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삶을 디자인하는 학교, PaTI
수정 : 2020-11-25 01:13:41
작지만,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삶을 디자인하는 학교, PaTI
PaTI 이상집. 세종시 총괄건축가로 활동했던 김인철 건축가가 파티 배우미들과 함께 5회의 워크숍을 거쳐 설계한 건물로, 2015년 겨울 완공. 현재 파티 한배곳 교육 공간. 학무행정실, 실습실, 갤러리, 영상연구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파주에 당돌한 학교가 있다. 건물 외관부터 심상치 않다. 바로 ‘파티(PaTI)’다. 파티는 학위가 없는 대학과 대학원 과정의 독특한 비인가 독립 배곳(학교)이다. 파티는 디자이너들이 뜻을 모아 만든 교육 협동조합으로 2013년 파주출판도시에 터를 잡았다. 이제 8년차. 졸업생들이 하나 둘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파주출판도시 설립자이자 파티 2기 엔담(이사장) 이기웅 님은 “파티는 한마디로 파주출판도시의 꿈이자, 파주의 자랑”이라고 단언한다. 아울러 “파티로 말미암아 출판도시는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다”고도 했다.
파티는 ‘멋짓 배곳’(디자인 학교)이며,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역량을 키우는 배곳’이다. 커리큘럼은 디자인 역량을 기르는 실기 수업을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인문 수업을 바탕에 둔다. 교양인문 수업의 첫 과목은 젊은 한의사들이 강의하는 우리 몸철학 ‘동의학’에서 시작된다. 국내 내로라하는 시인들과 문학평론가, 미학자들이 파티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생각하는 손, 몸으로부터’라는 횃말(슬로건)에 따라 ‘몸짓’, ‘디자인과 연극’ 워크숍은 파티의 중요한 과목 중 하나다. 몸에서 얻은 경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교육 과정이다.
디자인평론가 최범은 “동물원에 비유하자면 파티는 동물원 밖 동물을 기르는 곳이다. 바로 야생동물을 길러내는 배곳”이라 말한 바 있다.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멋지어가는 배곳’
배우미들은 학교 운영과 커리큘럼에 참여한다
무엇보다 파티는 배우미(학생) 중심의 학교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른바 ‘주체적 자기 주도 학습’이 강조된다. 파티 파마당(학생회) 회장 이가람은 “배우미가 수동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파티의 장점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다”고 했다. 배우미들이 학교 커리큘럼이나 운영에 참여한다. 파티의 주요 목표가 ‘함께 멋짓는 배곳’이다. 자꾸 튀어나오는 우리말이 생소하지만 파티는 우리말을 살려쓰거나 새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디자인’을 ‘멋지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함께 멋짓는 배곳’이란 ‘배우미와 스승들이 함께 디자인해나가는 학교’라는 뜻이다. 우리말을 소중히 다루고 쓴다는 것은 한국적 정체성을 뚜렷이 밝히고자 하는데 바탕한다.
파티는 파주 지역사회와 함께 커나가고자 한다. 출판도시 안에 놀이터를 만들고, 벽화를 그려냈다. 본지 ‘파주에서’의 한 면에 파티 배우미들이 글, 그림 연재를 하거나 인턴을 한 적도 있고, 파주를 기반으로 여러 행사를 해오고 있다. 2013년부터 매해 여름 파주출판도시에서 벌이는 ‘파주자유음악잔치’와 ‘시와 타이포그라피 잔치’가 대표적이다.
파티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유난히 해외에서 관심이 크다. 지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바우하우스 전시회가 열렸을 때, 독일인 전시기획자는 그 전시 일부로 파티의 참여를 요청했다. 독일 데싸우 바우하우스 학예연구원 토어스텐 블루메(Torsten Blume)는 “파티는 타이포그라피의 바우하우스”라고 말한 바 있다. 큐레이터는 당시 파티 교실을 전시하고자 하여, 전시 기간 석달 동안 미술관으로 파티 교실을 옮겨 파티 수업 활동과 교실 가구 풍경을 전시했다. 그리고 파티 배우미들은 직접 여러 차례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2019년 한배곳 5기 학기말 발표 모습.
행사 기획부터 공간 디자인, 설치, 진행까지 배우미들이 주도적으로 해낸다.
파티 빛깔 워크숍.
배우미 스스로 채집한 여러 채소, 과일, 식물 등에서 빛깔을 추출,
자신만의 컬러 팔레트를 만들어 작업에 이용한다.
활판공방 타이포그라피 워크숍.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국내 유일의 납활자 공방에서 손으로 경험하는 활자 조판을 실습한다.
AGI 해외 디자이너 워크숍 ‘빛깔과 사물 그리고 몸’.
사비나 & 레나토(스위스, Sabina & Renato) 지도.
2019년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활자춤(Typo Dance)’ 워크숍.
토어스텐 블루메(바우하우스 수석 연구원) 초청 지도
일과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
파티는 학부 과정인 한배곳, 대학원 과정에 준하는 더배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4년제 한배곳은 실기 워크숍과 강의, 프로젝트를 뼈대로 ‘바탕 - 전공입문 - 전공심화 - 실습 및 졸업전시’ 과정을 통해 디자인 전문가로서 소양과 실력을 쌓아나간다.
2년제 더배곳은 타이포그라피를 바탕 삼는 디자인 전문 심화 과정으로 기둥(주임) 스승인 박찬신은 “더배곳 배우미는 글꼴 관련 디자인과 리서치 스튜디오 수업을 통해 전문성을 기르고, 실기 워크숍, 전공이론, 코칭을 통해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맥락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고 말한다. 2년간 수학하는 본과정과, 개인 배움을 스스로 설계해 더배곳과 한배곳 수업을 임의로 교차 수강하는 1년 진수과정이 있다.
