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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청춘문예 최우수상 수상작] 옆집 사람들 – 이선재

입력 : 2018-02-28 16:56:00
수정 : 0000-00-00 00:00:00

[최우수상 수상작] 옆집 사람들 – 이선재



토요일 아침, 잠을 방해하는 요란한 기계 소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최종 관문을 눈앞에 남겨두고 전원이 나가 꺼져버린 게임처럼, 내가 꾸던 꿈은 사라져버렸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기억나는 건 그뿐이다. 밀려오는 분노에 내 꿈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서 하릴없이 자리를 내줘야했다. 꿈도 게임처럼 일정한 구간마다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 다시 시끄러운 크레인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조그맣게 “존X 시끄럽네”하고 중얼거린 후 방 밖으로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갔다.

“어쩐 일이냐, 일찍도 일어났네.”

흰색 면 티와 아주 짧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는 누나가 입속으로 밥을 한 숟갈 밀어 넣으며 날 보고는 말했다. 아침잠이 없는지 누나는 매일 아침밥을 챙겨먹는다. 나는 누나의 성실함에―어쩌면 그렇게 포장될 수 있는 그녀의 허기에―박수를 보낸다.

“시끄러워서 깼어. 도대체 뭐야 저거.” 물을 한 컵 따라 마시면서 툴툴댔다. “아침부터 진짜 부지런하다, 다들. 이사 오랴, 밥 먹으랴.”

누나가 나한테 가운데손가락을 들어 올려보였다. 그러고는 특유의 방긋 웃는 미소를 나에게 보냈다. 미안하지만, 근친상간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네, 이 인간아.

어떨 때 보면 누나는 나보다도 더 털털할 때가 있다. 듣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눈물도 없었고, 남자아이들과 굉장히 잘 어울리며 뛰어 놀았다더라. 내가 태어나 좀 자란 후에는 날 상대로 무예를 연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누나와 절대 싸우지 않는다. 한낱 고양이들도 기싸움만으로도 상대방과 자신의 전력을 비교하고 무모한 싸움을 않는데 이제껏 당해온 내가 누나에게 덤비는 것은 객기에 가깝다. 아니, 그 자체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우연히 한 것과는 달리, 나는 직접 몸으로 맞아가며 ‘그녀에게는 덤비면 안 된다’는 위대한 사실을 알아냈다.

“일찍 일어났네, 웬일로?” 엄마가 방 안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더니 놀라며 물었다.

“벌써 두 번째 듣는 말이야.”

“네가 얼마나 게을렀는지 반성하면 되겠네.”

“학교 안 늦고 꼬박꼬박 잘 나가는 게 얼마나…….”

병X, 하고 누나가 말꼬리를 잘랐다. “아무 생각 없이 책가방 들쳐 메고 왔다갔다 좀 하는 게 뭐 잘난 일이라고.”

“좋으시겠어, 잘나셔서. 그래서 재수하심?”

“미친 새끼가. 뒤지고 싶냐?” 누나가 한 대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 쯤 다시 크레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엄마를 향해 물었다.

“이사 오는 거야, 가는 거야?”

“이사 온대. 북한 사람이라던데.”

“엄마, 미안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는 이제 없어. 없어진 지가 언젠데.” 누나가 눈길도 주지 않고 쏘아붙였다.

“맞다. 실수.”

“여자애였으면 좋겠다.”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엄청 이쁜.”

누나가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가볍게 두 번 저었다. 자기도 잘생긴 남자가 오길 내심 바라고 있을 거면서. 어쩌다 우연히 만나 친해지고, 정이 들고, 결국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흔하디흔한 로맨스의 한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게 뻔하다. 그 이야기에 명대사가 빠지면 서운하지. 우리가 그때 함께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 말을 하는 남자는 잘생겨야 한다. 안 그러면 구토를 유발할 테니까. 어찌 되었든 정말 구식이다. 우연한 만남과 잘생긴 남자, 그리고 끔찍한 명대사까지. 이 완벽한 조합을 그녀는 꿈꾸고 있는 것이다. 헌데 어쩌면 나 또한 무의식 속에 그것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에도 우리가 울고 웃는 이유는 아마 이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 속 이야기나 영화의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주말 내내 달콤했던 토요일 아침잠을 깨운 이들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내가 그들 구성원 중 하나인 그녀를 보게 된 것은 월요일이나 되어서였다.


