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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 의미를 찾아 떠난 세계의 지붕, 신들의 고향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입력 : 2020-01-17 10:13:10
수정 : 2020-03-11 02:50:19

내 존재 의미를 찾아 떠난 세계의 지붕, 신들의 고향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대자연을 바라보며 너그러울 관()을 새기고,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며 순수와 이상을 품고,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설산 같은 사람을 꿈꿔본다

 

▲ 3210미터 푼힐 전망대에서 8천미터가 넘는 다울라기 설산을 배경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처음 오른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산에 왜 가느냐?"는 물음에 "거기 산이 있으니 간다."고 했다. 나는 세계의 지붕, 신들의 고향 히말라야에서 설산을 바라보며 걸으면서, 내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난해 1224일부터 경자년 새해 11일까지 네팔을 다녀왔다. 9일 여행 일정 중 절반은 8천 미터가 넘는 고봉 열 네 개, 불교와 힌두교 발상지인 히말라야 산속을 걸었다많이 걸은 날은 10시간 정도를 걷기도 했다.

 

▲ 3210미터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으로 오랫동안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하얀 만년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가슴 설렘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10여 년 전 안나푸르나를 다녀 온 지인이 "이 세상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안나푸르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알고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그곳에 잠들고 싶다."라고 했다. 나는 그 때부터 '곡식을 풍성하게 수확하게 하는 여신' 안나푸르나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은 준비하고 떠난다는 안나푸르나. 50대 후반인 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안나푸르나를 더 나이 들기 전, 내 가장 젊은 날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한겨레테마 여행 일정이 나오자마자 신청했다. 여행안내 문구 중 '트레킹'이라는 문구에 안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자주 하지 않지만, 평소에 걷기는 조금씩 했기에 고도라도 등정이 아니라면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산증이나 일행에게 누가 될지도 모를 천천히 걷는 내 스타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설산을 바라보고 싶은 간절함이 다른 요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여행은 비일상적인 일상이어야 한다."고 했던 것과 같은 의미의 떠남이었다.

 

 3210미터 푼힐 전망대에서 여행참가자 일행

 

이번 여행 대장은 탐험가로 세계 최초 사하라사막 도보횡단, 대한민국 최초로 북극점을 도달한 탐험첼린지학교 최종열 대표였다. 일행은 멀리 광주, 제천 외에 대전, 안산, 동두천, 의정부, 파주, 서울에서 열 네 명이 참가했다. 직업은 사업가, 교수, 간호사, 공무원 등 다양했다. 이 외 여행사 직원과 현지 안내인, 히말라야 산속에서 짐을 옮겨준 버리야들(현지 안내인이 '포터'는 영국식 하인 개념이므로 '버리야'로 불러달라고 함),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들 총 35여 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열네 명의 여행자 한 명에 한두 명의 도운이가 함께 한 셈이다.

 

▲ 카트만두 공항 환영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 '히마'와 거처 '알라야가 합쳐진 말로 '만년설의 집'의 뜻이라고 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라운드 코스, 로얄 트레킹 코스, 무스탕 코스 등이 있다. 이번 한겨레테마 여행 코스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비행기로 이동, 포카(페와 호수)서 좀솜까지 이동 후 좀솜, 칼로파니, 가사, 따또빠니, 고라파니, 푼힐, 랄리그라스 숲길 등을 걸은 후, 중간에 지프로 포카라에 도착, 비행기로 카트만두로 이동하여 구왕궁 하누만도카, 더르바르스퀘어와 살아있는 여신 5세 꾸마리, 쉬바신의 사원 파슈파티나트와 화장터 견학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짐을 나르는 버리야들

 

▲ 설산과 안개

여행 일정 중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음을 두 번 경험했다. 한 번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경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네 시간이나 대기하다 날 수 있었을 때이다. 최 대장은 공항에서 대기 중에 일행들에게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무슨 일이 발생하면 뼈도 추스르지 못할 높은 산 위를 날고 있는 경비행기 제일 앞자리에 앉은 나는 속으로 '누군가에게 유언이라도 남기고 왔어야 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포카라에서 좀솜까지 가는 비행기가 안개 때문 결국 뜨지 못했을 때이다.행기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지프에 나눠 타고 낭떠러지와 황량한 자갈길(중국이 자본을 대서 인도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함), 때로는 설산을 마주하며 돌고 돌아 10시간 정도 걸려 밤늦게 히말라야 약 2700여 미터 산속 놋지 숙소에 도착했다.

 

 

▲ 푼힐 전망대에서 바로본 안나푸르나 고봉 설산들
 

 멀리 만년설이 보이는 페와 호수

여행 중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포카라 페와 호수에서 바라본 인간이 오를 수 없는 미개봉 중 하나인  마차프치리(6,997m), 안나푸르나 3(7,575m) 등 남쪽 안나푸르나 고봉의 설상을 조망할 때, 페와 호수에 위치해 보안상 안전해서 외국 정상들이 묵는다는 놋지형 피스탈호텔에서 묵었을 때여행 3일 째 좀솜에서 묵고 첫 트레킹을 나서던 날, 길을 걷다가 설산의 고봉을 만났을 때, 삼면이 설산에 둘러싸인 채 히말라야 바람소리가 밤새 울어대던 칼로파니, 노상온천 따또빠니, 계단식 밭이 넓게 펼쳐진 치트레, 새벽에 헤드랜턴을 켜고 올라간 3210미터의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과 다울라기리(8,167m)던 동경에서 국제무역을 공부하고 있다던 네팔인 부제루 안즈 씨와의 대화 등 여행 내내 설렘의 연속이었다.

