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책 되새기기> 엄마의 말뚝,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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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책 되새기기>
엄마의 말뚝, 박완서, 세계사
엄마 된 여성은 크게 두 번의 전환기를 겪는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며 한 번, 아이를 세상으로 보내며 또 한 번. 엄마가 되면서 맞은 치열했던 첫 번째 전환기를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나는 엄마 됨을 내려놓아야 하는 두 번째 전환기를 맞았다. 딸이 집을 떠나 기숙학교에 진학한 것이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은 작가가 쓴 작가의 엄마 이야기이자, 3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내용을 담은 단편이면서, 3편이 이어져 엄마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3편 연작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은 단연 1편이다. <엄마의 말뚝 1>은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엄마가 어린 ‘나’와 오빠를 데리고 고향인 개성 박적골 대가족의 품을 떠나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전근대적인 미신과 풍습을 지키느라 시어른들은 의사가 아니라 무당을 불렀고 그리하여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못 한 채로 남편을 잃은 후, 엄마는 자식들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기생 옷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며 서울에서 세 가족의 삶을 이어간다. 엄마의 ‘말뚝’은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괴불마당집이라 부르는 서울에서의 첫 집이자, 아들은 물론이고 딸이 신식교육을 받아 신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염원이다. 여기서 ‘신여성’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야 하며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나를 향한 나의 엄마의 바람과 내 딸을 향한 나의 바람과도 같아서 놀라웠다.
<엄마의 말뚝>을 읽고 나서, 박완서의 여성주의 소설 <서 있는 여자>, <살아있는 날의 시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를 연이어 읽었다. 소설 속 선배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엄마’를 졸업한 후의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리라고 다짐한다.
김정은 <엄마의 글쓰기> 저자
#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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