“전학생 온대.” 반 아이들이 시끄러워졌다. “여자라던데.”

아이들은 마치 흥분한 원숭이 떼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예쁘냐는 물음에는 반응이 다들 엇갈렸다. 귀엽게 생겼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고, 그게 뭐가 귀엽냐며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존X 별로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의견 차는 우리가 직접 그녀를 대면했을 때 더욱 심하게 갈렸다. 그녀는 개성이 뚜렷한 얼굴이었다. 내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실제로 꽤 귀여운 외모였다. 이름은 희원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희원의 생김새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녀의 출신 지역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갈 수 없었던 곳에서 희원은 왔다고 했다. 물론 이 모든 건 희원이 직접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 왔어?”

“사투리는 할 줄 알아?”

“거기도 여기랑 똑같아?”

아무리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접근할 수 없던 곳이었다고 한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여기랑 똑같냐니. 물음의 내용이 하찮기 그지없어 비웃는 나였다. 희원은 취조에 가까울 정도로 쏟아지는 물음에 불쾌한 것처럼 보였다. 입을 앙다문 채로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은 얻어갈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은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깐족거리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어이, 동무. 수령님 개X끼, 한번 해보라우.”

“아, 우리는 같은 동포. 반갑습네다.”

시답잖은 말들을 지껄이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난 것인지 낄낄거렸다. 언젠가 그 무리에 나도 끼어있었던 적이 있긴 했었다. 당시 희원이 느꼈을 감정 따위에는 안중도 없었다. 그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놀리는 것, 그 시기에는 당연히 있을 법한 일, 그 이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훗날 희원이 내게 그때의 심정을 알려줬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희원의 출신은 선택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짊어진 십자가이자 일종의 연좌제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내게 그렇게 전했었다.

희원이 그런 놀림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자 아이들은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 저 새끼 벙어리야, 하고 그들만의 합의를 내린 후 더 이상 희원에게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철저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평소와 다름없던 것 같은 학교 일과가 끝나고 내가 희원의 존재를 다시금 지각하게 된 건 하교할 때였다. 정확한 주소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내 토요일 잠을 깨웠던 무리의 일원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니까 이 말은 즉, 집이 같은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야.” 나는 멀찍이 걸어가는 희원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희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 개의치 않고 계속 걸어갔다.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로 일관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리쳤고 희원은 그제야 뒤로 돌아봤다. 그녀가 쏘았던 시선은 마치,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혹은, 너도 놀림거리가 필요한 거야, 하고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날카로운 눈길에 괜한 치기가 생겼던 나는 생각지도 않은 말을 내뱉었다.

“빨갱이 새끼.”

희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주먹을 휘두른들 맞을 거리에 서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괜히 옹골지게 힘주고 있는 손을 보자 나는 잠시 주춤했다. 날 죽일 듯 노려보는 희원의 입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혹은 작게 낸 탓에 내가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나를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희원은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분명 걸어가는 데에 막힘은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겨워 보이는 데가 있었다.

“아……씨X. 이게 아닌데.”

나는 중얼거리면서 희원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를 잡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빠른 걸음으로.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던 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마주칠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후부터였다. 다행히 현관에 도착해서 마주한 것은 희원의 얼굴이 아닌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 속 나의 얼굴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꿨다. 나와 희원이 어딘지 모를 공터 벤치에 앉아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낮과 밤이 한 하늘에 함께 있다. 해도 떠있고, 반대편에는 달과 별도 있다. 희원은 달과 별을 보더니 미소 짓는다. 진실로 순수한 미소였다. 그런 희원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안간 희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태양빛이 강해지고 파란 하늘이 밤의 어둠을 덮친다. 달도 별도 번져가는 강한 햇빛에 사그라지고 만다. 우리의 모습이 강한 햇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고 모두들 지나가며 우리를 손가락질한다.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온다. 희원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곧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한동안 무엇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고, 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생각과 행동은 별개의 것이었다. 그런 거라고, 그저 그런 것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는 사이 희원은 어느 정도 울음이 멎는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댄다. 그 빈정거림에 분명 나도 포함되어 있다. 희원이 못 버티겠다는 듯 일어서려 한다.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미안해, 하고 나는 말한다. 희원은 주저앉으며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잖아. 저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 울지 마. 언젠가 희원에게 건넸어야 했던 말로 그녀를 위로한다. 나의 말에 결국 희원은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우리는 서로의 품에 안긴다. 그때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는데, 그것을 긍정인지 부정인지 굳이 규정해야 한다면 긍정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위가 조용해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없어진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렇게 서로 가만히 부둥켜안는다.

