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육연재 (8회) 일상에 흩어진 주제와의 숨바꼭질
수정 : 2023-05-29 08:22:42
미술교육 연재 (8회)
일상에 흩어진 주제와의 숨바꼭질
[막대사탕의 모험] 종이위에 목탄, 파스텔, 수채화 물감. 2021년 김사랑(초3)
야외 스케치 중
야외 스케치들 속에서 이야기 찾기
이야기 만들기
그림으로 이야기 하기. 아코디언 그림책 형식으로 완성
“나의 이야기를 꺼내 보자”’ 말이 쉽죠, 막막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만의 예술적 색채, 내가 선택한 주제’ 이걸 어떻게 끌어낼까요? 많은 경험과 고민을 해본 어른도 쉽지 않은데, 경험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아이들에겐 더욱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주제와 이야기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한 장의 그림 안에 축약하여 담아내는 것은 예술표현의 경험과 고민의 축적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야외스케치를 할 때,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그리게 합니다. 그것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돌멩이건 동물의 똥이건 자동차건, 어떤 무엇이건. 그렇게 야외스케치를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오면 자신이 매력을 느낀 대상을 모아 커다란 종이에 다시 그려봅니다. 전지에 그리기도 하고, 롤 종이를 길게 펼쳐 그림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반드시 모든 것을 언어로 설명하고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은 이성과 감각 사이에 있는 직관의 영역에서 많은 것이 이뤄지는 만큼, 언어라는 이성의 영역으로 모든 것을 치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는 해보아야 해요. 우스꽝스러운 억지 이야기라 할지라도, 한곳에 모인 매력적 대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꾀어 봅니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창작해 봅니다. 그러한 경험은 주제와 이야기를 확장하여 작업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이성의 영역으로 치환한 직관적 작업에 대한 사유는 작품 제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야외스케치에서 선택한 대상을 한곳에 모아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멋진 이야기의 구성이 아니라 자신이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감성의 맥락입니다. 야외스케치에서는 보통 십수 개의 대상을 그립니다. 의미 없이 느낌으로 선택한 그 많은 대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꾀는 것은 문학적으로 엉성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그러한 시도가 소중한 것은,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찬찬히 훑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직관의 퇴적층에 한 층을 구성하고, 앞으로 이어질 예술 활동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게 됩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사건과 충돌하는 관계라는 삶의 지평선 위에 나의 이야기와 주제를 거침없이 토해낼 것입니다.
[애벌레의 하루] 종이, 연필, 파스텔. 2013년 임유빈(7세)
그림 그리는 것 보다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아이가 동물이나 엉뚱한 생명체나 가구 등을 만들면, 그들이 담겨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이죠. 박스 종이를 펼쳐 평면도와 같은 세상을 만들기도 하고, 상자나 물건을 이어 붙여 세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작업을 풀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최초에 만든 매력적 주인공입니다. 그 대상에 애정과 노력이 담기고 소중한 마음이 들었다면, 그를 기점으로 주변을 확장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들이 총동원될 것이고, 흥미로운 기억으로 저장된 사건과 지식이 펼쳐지곤 합니다. 결국 이 작업에서도 중요한 것은 작품을 얼마나 그럴싸하게 만들었는지,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정교하게 연출했는지, 얼마나 다양한 색을 아름답게 구성했는지 따위가 아닙니다. 동물일 수도 있고, 멸종된 생명체나 상상 속의 괴물일 수도, 캐릭터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자동차나 가구와 같은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매력을 느끼는 다양한 대상을, 단순한 대상의 종류를 넘어 선택한 대상의 특별한 느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에서부터 주제와 이야기를 어떻게 펼쳤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 스스로 주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스스로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 구성을 좀 더 긴밀하게 짤 수 있도록,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밤고지예술작업실 김영준 글
#154호 (2023년 2월 1일)
[매미의 하루] 종이, 연필, 파스텔. 2013년 송윤주(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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