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의 [내운명을 바꾼 한글자] (13) ' 제주 남조로와 남영호조난자위령탑을 가다'
수정 : 2020-04-27 08:21:22
이강석의 [내운명을 바꾼 한글자] (13)
' 제주 남조로와 남영호조난자위령탑을 가다'
코로나 19가 완전히 물러나기를 기원하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주에 갔습니다.
제주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남조로 40여km를 걸으며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고, 다음날 아침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남영호조난자위령탑 앞에서 남영호와 유사한 사고로 숨진 세월호 희생자들과 코로나 19로 사망한 분들을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었습니다.
제주에는 중산간도로, 비자림로, 5.16도로 등 동서와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 북에서 남으로 거의 직선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도로가 바로 남조로입니다. 남조로는 남원읍과 조천읍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한 도로 이름입니다.
남원에서 조천으로 걷지 않고 조천에서 남원으로 걸은 이유는 도로표지판의 잔여거리 표시 때문이었습니다.
조천에서 남원 방향으로 28km, 23km, 20km, 12km, 8km 등 5개의 잔여거리 표지판이 있습니다. 남원항에 도착하면 표지판은 없지만 0km인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줄어 줄어 0명이 되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절절한 심정으로 빌며 걸었습니다.
조천에서 남원으로 걸은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장의 아버지는 함경도 무산 출신이고 어머니는 서귀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 선배이기도 한 그녀가 부모님이 태어난 곳인 서귀포와 무산을 잇는 'Peace 올레'를 만들어 걷고 싶다는 소망을 그녀의 책 ‘서귀포를 아시나요’에서 읽고 남조로가 그 축소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염병이 없는 ‘평화로운 일상회귀’라는 희망이 남조로를 걷는 이유이니 조천-남원길 역시 작은 ‘피스 올레길’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닐 듯 싶습니다.
조천이 일제에 저항하는 3.1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이루어졌던 곳이어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또 하나의 외적을 물리치는 바램을 담은 첫걸음을 떼는 데 조천이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조천을 시작점으로 잡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천항을 출발하여 대흘리, 제주돌문화공원 입구, 교래리, 사려니숲길 입구, 수망리, 의귀리를 지나 남원항에 도착할 때까지 걷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걷는 내내 강풍에 시달려 지금도 귀에서 윙윙소리가 나는 듯 합니다. 동해안 770km를 걸었다는 자신감으로 남조로를 걸었으나 체력은 예전같지 않아 발바닥과 무릎 그리고 허리에서 오는 통증으로 걷는 내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조로를 걷는 하루 동안 세 끼를 먹지 않고 아낀 얼마 안되는 돈을 코로나 방역에 애쓰는 기관에 기부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허기진 몸을 달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고개를 올라설 때마다 보이는 바다가 도란도란 위로의 말을 건네고, 길가에서 잠시 쉴 때마다 출현하는 한라산이 토닥토닥 격려의 말을 속삭여주어 그렇게 얻은 힘으로 목적지까지 걸어갈수 있었습니다.
연북정에서 시린 눈으로 바라본 햇빛 천지 조천 앞바다와는 달리 남원 앞바다는 칠흑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은은한 달빛만을 바다에 드리울 뿐이었습니다.
햇빛 아래 활발함이 달빛 아래 고요함으로 수렴되는 것을 보고 전염병도 그렇게 곧 사라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걸은 보람도 그때 덩달아 생겼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남영호조난자위령탑을 찾았습니다. 무리한 과적, 국가의 무책임한 대응 등 '안산의 세월호'와 '서귀포의 남영호'는 그렇게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남영호 사고로 323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지난 4월 16일이 세월호 사고 6주기라면 올해 12월 15일은 남영호 사고 50주기입니다. 남영호 희생자분들, 세월호 희생자분들, 코로나 19 사망자분을 위해 명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다시는 이와같은 인재(人災)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제 간절한 바램에 화답이라도 하듯 위령탑 앞 이왈종 미술관의 설치미술품 제목이 'Dreams come true.'였습니다.
이 땅에서 전염병이 물러가고 인재가 사라지기를 다시 한 번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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