나는 잠에서 깼다.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그런 꿈이 있다. 꾸고 있을 때는 분명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깨어나 돌이켜보면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꿈. 마치 헤어진―그것도 심지어 무척 안 좋게 끝난―여자 친구와 꿈에서 다시 마주하는 그런 기분. 내가 꾸었던 꿈은 그런 유의 꿈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도착했을 때 희원은 보이지 않았다. 등교시간을 5분도 채 남기지 않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그녀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희원의 행동을 토대로, 북에서 온 사람들은 다 저러나보다, 하는 선입견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던 듯하다. 희원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희원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밤 동안 꾸었던 꿈이 마음에 걸렸는지 나는 자꾸만 희원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희원은 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고개를 들어 칠판을 보지도 않았고 집중해서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지도 않았다. 우리와 분리된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곳에는 아마 자신을 괴롭히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겠지. 한참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쟤 좋아하지?”

“뭐?” 갑작스런 질문에 옆을 돌아봤다. 단지 다소 뜬금없는 물음에 놀란 것뿐이었다. “뭔 개소리야.”

“맞네. 아까부터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고. 아니라면서 귀는 왜 존X 빨개지냐.”

“지X 좀 하지 마.”

목소리가 조금 컸던 것 같다. 앞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던 선생님이 우리 쪽을 한번 흘겼다.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고 옆자리의 친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치렀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시선이 우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 새끼 팔뚝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방금까지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하더니 이번에는 비명을 참느라 고생이었다. 그렇게 응징하고 나자 통쾌했다가도 한편으로는 그의 질문이 무겁게 마음을 눌렀다. 정말 그런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로써 대신했던 답변에 대한 확신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쩌면 내가 희원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희원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하지만 진실은 (사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으니까.

결국 내 옆자리 친구는 수업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반 아이들에게 내가 희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교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은 소리치며 환호했고,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우리의 이름을 한목소리로 연호했다.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둘이 같이 걸어가는 걸 봤다, 손도 잡고 있었더라, 하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이 새어나왔다. 우리는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희원만이 이런 격동의 분위기 속에서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태연했다.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는 미지의 섬처럼,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설령 파도가 자신을 적시고 바람이 자신을 깎아낼지라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처하지 못했다. 차가운 물이 몸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바람이 나를 깎으려들면 무언가를 방패 삼아라도 바람을 막으려했다.

“씨X. 저딴 년 줘도 안 가져.” 놀리느라 신이 난 남자아이들을 향해 내가 소리쳤다. “지X 좀 하지 마.”

아이들은 드디어 원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듯이 더욱 격렬해졌다. 기폭제를 내 손으로 터뜨린 셈이었다. 아마 희원처럼 무덤덤하게 넘겨버렸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에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원이 일어섰다. 무언가 반응을 보이는 희원의 모습에 아이들은 다소 놀란 듯 잠시 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말씨 하나 행동 하나를 놓칠세라 모두 그녀에게 집중했다. 희원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책가방 속에 자신의 책과 물품들을 욱여넣었다. 조용한 교실 속에 책가방 지퍼를 닫는 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희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교실 밖으로 나가서 학교가 끝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희원이 나가자 아이들은, 니가 그딴 말 하니까 상처 받아서 도망간 거 아냐, 하며 다시 나를 놀렸다. 희원이 자리를 피한 탓에 나는 혼자서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희원에게 미안한 감정보다 분한 마음이 더 앞섰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피시방에 들렀다 귀가하자 엄마와 누나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하는 소리를 들은 엄마가 빨리 와보라며 나를 재촉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게임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혹시 그 내용을 들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다가간 식탁에는 팥 시루떡이 한 접시 놓여있었다.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거 먹어 봐. 진짜 맛있다.” 엄마가 떡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따뜻할 때 먹어.”

“갑자기 뭔 떡이야?”

