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39> 대보름 날 추억
수정 : 2019-04-12 20:56:06
둥근달이 떠올랐다. 달은 다른 날 보다 훨씬 더 컸다. 정월 대보름 달이다. 계수나무도 보이고 옥토끼도 보였다. 아침에 먹은 오곡밥은 이미 소화가 다 되었다. 집집 마다 찰밥을 하고 나물을 하느라고 하루종일 연기가 피어 올랐다. 남자들은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들러 지신을 밟으며 풍년과 무병장수를 빌었다. 갠지갠지 징징 징징징!
풍물이 끝나면 동네 앞산인 철동산에 나뭇단을 쌓았다. 대보름 달이 떠 오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소원지를 달고 불을 지르며 소원을 빌었다. 망오리야! 망오리야! 이 산 저 산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불기둥이 솟았다. 고함 소리도 멀리 퍼졌다. 좀도둑도 이날 보따리를 두둑하게 챙겼다. 도둑이 일부러 불을 낸뒤 돈 되는것을 훔쳐 간다고 했다.
둔터댁은 며칠 전 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과부가 된지 삼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여러 남자들이 치근 대기는 했어도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이랑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며 수절을 해왔다. 남편을 동네 취로 사업에서 맥없이 보내고 근근히 풀칠을 하며 살았다. 남편이 머리는 나빠도 정은 많았는데 남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왔다. 코흘리개 애들이 줄줄이 다섯이나 있었다.
창바우 양반이 작년에 부인을 잃고 홀애비로 살고 있는데 연배도 비슷하고 사람도 법없이도 살 사람 이어서 마음에만 두고 있었는디 대보름날 들판 가운데 볏가리 쌓아논 곳으로 손을 잡아 끌었다. 못이기는척 버티면서 끌려갔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과부나 홀아비의 외도를 마을에서 암묵적으로 허용한 날이었다. 아니면 여러 사람이 얽히고 멍석말이가 벌어지고 제초제가 많이 팔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억울한 사연을 남기고 저수지 뚝방에 고무신만 덜렁 남을 수도 있다. 둔터댁과 창바우 양반은 그후로 서울로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품앗이방을 달구었다. 빨래터에서 신세 한탄을 하며 빨래 방망이를 두들겨 대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러다가 농사철이 되면 정신없이 일을 하며 세월은 엿과 같이 엿장수 맘대로 아무렇게나 흘러갔다. 아이들은 불깡통에 왕겨를 넣고 돌리다가 하늘 높이 던졌다. 밤하늘의 불꽃놀이가 장관이었다. 부엉이가 춥다고 아까부터 울어댔다. 부우우우엉!
도시농부 신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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