특히 파티의 ‘코칭 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모든 배우미마다 지도스승이 배정된다. 배우미 개인의 작업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학습과정에서 이뤄야 것을 스승과 함께 점검한다. 파티 코칭 제도는 창의적 디자이너로 성장해나가는데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길 위의 멋짓’이라는 여행 수업도 있다. ‘예술가가 되려면 만 리를 여행하고, 만 권의 책을 읽으라’는 옛말대로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여행지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 여행길이 또다른 교실이 되며 배우미들은 길 위에서 만나는 스승, 사람, 자연, 역사와 현장을 몸으로 익힌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과도 함께 한다.
파티는 중국에서 유럽까지 이름난 해외 디자인학교와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다. 그동안 네빌 브로디, 헬무트 슈미트, 뤼징런, 핀 니고어, 마르쿠스 바이스벡 등 세계적인 디자인 대가들의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었다. 특히 스위스 바젤디자인학교와 영국 UCA 예술대학교 등과도 학위 과정 편입 협약을 맺어 파티 배우미가 해당학교에 지원해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이밖에도 국제 네트워크를 더욱 넓혀가며 배우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데 필요한 자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파티 배움의 마지막은 ‘책’으로 종합된다. 그것은 배우미가 직접 쓴 에세이나 콘텐츠로 책과 웹사이트, 앱을 만들어 졸업 전시로 마무리된다. 파티가 강조하는 것은 ‘제다움에 근거한 자립’이다. 무엇보다 졸업 후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일과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파티 스승은 배우미 길동무로 배우미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 된다. 배우미들이 일 현장 이해와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이끌고 있다.
파티 3무 무경쟁 · 무소유 · 무권위
파티에서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배우미는 스승들을 거리낌없이 대한다. ‘파티 3무’인 ‘무경쟁, 무소유, 무권위’ 때문일까? “파티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은, 동기생들이 ‘동기’라기 보다는 ‘팀’으로 느껴질 때이다. 파티는 암묵적 경쟁을 해야 하는 여느 대학 시스템을 넘어, 개인 의지로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키고, 다른 배우미들과 작업을 공유하며 서로 보고 배우는 것이 일상” 이라는 한배곳 1학년 이지호의 말이 귀에 꽂혔다.
8살 파티가 그간 해온 일들 또한 놀랍다. 파티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국내 여러 기업들의 산학프로젝트부터 현대미술분야까지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 - 인간, 공간, 기계’(2014), 서울시립미술관 ‘날개.파티’(2017) 등에 초대되어 참여하였고, 2016년 국제그래픽연맹(AGI) 서울대회를 주도적으로 꾸리며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주목받은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왔다. 더불어 서울시민을 위한 디자인교육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올해는 코로나를 주제로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을 열어 전세계 창작자들이 참여했다.
‘미래미디어 -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워크숍.
트와인(Twine) 툴을 사용하여 게임과 웹을 만든다.
국내외 현장 전문가들의 초청 강의나 워크숍이 잦다.
이를 통해 배움의 폭을 넓히며 경험을 쌓아간다.
파티에서 한글서예 워크숍은 필수.
이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과 뼈대를 직접 쓰며 체득한다.
파티에는 교환 배우미 활동이 활발하다.
사진은 2017년 가을운동회에 참여한 노르웨이 배우미들.
12월 13일 온라인 입학설명회
12월 15일 -18일 파티 방문주간
‘삶을 디자인하는 학교’ 파티는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배곳을 멋지어가는 ‘학교 디자인 프로젝트’다. 작고 간단한 규칙부터 배움에 대한 크고 깊은 생각까지 아우르며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우멋배(우리가 멋짓는 배곳)’라고 하는 정규 모임에서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만나 파티 운영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반영한다.
파티 버금(부교장) 이재옥은 “파티는 내년부터 영상, 일러스트레이션 등 특성화 과정을 시작하며, 적극적으로 IT 기술 융합을 도입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입생 선발 기준에 대한 기자 질문에 “주체적인 힘, 협업 능력, 이타적인 생각, 전공에 대한 열정을 본다. 무엇보다 파티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원자를 찾는다”고 했다. 파티는 입시도 특별하다. 1박 2일 합숙으로 진행하며 재학 배우미가 함께 한다. 아울러 “12월 13일 온라인 입학설명회가 있고, 12월 15일부터 18일까지 파티 방문 주간을 가져 배우미들의 기말 발표 전시와 입학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한국 대학들은 규모를 늘려야 교육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성에 젖어있다. 파티는 배우미 90명, 상근자 17명의 꼬마 학교다. 비인가라서 정부지원도 없다. 모든 것은 자급자족한다. 스승들은 일하며 가르친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방한하면 ‘말로만 듣던 PaTI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디자인계에서는 파티가 잘 알려져있다. 파티 첫 졸업생 조신철은 현재 파티에서 학무 기둥으로 4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파티는 배우미와 스승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과 삶이 같이하는 배곳”이라며 파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파티의 최고참 스승이자 파티 최고 운영위원회 의장 박하얀의 말에서 파티 스승들의 혼신적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파티는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8년동안 살아남는데 모든 스승들이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파티 2.0으로 변신 중이고, 아직 파티는 전투 중입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대학도 바뀔 것이다. 2018년 애플이 뽑은 사람의 절반은 학위가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파티는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파티는 미래학교를 지금 현재 실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파티 날개(교장) 안상수의 말이다.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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