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자의 이미저모 <2> 네 살 아이와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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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자의 이미저모 <2>
네 살 아이와 참외
신록의 계절, 5월 가정의 달 첫 주말에 교사직무 교육이 있어 외출 중이었다. 카톡으로 남편이 사진을 보내왔다. 참외와 손글씨 편지였다.
“안녕하세요. 704호입니다. 저희 아이가 너무 활발해서 층간소음이 심할 것 같아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몇 번 내려가 인사드리려고 했으나 늘 계시지 않아 문 앞에 두고 갑니다. 맛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네 살이라 주의를 줘도 잘 듣지 않네요. 노력할게요.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아이 엄마는 두 차례 편지를 썼다. 처음 써두었다가 한 번 더 덧붙여 쓴 흔적이 있다.
나는 위층에서 가끔 늦은 시간 물건을 옮기는 소리가 신경 쓰인 적은 있었다. 단 한 번도 아이 발소리가 신경에 거슬린 적은 없었다. 종종 ‘쫑쫑쫑쫑’ 아이가 걷는 발소리가 나기는 했다. 그 소리는 오히려 기쁘고 사랑스럽게 생각했다.
남편은 조금 신경 쓰는 듯했다. 그러면서 “아이 부모가 전혀 모르는 것보다는 그래도 뭔가 느끼고 인사를 하니 다행이다.”라고 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아이 엄마와 아이가 왔었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배꼽 인사를 하게 하더란다. 요즘 보기 드문 젊은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답례를 생각했다. 내 책을 주자고 했더니 남편도 흔쾌히 좋은 생각이라고 한다. 바로 적절한 시간을 잡지 못했다. 참외를 받은 지 약 1주일 후, 외출 전에 오전 10시 반 경에 찾아갔다. 어떤 엄마일까 생각하며 벨을 눌렀다. 두 번 벨을 누르자 안에서 “누구세요?”라는 젊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아래층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아파트 현관문이 열린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나는 ‘새로 이사 왔나 보다’라고 순간 생각했다. 같은 라인 분 중 몇 분은 종종 인사를 나누는데 이 엄마는 초면이다. 놀랐던 것은 이사 온 지 7년째라고 했다. 우리는 13년째이다. 그러니 7년은 바로 위아래에서 살았다. 어떻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마주쳤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수는 있다.
아이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내가 쓴 ‘아이가 보내는 신호들’ 책을 건넸다. 엄마는 “어머, 책을 쓰는 분이시군요.”라고 한다. “네,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책 앞쪽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간단히 썼어요.”라고 했다. 책에 쓴 메모이다.
“604호입니다.
전혀 생각지 않은 참외 잘 먹고 있습니다.
늦은 시간의 움직임 외에,
아이 발소리는 오히려 사랑스럽습니다.
편하게 다니게 하세요.
그럴 때입니다.
제가 쓴 책입니다.
양육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0. 5. 15.
저자 崔 順 子”
(제자들에게 주로 저자 사인 한 것이 습관이 되어 ‘드림’을 빠트려 죄송한 마음)
아이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서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에 가고 없다고 한다. 아이 엄마에게 ‘안정 애착’, 아이가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왔다.
나는 위층의 소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아서 소리를 잘 듣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건넨 글 중 ‘늦은 시간의 움직임’을 적었던 것은, 아주 종종 늦은 시간 소리가 나기도 했고 남편은 소리에 조금 신경 쓰고 있는 듯해서 배려를 당부하는 마음이었다.
종종 이웃 간 소음으로 인한 사건 사고 뉴스로 보도된다. 최근에는 서울의 모 아파트에서 이중 주차된 차를 민 경비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입주민이 있었다. 경비원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홀로 키운 미혼의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서로 사정을 알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생활 공동체를 생각해 본다. 남편에게 답례했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이던데 잘했네.”라고 한다. 앞으로는 남편도 이층 소리에 덜 민감할 듯하다. 네 살배기 아이는 배려할 줄 아는 엄마에게 잘 자랄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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