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 시대전환 당원 김영운 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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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전환 당원 김영운 님]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처음 원고 요청을 받고 가장 먼저 다시 찾아본 영상입니다. 제가 감히 그분의 워딩을 인용한다는 것조차 송구스럽지만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2006년 말 MB가 당선되고 이듬해 초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인수위가 꾸려졌습니다. 저는 아침 브리핑 촬영을 위해 매일 그곳으로 출근을 했었는데 자리 선점 때문에 현장에는 새벽 6시쯤 도착해야 했고 의정부에 사는 저는 새벽 5시에 1호선 첫차를 타야 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 25세. 나름 역사의 현장으로 향한다는 생각과 누구보다 이른 시간 일터를 향해가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우쭐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출근길 텅 비어있는 지하철을 상상하며 혼자만의 고독도 즐기겠노라는 마음도 있었지요. 그러나. 제목으로도 예상할 수 있듯 첫차 안은 출발지에서 두 정거장을 못 가 자리도 꽉 차고 서서 가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 ‘나만 열심히 사는 게 아니구나’,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여러 세상이 있구나’ 등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밍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며 2년 반을 보냈고 사이사이에 배달, PC방 아르바이트 그리고 붕어빵도 팔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우연히 언론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운이 좋게도 아르바이트 1년 반, 비정규직 2년을 거쳐 조연출과 PD 생활을 하며 11년 반을 보내고 퇴사를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경험들이 그때그때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했던 선택들이었지만 딱히 연결고리가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우연히 운이 좋아서 나쁘지 않게 살아왔을 뿐이죠.
10대 때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고 각종 스펙을 준비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괜찮은 미래가 이어지는 삶. 그런 일반적인 과정이 아닌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일까요? 제가 좋은 직장에 있음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이 제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그저 운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을 저만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보아온 신발을 만들기 위해 미싱을 돌리던 아주머니들, 사출기 앞에서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일하던 형들, 날카로운 칼날 아래 가죽과 스펀지 등 다양한 것들을 프레스기로 잘라내던 재단 아저씨, 붕어빵 밑 재료 준비부터 어묵 국물을 내기 위해 아침부터 준비해서 밤늦게까지 밖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던 자영업자 등등 제가 보아온 모두가 노력의 종류만 다를 뿐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었거든요.
미래가치, 시너지, 파급력, 영향력, 성장 엔진 등등 다양한 표현으로 보이지도 않는 가치를 인정받으며 국가와 기업을 등에 업고 고임금을 받는 수많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것, 남들과 다른 시간에 일해야만 하는 것 등에 대한 가치는 어떻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어떤 회사에 근무하는지, 어떤 자본가를 만나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 미싱을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미싱을 잘 다루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영어 공부를 해서 대기업 모직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는 사회.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대안이 기본소득이었습니다. 모두에게 나름대로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이라는 전제하에 나의 수명 1시간을 희생한 최소한의 가치가 최저임금이고 개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필요 등에 의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현재의 임금 구조라면 위에 열거한 사회적으로는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들에 대한 보상이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원재 님을 따라 시대전환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쓰다 보니 시대전환과 함께하게 된 이유보다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가 되어버렸는데요. 창준위 단계부터 지난 총선까지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지만 시대전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전문가집단이라고 모였지만 정치 초년생들이었고 이전부터 알던 분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때문에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준비과정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해오던 가치를 잘 지켜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기도 했고 정훈 님께서 대리운전을 직접 하시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삶을 이해해보려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자칫 보여주기식 결론이 나면 어떠나 걱정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정훈 님의 첫 번째 정론관 기자회견과 1호 법안을 발표하셨을 때 깨끗이 날아갔습니다. 우리가 지키려 했던 것들을 작은 데서부터 지키려는 모습, 그리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 한 달간 대리운전 현장에서 파악하고 발표한 내용이 플랫폼 노동자 뿐만 아니라 제가 보아왔던 영상 제작 현장에서의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어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원재 님이 시대전환과 함께하자고 말씀하셨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다시 한번 시대전환을 지지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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