 ▲ 녹지형 숙소 피스탈호텔

▲ 네팔식 백반

 

함께 한 이들의 배려, 온천에서 개운하게 씻은 뒤 저녁식사로 닭백숙을 먹으며 현지 안내인 고파르가 흥에 겨운 듯 분위기에 취한 듯 부르던 구슬픈 곡조의 네팔 민요 등도 여행의 기쁨을 배가시켜줬다. 여행의 중 먼지 자욱했던 자갈길씻기 불편했던 놋지형 숙소, 트레킹 마지막 날 찾아온 감기 기운, 귀국 전 탑승 수속 후 김밥을 함께 먹는다는 공지를 듣지 못해 탑승구로 가게 되어 생긴 일 등은 흐릿하게 지워져 간다.

 

▲ 여행 중 만나 블랙야크들

 

▲ 여행 참가자들과 도운이들

 

 

여행 중 숙소와 트레킹 코스 고도는 2천에서 3천 미터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이번 트레킹 중  밟은 가장 높은 고도는 여행 7일째 고대하고 고대했던 안나푸르나 만년설 고봉(7~8m 전후)들을 조망할 수 있는 푼힐 전망대로 3210미터였다. 걱정했던 고산증과 추위는 생각보다 덜 했다. 고산증 예방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과 아침 트레킹 출발 전에 준비한 약을 미리 챙겨먹은 덕분인지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 온 후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며칠 갔다. 뼛속까지 스며든다는 히말라야 산 속 추위도 여행사에서 준비한 침낭과 미리 준비한 핫팩, 온수팩내복, 방한 모자·양말·신발 덕분인지 걱정했던 것보다 덜 했다.

 

▲ 여행객에게 귤을 꺼내주던 할머니 
 

그 동안 늙기 전에 힘든 곳을 다니자는 생각으로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등을 다녀왔다. 그 때마다 느낀 점인데 '어디나 그곳 나름의 방식대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같은 소감이었다. 해발 2천에서 3천미터 사이의 높이에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과나무, 귤나무, 상추를 심고 소, 돼지, 닭 등을 키우며 돌과 나무 등으로 만든 집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도 꿈을 꾸는 미래 세대인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고여행객이 건네주는 사탕을 받으며 고맙다고 눈인사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살며시 귤을 꺼내 건네주는 우리네 할머니도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로가는 경비행기

 

떠났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경비행기 좌석이 히말라야 산맥과 털로 만든 것들을 구할 수 있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네팔의 산과 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멀리 인간이 오르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고봉의 설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설산 앞 쪽 2~3천 미터의 산 중턱과 정상에는 끝없는 길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비행기가 카트만두 도심 가까이 오자 상공에는 검뿌연 먼지가 자욱하다. 그 아래 헤아릴 수 없는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 칼로파니에서 만난 히말라야 산속 아이들

 

▲ 넓게 펼쳐진 계단식 밭

 

 

▲ 멀리 설산이 보이고 그 앞에 사람들이 사는 2천에서 3천 미터의 산, 제일 앞쪽에 상공의 검뿌연 먼지와 건물의 카트만두

 나는 상공에서 30여 분 동안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이 세상을  셋으로 나눈다면, 인간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설산인 신의 영역과 2천 내지 3천 미터 산속에서 불편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가장 자연에 가깝게 살아가는 순수, 이상의 영역과 검뿌연 먼지 아래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있더라도 인간으로 가장 자연 본래의 모습 가깝게 살아가는 순수, 이상의 영역을 꿈꾸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 국가적, 인류적으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 안나푸르나 설산을 대학모임 단톡방에 보냈더니, 개인 사업을 하는 회원이 자신은 창고에서 재고조사 한다면서 "히말라야는 체력, 시간, 돈 삼박자가 맞아야 간다는데, 버킷리스트 하나 지웠겠네요?"라고 했다. 나 자신은 이 삼박자가 넉넉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 체력은 의지와 집념이, 시간은 내 마음이 가는 간절함이, 돈은 가치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른다고 본다인생과 같은 여행은 떠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네팔인은 부처의 고향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므로 천천히 갑니다."라고 한 현지 안내인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천천히 가면서 검뿌연 먼지 가득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순수와 이상을 품고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인 설산 같은 사람을 꿈꿔본다. 내 마음이 가는 곳에 간절함을 품는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 될 것이다.

 

: 최순자 박사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장·동국대학교 대학원 유아교육전공 외래교수)

 

사진 제공:

한겨레테마여행 안나푸르나(2019.12.24~2020.1.1) 최순자 외 참가자(남금자, 신광섭, 이계순, 이민석, 이정선, 이향숙, 임영순, 장권익, 정영희, 정찬용, 조재(용샘), 만철, 최종열, 최희용, 황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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