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에세이 -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수정 : 2021-05-21 13:05:20
조합원 에세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정형은 (원불교 여의도교당,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규 군인들이었다. 교도소에서 끌고 나온 연쇄살인범도 아니고, 정신병원에서 몰고 나온 정신병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나도 갔다 온 군대, 내가 갈 수도 있었을 부대의 군인이었다. 그 말은 그들이 나와 비슷한 흔하고 평범한 남자들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그들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나는 정말 알고 싶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평범한 그들이 그렇게 변한 것이라면 그것은 내 모습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때 나는 기훈이의 죽음을 목격하던 때만큼이나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그들이 왜 그랬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소나기가 내린다는 그날 새벽부터 파주 평화마을짓자에서는 농사일에 회원들의 손길이 바빴다. 상생을 위해 어울리는 식물끼리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고 두둑을 높여 토종씨앗을 심었다. 밭에서 캔 풀들로 풀요리를 해서 나물과 국을 뚝딱 만들고,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어느새 후두둑 빗방울이 비닐 천장을 때리고 청소년문화연대킥킥이 연출한 ‘문학콘서트 성큼성큼’은 시작되었다. 이경혜 작가의 작품 ‘그들이 떨어뜨린 것’ 중 단편 ‘명령’을 주제로 한 문학콘서트에 회원들이 직접 출연하여 초등학생 지후와 서현이를 비롯해 여럿이 목소리출연을 하고, 작가와 이야기 손님으로 생각을 나누는가하면 영화로 만들 캐스팅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극을 하는 박은주 회원의 사회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낭독공연과 기타연주까지 곁들인 문학콘서트는 41년 전 오월의 광주로 우리를 순식간에 데려갔다.
책방에서 참고서를 사고 나온 중학 3학년 친구 기훈이를 계엄군이 진압봉으로 때려죽인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은 한동안 방황 끝에 수학교사가 되었지만, 어느 날 친구의 유해를 이장하다가 머리뼈가 바스러져 흔적 없이 몸만 남은 유골을 보고 괴로워하면서 교직을 떠난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날 그랬을까. 아무리 명령이 있었다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했을까.
똑같은 상황에서 1980년 당시 안병하 전남 도경국장은 시민에게 총기를 사용하여 시위를 진압하라는 군부의 지시를 거부하여 쫓겨나고 고문을 당했고, 이준규 목포서장은 무기를 근처 섬으로 옮겨 충돌을 막았다. 군부의 학살이 넉 달째 진행 중인 미얀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웃으며 어린아이와 여성을 때리고 총을 겨누는 군인들 저편에 명령에 따르지 않고 시민군에 합세한 경찰과 공무원 그리고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미스 미얀마와 미얀마 대사가 전혀 다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6백만 유대인과 5십만 집시를 학살한 2차세계대전 나찌 전범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은 성실하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고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옹호했다. 재판을 지켜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면 더는 도덕적 판단이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례없는 악행을 저지를 여지가 생긴다고 하였다. 여전히 책임자의 반성과 사과가 없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명령’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구조적 악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과 고요한 대화를 하며 일상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5.18 민주항쟁의 중심인물이었던 고 박관현 열사의 어머니가 영광 불갑교당 교도였고, 둘도 없는 친구인 한상석 전남대학원자율화추진위원장이 서광주교당 교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주 금남로 도청 가까이 있던 광주교당은 날마다 타종을 하여 시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천도재를 지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그 시대를 살아낸 원불교 가족들의 정당한 일에 대한 사무여한의 정신을 생각하며 저 깊이 가슴 뜨거워지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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