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서 <9> 참회와 속죄의 성당 -분단과 갈등을 평화와 통일로 이루어내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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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서 <9>
분단과 갈등을 평화와 통일로 이루어내는 공간
- 천주교 의정부교구 참회와 속죄의 성당, 민족화해센터
▲ 참회와 속죄의 성당(왼쪽)과 민족화해센터(오른쪽).
사진 위 임진강 너머로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에 있는 북한 마을이 보인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남과 북이 함께 만든 성당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남과 북의 정치적 지형과 함께 주변 강대국의 개입과 이해관계 등을 많이 언급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요인 이외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화해와 통일을 이루어 나가고자 하는 움직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움직임 한 가운데 천주교 의정부교구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성당 이름이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라니 조금 낯설기도 하다. 파주 지역 다른 성당만 하더라도 금촌성당, 운정성당, 문산성당, 교하성당 등 행정구역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보편적인데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라니... 이에 대해 참회와 속죄의 성당 권찬길(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께서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 이유는 저희 본당이 준본당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법에 따르면 준본당은 ‘특별한 사정 때문에 본당 사목구로 설립되지는 아니하였으나, 고유한 목자로서의 사제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 내의 일정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설립되었다는 것이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붉은색 벽돌과 전통 기와를 머리에 얹고 웅장하게 자리 잡은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08년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만해도 성당인지 사찰인지 구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2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 세워진 진사동 성당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지은 참회와 속죄의 성당.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통일을 염원하는 신자들의 기도와 참여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 김수환 추기경께서 통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성당의 설립을 제안하신 후, 이에 화답하듯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과 신자들이 힘을 모아 1996년 5월 통일동산 종교 부지 2297평을 매입하면서 통일을 기원하는 성당의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건물 외형은 물론 내부의 구조와 작품들도 남북의 교류과 화해의 의미를 곳곳에 담고 있다. 성당의 외형은 192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 세워진 진사동 성당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지었으며,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대성당 모습을 재현했다.
특히 성당 제대 위의 모자이크는 북한 최고의 기량을 갖춘 평양 만수대 창작사의 벽화창작단 공훈 작가 7명이 중국 단둥에서 40일간 밤잠을 설치며 제작한 것이다. 모자이크 밑그림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에서 러시아의 성당 모자이크를 참조해 그려 보냈으며, 인터넷으로 매일 작업 상황을 확인하며 수정, 보완하며 작업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 옆에는 ‘민족화해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웅장한 이 건물은 평양 외곽 서포에 있던 메리놀 외방선교회 본부 건물을 본떠 설계됐다.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소실되었던 신의주 진사동 성당과 메리놀 외방선교회 건물에 대한 기초 자료는 다행히도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 본부 지하 고문서고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들과 수기, 편지들 속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서울시립대 건축과 대학원생들과 건물 도면 작업을 한 후 설계도를 복원하여 건축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북한지역 교회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까지도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통해 남과 북이 함께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 평양 만수대 창작사의 공훈 작가 7명이 중국 단둥에서 40일간 밤잠을 설치며 제작한 성화 모자이크. 모자이크 재료는 원산 유리공장에서 만들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토요기도회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13년 3월 2일 제1차 기도회부터 2020년 2월 15일 제 353차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토요기도회를 진행했다.
토요기도회는 1982년 옛 동독의 성 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월요기도회를 본보기로 삼아 시작된 기도회이다.
1165년에 설립된 성 니콜라이 교회는 동서독이 분단되었던 시절 평화 기도회와 집회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동독 지역(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는 군비확장 반대, 환경문제와 빈부격차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매주 월요일 기도회와 집회를 이어나갔다. 1980년대 명동성당이 그러했듯이 경찰의 주요 사찰지역이기도 했던 성 니콜라이 교회는 월요기도회를 중심으로 동독의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되었으며, 1989년 10월 9일 당시 동독 정권의 탄압이 절정을 이루던 상황 속에서 기도회를 개최하여 동서독 통일의 기폭제가 되기도 하였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토요기도회를 처음 시작했던 2013년 3월은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는 다시금 긴장상태로 접어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며, 2015년에는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처럼 한반도의 긴장이 해소될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던 시기였기에 일각에서는 통일 기원 기도회를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찾아온 200여 명의 신자들에 의해 토요기도회는 중단 없이 묵묵히 계속 진행되었다.
토요기도회를 시작할 때마다 신자들은 통일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하늘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하자며 다짐하곤 했었는데, 이러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과 북의 얼음장 같았던 관계는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과, 9월 20일 평양 공동선언까지 남과 북은 뜨거운 동포애와 민족적 동질성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토요기도회는 2020년 2월 22일부터 중단되었으며 남북관계도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13년 토요기도회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며 코로나와 남북관계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원하며 준비하고 있다.
▲ 2015년 1월 31일 100차 토요기도회. 코로나 여파로 토요기도회는 353차에 멈추어 있다.
민족화해센터와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
한반도는 전 세계인들에게 분단과 갈등의 상징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임진강과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는 이곳 파주지역은 더욱 그러하다. 민족화해센터는 분단과 갈등을 화해와 평화로 변화시키며 통일을 이루어내는 공간이다.
분단과 분열을 극복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한반도, 그리고 이곳 파주가 평화의 발신지 역할을 통해 통일의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화해센터는 이를 위해 남북한 이질감을 해소하고 화합할 수 있는 교육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2013년부터 시작한 'DMZ 평화의 길‘ 도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청년, 중장년, 북한이탈주민 등이 함께 민통선 접경지역을 걷고 느끼며 나눔과 체험, 토론 등이 어우러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참가자들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에 대한 당위성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봄과 가을에 3박 4일, 혹은 4박 5일 일정으로 파주에서 연천, 철원, 양구 등 접경지역을 걷고 이동하며 해마다 수백여 명이 체험하는 이 프로그램은 2020년에는 코로나로 중단되었으나 다시금 재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민족화해센터 안에는 그림이나 사진 등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가 있다. 이 갤러리에서는 그동안 ‘북에서 온 두 소녀의 그림이야기’,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 세움 전시회’, ‘여성 평화걷기 사진전’,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추모 서예전’ 등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하여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관람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활동은 교육과 프로그램, 행사 이외에도 학술적, 이론적 토대를 위한 연구와 토론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 9월에 설립된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는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화해를 촉진할 수 있는 평화신학과 영성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한 연구소이다. 설립 이후 10여 차례의 세미나와 4차에 걸친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분단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북한문제, 동북아 및 한반도의 평화 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토론을 전개해 왔다.
▲‘2018 DMZ 평화의 길’ 참가자들이 임진각 철책선 길을 지나고 있다.
함께 기도하고 나누며 체험하고 실천하자!
통일은 정치나 무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화해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나 순진한 발상일까?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는 지난 2013년부터 기도와 나눔, 그리고 체험과 실천을 통해 신앙 안에서 이념적 대립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준비해 왔다. 휴전선의 철조망이 걷히고 남과 북의 주민이 함께 끌어안을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걷는 통일을 향한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철민(편집위원)
#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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