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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현 박사의 통일 문화 산책 ⑫ 통일의 키는 국력약세의 국민들이 갖고 있다

입력 : 2015-06-10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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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키는 국력약세의 국민들이 갖고 있다



 





 




사실상 통일을 결정한 건 동독 국민, 남예멘 국민



독일 통일은 누가 했을까? 국력이 강했던 서독 국민이 주도했는가,아니면 국력이 약했던 동독 국민이 했는가? 이번 칼럼은 지난 번에 이어 분단국들의 통일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점 중 두 번째 법칙을 다룬다. 다름 아닌 통일이 되느냐 마느냐의 결정적 키는 국력이 약한 쪽의 국민들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90년 3월 실시된 동독의 자유총선거에서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즉각 통일이 사실상 결정되었다. 동독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에서 동독 국민들은 단계적 통일 대신 즉각 통일을 주창했던 드메지에르의 독일연합에 압승을 안겨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 뒤는 일사천리로 7월 화폐 및 경제통합에 이어 10월 동독이 서독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통일은 완료되었다.



 



예멘의 경우에도 국력이 약했던 남예멘의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89년 11월 말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방문했을 때, 아덴 시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환영 열기는 당시 통일에 부정적이었던 남예멘 상층 엘리트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격변의 와중에 국민 다수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자살행위라는 점을 인식시켰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지부진했던 통일협상은 마무리되고, 애초 일정보다 6개월이나 앞당겨 90년 4월 통일예멘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통일은 완료되었다.



 



남북한 통일의 키도 북한 동포들이 쥐고 있다



남북한 통일도 북한 동포들한테 결정권이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통일할 생각이 있다면 대북정책 결정 시 북한 동포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해야 한다. 북한 동포들을 자극하고 분개시키는 발언은 자제돼야 하며, 5.24 조치는 애초 등장해서는 안되는 정책이었다. 그야말로 하지하책(下之下策)으로서 통일의 키를 쥐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민심을 싸늘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북한 정권의 도발에 대응한다고 교류·협력을 중단시키고 봉쇄와 경제제재를 하는 것은 북한의 취약계층에 큰 타격을 줌으로써 북한 동포들의 남한에 대한 민심을 악화시키게 된다. 체제 생존을 위해 주기적으로 도발을 자행하는 북한 정권을 상대로는 그에 걸맞는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면 된다. 도발 대신 협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로버트액설로드(Robert Axelrod)는 다음과 같은‘응보전략’이 최선이라고 한다. 첫째, 상대가 협력하는 한 거기에 맞춰 협력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말 것. 둘째, 상대의 예상치 않은 배반에 응징할 수 있을 것. 셋째, 상대의 도발을 응징한 후에는 용서할 것. 넷째, 상대가 나의 행동 패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행동을 명확하게 할 것 등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현실 여건상 남한 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다. 국력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운용 측면에서도 남한이 더 낫기 때문이다. 평화적 통일은 남한 중심의 통일을 북한 주민 다수가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통일할 생각이 있다면 남한은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 남북 간 교류 ·협력 시 엄격한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아니다.



 



 





백장현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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