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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홍샘의 독서탐정단 ➁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①

입력 : 2016-07-21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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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①

혹한의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외투’ 강탈하는 유령 출몰하다!

 

어떤 종류건 이야기가 되려면 위인전에 나올 법한 비범한 인물 혹은 비록 평범해 보여도 어딘가에는 비범한 자질이 숨어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걸까? 평범한 주인공이라도 그를 둘러싼 세계가 평범하지 않다면 어떨까? 물론 그 세계는 언제나 봄,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는 것처럼 얼핏 보아서는 평범한 세계여야 한다. 그래서 ‘고골’ 과 같은 통찰력을 가진 작가들의 눈과 손을 통해서만 ‘혹한’의 겨울,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세계의 참상이 드러나는. 그렇다면 오히려 주인공의 평범한 모습은 가혹한 시대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곰보에 지독한 근시, 깨끗한 글씨를 쓰는 것이 업무

우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그 이름부터가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 고만고만한 상상력을 가진 부모와 친척들이 고민고민하다 ‘아카키’ 라는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쓰는 게 낫겠다며 새 이름 짓기를 포기한 결과다. 게다가 이미 나이 오십에 ‘키는 작고, 얼굴은 약간 곰보에 불그스름하고, 지독한 근시에 이마가 벗겨졌고, 양 볼에 주름이 있고 안색은 치질 환자’ 같으며 부인도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아카키.

 

승진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영원한 9등 문관’의 가난한 삶이지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외롭다고 투덜대지도 않는다. 그가 자신의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서류를 깨끗한 글씨로 다시 써서 정리하는 자신의 담당 업무, ‘정서(精書)’하는 일에서 나온다. 정서는 업무를 넘어 아카키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대상이며 아카키 그 자신이다. 일이 끝난 후에도 집에서 그 사랑하는 ‘정서’를 하느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유흥을 찾아 ‘바깥 세계’ 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의 옷차림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옷은 ‘바깥세계’에 대한 관심

‘옷’에 대한 관심은 어떤 의미에서는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요즘엔 심지어 손톱에도 ‘네일 아트’ 라는 옷을 입혀주는 걸 ‘예의’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카키가 얼마나 옷차림에 무관심한지 그 옷 위에는 <건초 쪼가리나 실밥 같은 게 항상 들러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카키는 <사람들이 창문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바로 그 순간 때맞춰 그 밑을 지나가는 비상한 능력>마저 갖고 있다. 이런 그를 동료들은 곧잘 놀려댄다. 아카키의 머리에 종잇조각을 뿌리면서 ‘와아 눈이 오네’ 라는 둥. 하지만 아카키는 그런 장난이나 놀림에도 자신의 정서, 즉 자신의 세계가 방해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반응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세계’ 에 관심이 없다.

 

페테르부르크의 혹한

그러나 이러한 아카키의 자족적 세계는 끝내 유지되지 못한다. 그 어떤 적보다도 강한 적, 페테르부르크의 ‘혹한(酷寒)’ 때문이다. 상상해보자. 고골은 혹한을 <아침 8시>, 연봉 400루블로는 결코 좋은 외투를 장만할 수 없는 <하급 관리들의 코를 사정없이 강력하고 매섭게 후려치>고 제법 고급 외투를 가졌으리라 짐작되는 <고위관리들마저 이마가 아프고 눈에서 눈물이 질금거리>게 할 정도로 무섭고 강력하다고 묘사한다. 오죽하면 ‘혹한’일까?

 

동료들이 아무리 놀리고 건드려도 꿈적도 하지 않던 아카키라도 이 예사롭지 않은 혹한의 공격을 받는다면? ‘정서’라는 터널을 통해 집과 일터가 평온하게 하나의 세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그 둘 사이에 놓인 골목길이며 거리들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면? 그러나 이제 혹한에 점령된 그 거리가 아카키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 후 하나였던 세계를 둘로 쪼개고 분리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단숨에 대여섯 거리를 달려 둘을 다시 하나로 이으려 해도 ‘등짝과 어깨가 심하게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면? 이제 아카키도 옷차림에 관심을 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덮개’ 대신 새 ‘외투’를 하나 장만해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까?

 

외투②편에는 시민들의 ‘외투’를 강탈했다는 ‘유령’의 정체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강금홍 선생님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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