“요번에 이사 왔다는 그 사람들 있잖아. 북에서 왔다는. (엄마는 이 말을 할 때 괜히 누나 눈치를 봤다) 요즘엔 이런 거 잘 안 하는데 챙기셨더라고. 경황이 없어서 이제 드리는 거라 미안하다면서.”

“그래? 난 안 먹을래.”

“맛있는데……. 싫음 관둬라.”

떡은 굉장히 맛있어보였지만 왠지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마음속에 희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희원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린 모습도.

“맞다. 그 아저씨가 너 찾더라.” 누나가 오물거리며 말했다. “딸이 너랑 동갑이라며.”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날 찾았다고? 어째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희원이 집에 가서 일러바친 것일까. 만일 그런 것이었다면 엄마나 누나에게 이야기를 전했어도 될 일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나보다. 애써 천연덕스럽게 누나에게 물었다.

“나? 왜?”

“딸이 타지 생활이라 힘들 거라고. 너보고 잘 좀 부탁한대. 학교도 같은 학교더만.”

“아……. 난 또.” 누나는 우리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듯 했다.

“넌 또 뭐?”

“아냐. 난 방에 들어갈래.” 나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엄마와 누나는 이상한 눈초리로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뒀다. 방에 들어와 침대 위에 털썩 엎어졌다. 밖에서는 대화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어정쩡하게 따라하는 평안도 사투리부터 앞으로 나라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 토론까지. 별 얘기를 다 나누고 있었다. 정작 내가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희원은 그날 이후로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잠깐 관심을 보이다가―물론 그마저도 내가 엮여있었던 탓이었다―원래 없었던 사람인 양 신경 쓰지 않았다. 있으나 없으나 그들에게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놀잇감 하나가 줄었다, 단지 그 정도였다. 나도 이따금 빈자리를 힐끔힐끔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놀림으로부터 벗어난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닷새 쯤 지나서 희원이 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정기점검 중이었다. 아침에 얼핏 엄마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지만 학교에 있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렸다. 심지어 마지막 교시가 체육시간이었던 탓에 뛰어 다니느라 그런 걸 기억할 여력이 더욱 없었다. 옷은 땀에 젖어 있고, 엘리베이터는 멈춰 있고, 우리 집은 14층이다. 만일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운동장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고 산뜻한 몸으로 피시방에라도 들렀다왔을 텐데, 나는 이미 축구를 해버렸다. 심지어 그것도 체육 시간 내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희원과 나는 일 층 현관에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느라 멀뚱히 1분가량을 서있었다.

먼저 계단을 타기 시작한 것은 희원이었다. 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자 괜한 오기가 치솟았다. 나도 뒤를 따르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희원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느리지만 꾸준히 발을 딛고 있었다.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제논의 아킬레스처럼 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계단을 올랐다. 9층 쯤 올랐을까. 꾸준히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가 멎었다. 대신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서 상황을 지켜볼지 아니면 그냥 무심히 올라갈지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의도치 않게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게 됐고, 그러는 동안에도 희원의 발걸음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나를 이끈 것이 걱정인지 호기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선 올라가보았다. 희원은 계단에 주저앉아 있었고 호흡은 꽤 거칠었다.

“야. 괜찮아?”

희원은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걱정스러워 건넨 물음조차도 무시하자 밀려오는 무안함에 괜히 화가 났다. 그러기를 잠시, 걸음은 느려졌고 곧 멈춰 섰다.

“미안.” 들렸을지도 의문일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건네는 말이라기보다도 혼잣말에 가까웠다.

“본심은 아니었어, 전부. 그냥…….”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희원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희원이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조용히 울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희원의 울음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왜 우냐…….” 계단을 내려가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희원은 고개를 자신의 팔에 파묻고 있었다. 그녀 옆에 나도 같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울음은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것 같았는데, 그게 누구와 어디서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손을 뻗어 희원의 어깨 쪽으로 가져가다 멈칫했다. 내게 과연 그녀를 위로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 위로의 뜻이 제대로 전달될까 싶었다. 한동안 허공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머물러있던 손은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희원이 어느 정도 진정돼보였다. 저기, 하고 조심스레 희원의 팔꿈치 쪽을 톡톡 쳤는데 그녀는 화가 단단히 난 사람처럼 내 손길을 뿌리쳤다. 그래도 자리를 피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나는 희원에게 다시 한 번 사과를 건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정확하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내 진심이 느껴졌는지 희원은 한참 지나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사과를 받아들일게,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시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시간이 꽤 지났지만 단 한 번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었던 까닭이었다.

