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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신발 깔창’

입력 : 2020-08-25 02:05:14
수정 : 0000-00-00 00:00:00

신발 깔창

 

 

 

      박노해

 

 

      신발 끈을 묶고 정원 일을 나서는데

      어라, 새로 산 신발 깔창이 반항한다

      깔창을 꺼내 보니 날 빤히 바라보며

      밟히기 싫다구, 나 밟히기 싫다구요

 

      그래, 안다

      나도 평생을 짓밟히며 살아왔다

      그래도 난 매일 널 꺼내서

      씻어주고 말려주며 감사하지 않니 

 

      누군들 밟히고 또 밟히고

      소리 없이 헌신하는 걸 좋아하겠냐만

      그게 우리 길인 걸 난들 어쩌겠니

 

      만일 내가 누군가를 짓밟고 오르고

      힘없이 우는 이들을 지나쳐 버리고

      세상을 망치는 자들을 피해 간다면

      그래라, 내 발을 짓물리고 부러뜨려라 

 

      시무룩하던 신발 깔창이

      내 발을 감싸주며 순명한다

      그래 웃자, 우리 웃어버리자

      진정한 사랑은 발바닥 사랑이니 

 

      자, 우리 나무를 심으러 가자

      오늘의 귀인을 만나러 가자

      이 좋은 아침 길을 함께 걸어가자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신발 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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