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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의 교육이야기 ③ 누가 가르치는가가 교육의 핵심

입력 : 2016-05-26 13:30:00
수정 : 0000-00-00 00:00:00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누가 가르치는가가 교육의 핵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길을 품고 태어난다.』

이 고백은 내가 행하는 모든 교육의 바탕생각이다. 자신이 품고 태어난 길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일, 그것이 내가 하는 교육의 전부다. 그래서 내가 하는 교육은 쉽고 단순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교육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까닭은, 모르는 것을 가르쳐서 알게 해야 한다는 왜곡된 이해 때문이다. 이는 마치 120Kg의 몸무게를 가진 친구가 잠들어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 그를 구하기 위해 잠든 친구를 업고 집을 빠져 나오는 것과 같다. 그를 깨워서 집을 나오게 하면 될 것을...

 

교육은 기억나게 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몸을 입고 세상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품고 태어난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자기 안에 없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 이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일, 우리는 이것을 자각(自覺)이라 부른다. 자각은 애쓰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요해지면 저절로 얻어지는 통찰(通察)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모른다]를 전제로 했다. 그래서 가르쳐 [알게]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교육이 길을 잃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모두 힘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교육의 방법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때다.

 

나는 20년 남짓 치열한 교육 현장을 넘나들며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 한 말씀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핵심 주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누가 가르치는가” 라는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에게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교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교사를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두려움이다. 이런 교사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아무리 긴 시간 회의를 한다 해도 그 과정은 두려움의 확대 재생산과정에 불과하다. 아무리 대책을 세우고, 안전장치를 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다 해도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을 뿐이다. 두려움이 만들어 낸 교육의 결과, 그것은 구속과 제한, 자연스럽지 못함과 집착이다. 

 

교사는 ‘이렇게 살아야 해!’ 라고 가르치지 않고 ‘이렇게 살면 돼!’ 라고 보여주는 존재다. 살면서 얻은 상처를 배움으로 바꾸고 그 상처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하는 존재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게 하는 존재다.

 

그런 교사가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스스로 놀라운 사실을 깨우친다. 빛나는 생명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이며, 그 존재의 몸짓이 위대한 예술 행위라는 사실을. 유명한 음악가가 되지 않아도, 빛을 그리는 화가가 되거나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작가가 되지 않아도 세상에 하나 뿐인 [나]로 사는 사람이 이 세상 최고의 예술가임을!

 

그래서 나는 모든 교육 커리큘럼의 촛점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영적 자각’에 맞춘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차리는 일, 그것이 바로 두려움에서 놓여나는 일이며, 자유에 대한 자각이며, 행복으로 가는 문(門)이기 때문이다.

 

 

 

글 김종률(삼무곡 청소년 마을 대표)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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