“저기, 혹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말, 할 수 있어?”

희원은 내가 묻자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찾았다. 가방 속에서 나온 손에 들려있었던 것은 볼펜 한 자루와 A5 크기의 옥스퍼드 메모지였다. 꽤 많은 양이 이미 뜯겨나가고 없었다. 딸깍 소리를 내며 볼펜을 누르고 노란 용지 위로 거침없이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삼십 초쯤 지난 후 내게 그 종이를 내밀었다.

―아니, 못 해. 브로카 실어증이라는 병이래. 듣고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없어.

나는,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놀림에도 그녀가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것은 참고 견딜 줄 알아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였던 것이었다. 희원은 다시 메모지 위에 무언가를 덧붙여 적었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을지는 불편한 티 하나 없이 능숙히 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남쪽 동네로 내려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야. 6년 전쯤에 잠깐 왔었는데, 그때도 지금이랑 마찬가지였어.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 호기심을 빙자한 놀림과 핍박. 이후로 난 점점 말을 아꼈고, 그래서 이렇게 됐어. 너무 아끼다보면 쓸 수 없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말도 그런가 봐. 그땐 하기 싫어서 안 했지만 이젠 하고 싶어도 못 해. 다시 돌아가자고 할 거야. 아빠는 언제까지 피해 다니기만 할 거냐고 화를 내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때로는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였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육 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난 꽤나 선봉에 있었던 듯싶다. 그것이 진심이었느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희원은 용지를 뜯었다. 찢어낸 용지는 꾸겨 주머니에 넣고 새 용지 위에 다시 무언가 적었다.

―사람들은 민족의 염원을 이뤘다고 좋아들 하지. 하지만 철책선이 무너져 왕래가 일고, 총구가 더 이상 서로를 향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 해결된 건 아냐. 나 같은 사람이 없어지고 너 같은 사람이 없어질 때, 그때 비로소 완수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마지막 마침표를 찍자 희원은 마찬가지로 이 용지도 뜯어냈다. 이번 종이는 지난번처럼 꾸겨버리지 않고 내게 건네줬다. 나는 찬찬히 그녀가 남겨놓은 필적을 쫓아 글을 읽어 내려갔다. 희원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그러는 사이 희원은 엉덩이 부근을 손으로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뚜벅뚜벅 자신의 층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자리에 앉아 희원이 건넨 종이를 남겨진 숙제처럼 보고 또 봤다.


대략 열흘 정도 지나서 희원은 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그 사이에도 몇 번 학교를 나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학교를 나온 날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지냈다.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우리는 서로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릴 거리가 하나 줄어듦에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들의 세계에는 놀릴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엄마는,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참 아쉽다, 하면서 사람들이 참 못됐다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모습이라며 (통일 전의) 북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누나는, 이미 하나가 된 마당에 남북을 나누는 게 무슨 아이러니Irony며, 그렇게 은연중에 깔려있는 이분법적 사고가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엄마를 쏘아붙였다. 가끔 이런 속 깊은 생각도 하는 것을 보면 누나가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똑똑한데 왜 대학을 못 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따금씩, 그날의 이상한 꿈을 꿀 때가 있다. 큰 틀에는 변함이 없다. 언제 어디서 잠을 자든 꿈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와 희원이 어딘지 모를 공터 벤치에 앉아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수군댄다. 희원이 울음을 터뜨리는데도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댄다.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미안해, 하고 나는 말한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울지 마. 언젠가 희원에게 건넸어야 했던 말로 그녀를 위로한다. 우리는 서로의 품에 안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긍정의 감정이 내면에 자리한다. 꿈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가끔 입을 맞출 때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는 깨어나도 찜찜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언젠가 나는 다시 희원을 만나러 가고 싶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시대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찾아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어디에 있든 갈 수 있다. 꿈속에서 더 이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하거나 비웃지 않을 때,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서 더 이상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을 때, 나는 그때 희원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물론 그때가 언제쯤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좋든 싫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니까.


(게시물 게재 과정에서 일부 욕설이 필터링된 부분에 대해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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