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불씨 남긴 화상경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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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불씨 남긴 화상경마장
일개 공기업의 사업적 판단에 맡겨버린 지역공동체의 운명
▲탄현 통일동산에 게시된 화상경마장 반대 현수막.
뜨거웠던 2016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궜던 파주 통일동산 장외마권발매소(이하 화상경마장) 유치 논란이 한국마사회의 부적격 결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의 운명이 달린 중대 사안이 일개 공기업에 불과한 한국마사회의 사업적 판단에 맡겨졌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에 적잖은 충격과 숙제를 남겼다.
한국마사회가 2일 화상경마장 유치를 신청한 4군데 지역을 대상으로 내부평가를 실시한 결과 경기 파주시, 강원 정선군, 충남 홍성군에 대해서는 부적격 결정을 김포시에 대해서는 유보결정을 내렸다.
파주의 경우, 인근 고양시 일산에 화상경마장이 영업 중에 있어 상권이 중첩된다는 점과 신세계사이먼아울렛으로 인한 주말교통정체, 대중교통 편의성 부족 등이 부적격 사유로 꼽혔으며, 특히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지난 7월 22일 통일동산 내 성동리 711에 2018년 8월까지 가칭 '파주 스테이'(PAJU STAY) 관광호텔을 건립하고 부대시설로 화상경마장을 운영하겠다는 P업체의 사업계획을 파주시가 주민동의를 조건으로 승인하면서 촉발된 논란을 마사회가 잠재운 모양이 되었다.
사행산업 유치논란, 재점화되나?
그러나 이번 부적격 결정은 어디까지나 마사회의 사업적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요건만 충족된다면 화상경마장을 비롯한 사행성산업이 파주에 유치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그동안 파주시는 화상경마장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중립적 인허가권자라기 보다 직접적 이해당사자 같은 태도를 보여왔다.
일례로 파주시의 일부 공무원들은 화상경마장 유치를 반대하는 측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백만원 회원제’와 ‘외국인 전용’이라는 근거가 불명확한 주장을 퍼트림으로써 지역여론을 호도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사회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P업체가 새로운 계획으로 관광호텔을 재차 추진할 것을 공언하고, 파주시 역시 ‘검토 후 승인여부 결정’이라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재추진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울산광역시의 경우에도 지난 2003년부터 무려 13년 동안이나 화상경마장 설치논란이 꾸준히 반복되고 있으며, 작년에 무산되었던 ‘KTX역세권 화상경마장’을 올해에도 재추진하고 있어 세간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승인 전단계, 주민의견수렴은?
이에 파주의 22개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화상경마장 설치를 반대하는 파주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도 7일 금촌 ‘샬롬의 집’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화상경마장을 비롯한 사행성산업의 파주 유치를 저지하는 시민행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31일 시민 621명의 연서명으로 파주시에 청구한 시정토론회의 개최를 재차 촉구하기로 결정하고 파주시장의 부당 행정행위와 문화교육국장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는 한편, 사행산업 유치를 시민이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안을 만들어 시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시민대책위 박병수 사무국장은 “만약 마사회가 파주를 적격지역으로 결정했다면 추후에 진행되는 주민의견수렴 절차는 요식행위에 그쳤을 것”이라며 “지자체가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전 단계에서 폭넓은 의견 수렴과 주민의 의사결정권이 보장되는 조례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대책위가 7일 회의에 앞서 용산 대책위 이원영 위원장에게 타지역 사례를 들었다.
다수당의 표결거부, 사실상 찬성
그러나 파주시의회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시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새누리당이 교묘한 태도로써 화상경마장 유치를 사실상 찬성하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야당 측이 발의한 ‘화상경마장 설치반대 파주시의회 결의문’ 상정을 거부하고 다른 안건들만 의장직권으로 상정하자 이에 반발한 야당의원들이 상임위 의사일정을 3일간 거부하면서 임시회가 파행을 빚기도 했다.
본회의 표결로도 의사관철이 보장되는 다수당 의원들이 의사일정 파행까지 감수하며 안건상정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시민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화상경마장이 지역사회를 파괴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면서 책임지기는 싫어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논의구조 공식화, 조례제정 앞당겨
이렇게 사행산업 유치와 관련된 조례제정 문제는 10월 임시회로 넘겨졌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비공개 토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의를 되도록 비공식적으로 끌고 가다가 슬그머니 종결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럴수록 시민사회는 조례상에 명시된 시정토론회나 의견조사청구 같은 시민의 권리를 적극 활용하여 논의구조를 공식화할 필요성이 있다. 공식이냐 비공식이냐에 따라 시의회에 주는 압박감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시민대책위는 시민 621명의 연서명으로 파주시에 시정토론회를 청구한 바 있다. 파주시가 마사회의 부적격 결정을 원인소멸로 해석하여 기각할 가능성이 높지만, 관련 조례제정 문제는 원인소멸로 볼 수 없는 문제이므로 끝까지 관철시켜야 할 과제이다.
화상경마장 유치에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는 파주지역 국회의원들 주최로 공식적인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방법도 있다. 사행산업 규제와 관련된 상위법률 개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주민과의 소통 숙제로 남아
파주의 시민사회가 불과 일주일 사이에 1천명이 넘는 반대서명을 확보하는 등 신속한 반대여론 조성으로 마사회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파주시민대책위와 탄현면 주민들 사이의 소통에는 다소 아쉬운 지점이 있었다. 대책위의 확고한 반대 입장이 찬성과 반대로 엇갈린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반대 입장의 주민들 사이에서도 ‘파주시민대책위’를 정치적 의도로써 개입한 외부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했던 점은 아무리 찬성 측의 농간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앞으로의 여론전 승리를 위해서라도 신중히 성찰해야할 부분이다.
위기의식이 단합과 동력으로
이번 화상경마장 유치 논란은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우리 손으로 뽑은 시장과 시의원들도 거대자본으로 부터 지역사회를 지켜주는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탄현면 주민들이 빠르게 갈등을 수습하고 지역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주민들 스스로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위기의식이 주민의 단합과 동력을 만들어낸 것으로 풀이되는 까닭이다.
이렇게 화상경마장 유치 논란은 지역사회에 수 많은 과제를 남겼다. 어떠한 형태로든 사행산업 유치가 다시 추진될 개연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정말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글 이지호 편집위원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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