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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는 아파트’의 이면…택배기사 · 경비원 ‘고통’

입력 : 2015-08-12 12:16:00
수정 : 0000-00-00 00:00:00

‘차 없는 아파트’의 이면…택배기사 · 경비원 ‘고통’



분양광고에 명시된 주민 권리배송은 택배기사 책무




“집 앞 까지 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은 고객의 책무”



 






 




얼마전 택배기사일을 처음 시작한 K모씨(39)는 출근 첫 날부터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배송을 하러간 운정 D아파트에서 단지 내 차량진입을 거부당한 것.



 



지하주차장으로만 통행이 가능하다는 경비원의 설명을 듣고 지하주차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탑차 보다 낮은 주차장 입구가 K씨의 발목을 잡았다. 다시 경비원을 찾아가 지상진입을 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해보지만 “동대표가 지시한 사항이라 우리도 어쩔 도리 없다. 직접 들고 가서 배달해주는 수 밖에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경비실에서 물품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니 고객이 부재중인 경우에만 맡아주는 것이 원칙이란다. 마침 고객들이 모두 집에 있는 상황, 일일이 전화를 걸어 상황설명을 하니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집까지 배달해 주는 것은 택배기사의 책무가 아니냐?”라는 것. 결국 K씨는 아파트 입구에서 부터 각 세대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도합 1km 내외의 거리를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출근 첫날의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피해를 입는 것은 택배기사 뿐 만이 아니다. 경비원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운정 D아파트에서 근무하는 L모씨는 “동대표회의 지침을 따르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택배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자체가 고충”이라며 “어떤 택배기사는 고객의 부재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경비실에 던져놓고 나중에 그 욕은 우리들이 먹는다”며 하소연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집단이기주의’와 ‘갑질구조’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차 없는 안전하고 쾌적한 아파트'를 표방하는 건설사의 분양광고에서 비롯한다. 주민 입장에서 보면 막상 입주해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커다란 덩치의 탑차가 단지를 누빈다. 애초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안전하고 쾌적한 아파트라는 광고를 믿고 들어온 주민들은 당연한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결국 동대표회에서는 단지 내 차량진입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관리소장에게, 관리소장은 경비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인 택배기사와 경비원의 몫이 된다.



 



건설사의 무책임함도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아파트 주민들의 대책 없는 이기심이다. 집까지 배송을 해야하는 택배기사들의 책무는 강조하면서 집 앞까지 오는 길을 열어줘야하는 자신들의 책무는 모른 척하는 이중잣대는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지불하는 택배비와 경비비가 그 책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글 사진 이지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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