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3) 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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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3)
학벌주의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이다. 그것도 신분이 세습되는 나라이다. 뭐라고? 갑오개혁이후 신분제가 철폐되었고 왕조시대도 아닌데 신분이 세습된다니? 기막힌 일이지만 사실에 가깝다. 대한민국 현대사회는 학벌(學閥)이 신분이고 카스트이고 대를 통해 세습된다. 단순히 가방끈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가방끈의 색깔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벌(閥)이 ‘이해관계나 각종 인연 등을 함께하며 서로 뭉치는 패거리’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제 단순한 학력(學歷)을 넘어, 특정 학교를 매개로 한 학벌은 상징자본으로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재생산하며 후대에게 세습되는 것이다.
2차 대전이후 교육폭발은 세계적 현상이었으나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해방 당시 대학 진학률은 불과 0.3%에 불과하였으나, 1980년대 약 30%를 거쳐 2000년대에는 70%대를 상회하였고, 2008년 83.8%로 최고점을 찍은 뒤에, 2017년 현재 68.9%를 기록하여 고등교육의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도어(R. Dore)의 말대로 모든 국민이 ‘졸업장 병’에 걸린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어는 저개발국가에서 학력이 취업의 조건으로 활용되면서 취학 및 진학 경쟁이 급증하고, 경쟁이 과열될수록 상급학교 진학률을 밀어 올리는 교육팽창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교육팽창현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이론이 있다. 사람마다 학습의욕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학교에 가게 되고 상급학교 진학률이 높아진다는 학습욕구이론이 있다.
이건 상식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학교가 자발적 학습이 아니라, 강제적 학습노동에 기초하고 있고, 지적·인격적 교육욕구를 채워주는 적합한 장소가 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굿맨, 실버맨, 일리치, 라이머 등). 산업시대에는 누구나 직업을 가져야 하고, 과학기술의 부단한 향상 때문에 직업기술의 수준이 계속 높아져서 학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는 기술기능이론이 있다(클락, 콜린스). 이것은 인간자본론이나 발전교육론(슐츠, 베커)과 같은 입장인데, 설득력이 있지만, 직업세계의 기술수준과 학교의 교육수준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대학의 전공과 직장의 담당 업무가 다른 경우도 많고, 최근의 과잉학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교육팽창현상은 오히려 지위경쟁이론에 의하여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학력이 사회적 지위 획득의 수단이기 때문에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학력을 취득하는 탓으로 학력이 계속하여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학교단계마다 교육의 사회적 수익률을 계산하고 추정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그런 지식이 없이도 왕조시대 유교적 신분사회에서의 교육의 위신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의 현실적 유효성을 몸으로 체득한 우리 민중들은 직감적으로 교육의 기회적 요소를 포착하였고, 그 결과 상아탑이라고 믿었던 대학을 단숨에 우골탑(牛骨塔)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학벌현상은 더 밀어 올릴 수 없는 학력팽창의 막바지 단계에서 대학을 서열화하고 소수의 특별한 대학과 나머지 대학을 구별하고 배제하는 차별화 기제에서 나온 것으로, 재벌과 마찬가지로, 전통적 연고주의가 청산되지 못한 한국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에서 활동한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학벌문제는 단순히 사회적 불평등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문화적 봉건성에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좁은 의미의 계급적 차별에 대해서 본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계급적 차별은 학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벌에 따라 이루어진다... 우리의 보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도 학력이 아니라 학벌을 문제 삼아야 한다. 학생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대의 나라(강준만)’나SKY의 나라를 정면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벌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회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학벌사회는 사회학적으로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말하고, 정치학적 측면에서는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학벌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이루어지는 파당적 요소로 분배되는 붕당적 사회를 말한다.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한 사회가 생산하는 부와 권력을 소수 학벌집단이 지대추구행위를 통해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독과점 사회를 말하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학벌이라는 집단의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형성이나 결혼,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김동훈, 2001).
학벌사회를 옹호하며 반대급부를 챙기는 공범들이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고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 등 선발된 학교체제를 유지하는 중앙 정부, 고등학교별 서울대 합격자를 보도하며 입시철마다 명문대학 수석 합격자를 인터뷰하며 설레발치는 언론들, 학부모의 불안 심리로 먹고사는 사교육기관과 업자들, 끊임없이 차별 기준을 만들어내는 소위 명문대들, 서울 소재 명문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를 육성한다고 지방의 세금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들, 내 아이가 서울대에 간 것도 아니면서 서울대 합격자수로 학교를 평가하며 흐뭇해하는 지역주민들, 잘못된 제도를 고치려는 노력보다는 기존제도에 어떻게라도 편승하려는 우리 필부필녀 모두가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도어는 1970년대에 이미 학력사회로의 교육팽창현상이 국가적으로 교육재정을 압박하고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 입시준비교육으로 인한 학습과정의 형식화와 인격교육의 부재라는 교육 모순을 우려하고 있었다. 학력사회를 넘어 학벌사회가 된 우리나라는 그 이상의 심각한 교육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학벌주의는 몸과 노동을 천시하고, 학교의 모든 교육적 기획을 정지시킨다.
학교가 사회적 선발기관으로 계획하고 기능할 뿐, 더 이상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입시와 선발을 교육 자체로 믿고 있다. 현실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는 입시시장에서 설자리가 없다. 2021학년도 SKY(서연고) 대학교의 입학정원은 약 1만여 명이고, 고등학교 상위권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특목고 3학년 학생이 약 22,000명, 자율고(자사고, 자공고) 학생이 약 37,000명 정도인데,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머리를 디밀고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어디인가? 일반 고등학교 학생 대다수는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고 실력을 쌓기도 전에 패배주의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다. 리처드 리브스는 <20대 80사회>에서 상위권 대학 출신의 상위 20% 중상류층 부모의 자녀들이 상위권 대학의 입학기회를 독과점하면서 누군가의 유리천장을 유리바닥으로 디디고 있는 미국교육의 현실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5년 SKY(서연고) 입학생은 최상위층(소득 9, 10분위)출신 학생 비율이 70%를 넘고 있다(EBS뉴스). 우리나라도 신분이 교육을 통해 세습되고 있는 것이 실증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은 나올 수 없다. 학벌주의는 지방의 그만그만한 인재들까지 서울로 빨아들이면서 지방의 공동화를 불러 온다. 우리는 여기에서 물어야 한다. 학벌사회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래도 현재의 제도 안에서 내가 들어갈 틈을 찾을 것인가? ‘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의 8대 요구사항을 소개한다.
1.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2.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반대한다.
3. 교육과정에서의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4.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6.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7.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8.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 이 젊은이들의 피 끓는 절규를 새겨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세대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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