군 총 맞아 죽었어.”
박덕연 어르신이 ‘얼음을 타고 건넌다’고 한 것은 유빙(流氷)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강을 건넌다는 말이다. 초평도 위쪽은 초평도에 막혀 밀물의 힘이 덜하고 얕아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한 얼음판이다.
반면 초평도 아래 마정리와 정자리 사이 임진강까지는 바닷물이 밀고 들어올 때 추운 겨울 꽁꽁 언 임진강 얼음을 깨면서 올라온다. 박덕연 어르신은 얼음을 타다 빠지면 아주 위험하다고 했다. 물이 차기도 했지만 물살이 쎄기 때문이다. 그 얼음덩이가 둥둥 떠있는 것을 유빙이라고 하는데 겨울철 임진강을 더 아름답게 하는 풍경이다.
겨울날 임진강을 더욱 아름답게 했던 유빙이 10대, 20대 젊은 이들이 목숨 걸고 땔나무를 하러 갈 때 다리가 됐던 얼음덩어리들이다.
그때 나무꾼들과 같은 또래학생들과 얼음덩어리가 아닌 통일대교로 임진강을 건넜다. 통일촌마을박물관에서 DMZ 남북 관할지역에 있는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 민간인통제구역에 있는 통일촌과 해마루촌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 먼저 이야기해 주고는 분단선인 DMZ 지도 앞에 섰다.
▲장산전망대에서 본 초평도
“여러분들은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에 태어나야지 하고 선택해서 태어났습니까?”
작은 소리로 ‘아니오’ 혹은 도리도리 하는 몸짓으로 답한다.
“네~ 우리는 누구도 엄마, 아빠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저는 북쪽이 아닌 남쪽에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가자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너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났고 그것도 한국전쟁이 끝난지 한참 지난 뒤에 태어난 아주 큰 행운입니다.”
모두들 공감했다. 특히 현재 전쟁 중인 나라를 이야기할 때 표정부터 달라졌다. 정권과 계엄 시대를 접경지역에 살면서 더더욱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고구려, 통일신라 때 특징을 갖고 있고 조선 광해군때도 보수했던 덕진산성을 입구에서부터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시베리아흰두루미 가족과 검은목두루미를 입양한 재두루미 가족이 왔다는 말에 정진영 선생은 자원한 학생들과 교사 두분이 별도로 시베리아흰두루미 가족을 찾아 다니기로 했다. 재두루미와 두루미 가족이 논 곳곳에서 낙곡을 멋고 있었다. 지역 농민들이 돈을 모아 주고 있는 식사를 한 독수리들은 곳곳에 편히 앉아 쉬고 있었다. 기러기들한테 완전히 점령당한 논도 있다.
해마루촌 앞 초평도가 가까이 보이는 임진강변 논에서 검은목두루미를 입양해 두해째 같이오는 재두루미 가족을 만났다. 윗배미 논에는 처녀, 총각 재두루미들이 모여 쌍쌍파티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19와 남북관계 악화로 겨울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들이 많이 늘었다.
시베리아흰두루미를 봤던 곳에서는 재두루미 가족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시베리아흰두루미 가족을 봤다는 곳에도 재두루미 가족이 있었다. 시베리아흰두루미는 이동기에 한 마리씩 재두루미 무리에 끼어 오는 건 해마다 봤는데 세 마리 한가족이 와 월동하는 건 처음이다. 매번 여기저기 있는 걸 보니 시베리아흰두루미 가족이 아직 땅을 장만하지 못한 것 같다. 임진강에 있을 것 같은데 민통선을 나와 장산전망대로 가야할 시간이다.
나무꾼 학살사건의 피해를 당한 마정리, 운천리, 장산리를 거쳐 장산 꼭데기 군헬기장에 버스가 섰다. 5분정도 숲속길을 걸어가 북서쪽 개성 송악산까지 보이는 장산전망대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장산전망대에 도착하자마자 멋진 풍경에 감탄사부터 낸다. 덕진산성에서 본 것과 반대방향에서 초평도를 보는 것이며 맞은 편은 운천리 사람들이 한밤중에 강건너 나무하러 갔던 하포리이다. 지금은 멸공사격장이 보인다. 현재의 전쟁유적지이다.
초평도 위쪽 막개여울이 있는 넓은 임진강은 평평하고 곱게 얼어있고 물은 여울로 흐른다. 수많은 기러기들 사이에 두루미들이 보인다. 필드스코프를 설치한 교사 한분이 소리쳤다.
“어~ 시베리아흰두루미네요. 두루미가 아니라 시베리아흰두루미예요.”
모두들 줄서서 작은 렌즈에 눈을 댄다. 지금은 노인이된 옛날 아이들은 두루미 잡기 놀이를 할 정도로 흔했던 새들이 지금은 모두 멸종위기종이 됐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보기힘들어진 것이 또 있었다. 나무하러 갈 때 임진강을 타고 건넜던 유빙을 못봤다. 2020년 60일 장마로 대 홍수를 겪었던 그해 겨울 임진강이 얼지 않았다. 평생 이 지역에서 살아온 농부는 팔십 평생 겨울에 임진강이 얼지않은 건 처음본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오늘 겨울에 임진강에서 볼수 있는 귀한 새들을 모두 봤습니다. 그런데 12월 말 덕진산성에서 본 임진강에서 늘 봤던 유빙을 못봤습니다. 겨울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입니다. DMZ와 민진강은 파주시민들만의 것이 아니지만 파주시민들이 지키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임진강을 위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 주십시오. 기후 때문에 생기는 임진강의 문제는 파주시민들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겪는 문제이고, 전 세계가 겪고 있습니다. 개인의 작은 실천도 필요하지만 정부와 기업보고 해결하라고 해주십시오.”
이 겨울도 임진강은 덥다. 또다른 전쟁 기후전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