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7) 행동주의 심리학의 빛과 그늘
수정 : 2020-09-14 07:36:09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7)
행동주의 심리학의 빛과 그늘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티칭머신을 고안한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
티칭머신(teaching machine)으로 완벽한 교육의 혁신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학습에 관한 연구에서 발전된 기법을 교육에 적용하면 효율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프로그램 학습을 통해서 학습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이용하고 즉시 강화를 통해서 학습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 완전학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 학습은 1. 교과의 필수사항을 분석하여 교과를 기본단어, 사실, 개념, 법칙, 원리 등으로 유목화할 수 있다. 2. 학생이 자신의 학습 속도에 맞추어 학습을 진행할 수 있는 개별화 학습(individualized instruction)이 가능하다. 3. 벌, 조롱, 비난 등 혐오적 통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교실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 4. 교사들을 잡무로부터 해방시켜 준다고 믿었다.
행동주의 심리학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 행동주의 심리학이 있다. 행동주의는 인간의 행동을 자극과 반응이라는 모델로 단순화시키고, 환경(자극)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결과에 따른 보상과 처벌 기제를 잘 활용하면 행동의 수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행동주의는 자기 관찰법에 의존하여 인간의 심리 구조와 심리 기능을 설명하던 구조주의에 대한 반발로, 재현 가능하고(repeatable), 관찰 가능하고(observable)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testable) 행동만을 연구대상으로 하였고, 결과적으로 행동주의는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행동의 설명과 예언, 통제에 관심을 둠으로써 심리학을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행동주의가 학교 심리학으로 자리 잡아 왔다. 심리학계에 수많은 이론과 사조가 부침하고 우리 교육계에도 심리학의 여러 사조가 소개되었지만, 교육행정가와 교사 집단에게는 인간은 외부 자극에 의해 통제된다는 사고가 오랫동안 교육의 원리가 되어왔다. 행동적인 수업목표와 타일러(Tyler)의 교육과정敎育課程 모형과 불름(Boom)의 교육목표 분류학이 우리 교육과정 설계의 정전正傳이 되었다. 교육과정은 교육목표의 설정-학습경험의 선정-학습경험의 조직-평가 등으로 요소화 되었고, 교육목표는 다시 지적 영역과 정의적 영역으로, 지적 영역은 1. 지식 2. 이해력 3. 적용력 4. 분석력 5. 종합력 6. 평가력으로, 정의적 영역은 1. 감수 2. 반응, 3. 가치화 4. 조직화 5. 인격화로 분류되고 이것들은 다시 세분화된 하위목표로 재분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목표들은 목표를 진술하는 사람의 의도를 잘 전달하는 목표로서 그 목표의 대안적인 해석을 최대한으로 배제하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행동적 용어로 진술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의 원리는 한 마디로 완전한 교육의 계획이 가능하며 학습자의 자유의지 없는 통제를 통해서도 완전한 학습복지가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행동은 학생의 성장환경에 의해서, 부모의 양육방식에 의해서 또는 유전적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는 외부통제 심리학은 교사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학생과 학교풍토를 현실로 만들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경영하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스스로 주도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건과 사람들의 자극에 대응해서 행동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관과 교육관은 그 뒤에 많은 인간주의적 심리학과 교육학에 의해서 배척받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심리학과 교육학이 대량생산과 대량교육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하위 변인으로서 교육을 상정했던 발전교육론과 더불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의한 교실의 공장화는 기실 자본주의의 발전 속성에 따른 교육의 동원체제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 등 외부통제 심리학에 반하는 여러 가지 교육 혁신을 꾀하는 시도들도 계속되어왔다.
내부통제 심리학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 의하면, 인간은 피동체이기도 하지만 능동체이다. 인간은 자극(스키너 등)이나 과거 경험(프로이드)에 의해 반응하기도 하지만 형성과정에 있는 존재로서 결정자로서(올포트), 자신의 잠재 가능성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오직 하나의 기본동기를 가지고 있다. “유기체가 경험하는 자신을 실현하고 유지하고 향상시키려는 하나의 기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로저스(Rogers)의 생각은 매슬로우(Maslow)의 자아실현 욕구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래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5가지 기본욕구를 위한 선택으로 보았다.
글래서(W. Glasser)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생득적으로 지니고 있는 다섯 가지 기본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선택으로 본다. 즉, 인간은 생존, 사랑과 소속, 힘, 자유, 즐거움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하며 이러한 욕구충족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는 현실적인 인식하에 행동할 때만이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선택이론에 근거하여 “좋은 학교(Quality school)는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중도탈락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노력해 왔다.
행동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의 학교 심리학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우리 교육의 양적 성장과 과학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수동화 또는 교육의 기계화라는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통제론(또는 결정론)과 자유론이 철학과 심리학 학파 간에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고, 각각의 주장에 합당한 이유와 논리가 있어 어느 하나의 주장만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교육계는 행동주의에 대한 지나친 치우침으로 인하여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을 간과하거나 애써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칸트의 말처럼, 인간은 두 세계의 시민이다. 인간은 필연 법칙이 지배하는 사실의 세계에 살고 있는 한편, 내적 자유에 따라 행위하는 도덕의 세계에서도 살고 있다. 두 개의 세계 중 어느 하나를 버리고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교육에서 인간관은 교육에서 쌓아 올리고자 하는 건축물의 기초이다. 즉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지으려는 집이 달라지는 것이다. 구성주의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을 지나 학습생태계에서의 학습전략과 적응을 고민하는 시대에 아직도 행동적 용어의 수업목표 진술은 여전히 교사 임용고사 수험서에 그대로 남아 신규교사들의 머릿속에 살아있다. 혁신교육과 배움 중심 수업은 학교의 통제 중심의 근대모형과 근대 심리학의 차원을 넘어 생명, 공동체, 마음, 자유의지 등이 내재적인 작동방식에 따라 움직이는 학습자의 자발성, 교육자의 탄력성, 교육제도의 유연한 자율성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