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 > 있는 그대로
수정 : 2023-02-24 06:42:49
<틴 > 있는 그대로
우리 학교는 졸업식이 조금 남다르다. 학교에서 부르는 공식 명칭은 '존재의 선언식'이다.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경험들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졸업 준비 과정인 '존재의 선언식'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지금 '존재의 선언식' 과정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 사는 법과, '참 학생'으로 사는 법을 훈련 중이다.
존재의 선언식 과정에서는 현곡 샘(삼무곡 교장)이 내주시는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살아온 시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자기 배움으로 해석해 글로 정리해야 하고, 산속에서 오롯이 자기와 마주하는 혼자 살기와 대책 없는 여행 등 수행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요즘 나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곡 샘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엽서 만들기'를 수행과제로 주셨다. 살아오면서,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 미안하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했던 사람, 고맙지만 고맙다고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써서 보내는 조금 특별한사랑 연습이다. 이 과제는 함께 졸업 준비를 하는 시은이와 지혜에게도 주어졌다. 언제인가 ‘길 찾는 집’(삼무곡 본관 건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곁에서 내 그림을 지켜보던 지혜가 이렇게 물었다.
“야, 너는 왜 이렇게 색을 잘 써?”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은 내가 색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색이 원래 잘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는가? 나는 지혜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다양한 색을 쓴다. 지혜가 본 그림도 색이 많이 들어간 그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림에 색을 칠할 때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이 색도 사용하고 저 색도 사용한다. 나는 모든 색을 좋아하기에 어떤 색을 쓸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정말 쓰지 않는 색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어떤 색을 쓰더라도 내 눈에는 다 이쁘고 조화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지혜가 다시 한 번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판단 없이 보면 돼.”
만일 ‘하늘색은 핑크색과 잘 어울리고, 노란색은 보라색보다 안 이쁘고, 보라색이랑 갈색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색을 쓸 때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학교에 오셨던 이현주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비교가 없으면 모든 것은 유일하고, 최고가 된다.”
나는 그 말씀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는 ㄴ이다] 천니은/ 책 중에서
#154호 (2023년 2월 1일)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