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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홍샘의 독서탐정단 ① 습관이 아니라 배고픔이 밥을 먹게 한다

입력 : 2016-07-07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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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홍샘의 독서탐정단>

습관이 아니라 배고픔이 밥을 먹게 한다

 

한 권의 책을 펼쳐든 사람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 먹고 마실 것을 찾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하듯 게걸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려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걷는 것처럼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들이 묵묵히 행진하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도 있다. 강을 따라 흘러가는 뗏목 위 허클베리 핀이 되어 책속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 대하듯 책만 보면 넘어야 할 험난한 태산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아이가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길 바라지만 좀처럼 책을 읽으려 들지 않아 고민을 하는 어른들은 먼저 아이들이 가진 책 또는 독서 행위에 대한 이미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침내 태산 같은 숙제의 이미지로 독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어른들은 어떻게든 ‘강제성’을 ‘자발성’으로,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려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쓴 약을 삼키기 위한 ‘설탕 한 스푼’을 어디서 얻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탕의 힘으로 책을 읽고 마침내 습관이 형성되면 그 습관의 힘으로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여긴다.

 

양치질의 습관은 협박이나 유혹이 통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유지된다. 그런데 어릴 때는 열심히 동화책을 읽었던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독서를 잘 하지 않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양치질은 개운함이나 상쾌함을 얻기 위해 비교적 간단한 같은 손동작만을 필요로 하는 반면 독서 행위는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일이 아니므로 다양한 정신적 능력들이 고난도로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서의 경우 습관을 기르는 것도 어렵고 설사 길렀다 하더라도 그 습관의 힘이 통용되는 정도도 미약하다. 습관의 힘은 겨우 독서 의지를 특별히 가지지 않고서도 책을 들 수 있다는 것 정도, 공포 없이도 책장을 펼치고 시각을 동원하는 것, 정신을 활성화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에 통용되는 정도이다.

 

그러니 “다섯 수레의 책을 읽는다” 또는 “평생 유지될 독서 습관”을 가진다는 거창한 목표를 처음부터 설정하는 것은 어떤 설탕으로도 삼키기 힘든 끔찍한 공포를 준다. 대신 한 두 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정신의 힘을 기르고 그 힘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자는 목표로 전환해보자. 사실 독서의 즐거움은 독서의 가장 중요한 체험 중 하나이며 이 즐거움은 독서가 바로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바꾸는 삶의 동력임을 체험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 경우 독서란 습관적인 행위가 아니라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행위의 일환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길러온 독서의 습관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답을 주고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졌어요. 그래서 또 저 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라는 말에서는 삶과 독서가 분리되지 않는다.

 

독서를 이런 태도로 바라보면 이해하기 버거운 책을 만날 경우에도 아이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배고파 죽을 것 같을 때 쌀이 없다고 그냥 굶고만 있지는 않는 것처럼 허기를 메워야 하는 절실함이 우리의 창의성을 촉발한다. 밀가루가 보이고 물이 보이고 마침내 우리 앞에 한 그릇의 수제비가 보인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더라도 그것만이 이 삶의 목마름과 허기를 메울 수 있다면 그 독서는 태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치대야 하는 밀가루 반죽과 같은 것이다.

 

독서가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스승,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친구를 만나는 일임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 글부터는 구체적으로 한 권의 책을 놓고 어떻게 아이와 부모, 세상이 소통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라는 단편 소설로 시작합니다. 


강금홍 선생님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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