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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2) 한국교육의 이데올로기

입력 : 2020-08-07 01: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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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2) 한국교육의 이데올로기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과 운영방식을 결정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동과 실천에 실질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인 사상 또는 신념체계이다. 대개는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을 이끌어가기 위해 퍼뜨리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너무나 다의적이고 다층적이어서 한 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우며, 과학이라기보다는 신화나 미신에 가까워서 형성의 배경과 지배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국가 수준의 거대 이데올로기가 있고, 정당의 정강·정책과 같은 특수 이데올로기가 있다. 또한 신라의 풍류도나 조선의 성리학과 같이 이데올로기란 말이 생기기 전부터 한 나라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한 사상체계도 있다.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첫째, 총체성이다.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강력한 끼친다. 둘째, 은밀성이다. 특별히 의식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습득한다. 셋째, 허위성이다. 대개 지배집단의 논리가 피지배집단의 도덕으로 받아들여진다. , 특히 지배집단의 생각이 내 생각인줄 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것이다. 넷째, 수정 불가능성이다. 웬만해서는 믿는 바를 바꿀 수 없다.

 

 

한국교육에도 당연히 이데올로기가 있다. 거대담론 수준에서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이다. 북한이 교육을 통해 공산주의적 인간을 양성하려고 하는 것처럼 한국은 교육을 통해 자본주의적 인간을 양성하려고 한다. 교육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유지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태도와 가치관을 습득시키려고 한다. 한국의 지배집단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재생산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문화자본을 통해 유리천장을 만들고 계급을 재생산하고 세습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큰 틀의 이데올로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지배하는 작동원리로서 한국인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확고한 신념의 이데올로기가 있으며, 한 때 발전의 추동력이 되었으나 현재는 한국교육 진보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고 있다.

먼저 학벌주의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형성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교육학 교과서에만 있는 개념이다. 교육은 학교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의 문제이고, 대학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재학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문제가 된다. 미국에도 HYP(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라는 말이 있지만, SKY는 우리나라 학부모의 신앙이 되어 입시철마다 예수나 부처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영험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재벌이란 말이 한국 특유의 개념이듯이 학벌은 우리나라의 고유어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능력주의(meritocrcy) 신앙이 있다. 전통적인 신분체제가 깨지면서 누구나 신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고 능력에 따라 직업을 가지고 능력에 따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축적이 진행되면서 능력이 이제 평등의 기제를 넘어 선발의 기제가 되면서 능력주의로 전환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정당화 논리가 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정과 정의의 싸움의 밑바닥에는 바로 능력주의가 작동하는 있다.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SES)에 따라 세습되고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전은 경쟁에서 비롯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경쟁신화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작은 땅에서 빈약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던 습관이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빈약한 상급학교 진학기회를 위해서 경쟁했고, 더 높은 학업성취를 위해서 학생들끼리 경쟁을 시켰다. 경쟁이 학업성취를 진작시킨다고 굳게 믿었던 옛날 우리 선생님들은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학교복도에 1등부터 꼴찌까지 과거시험 방 붙이듯이 성적 방()을 붙이는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믿었고, 우리는 학습에서의 협력의 중요성을 간과하였고 협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 경쟁지옥에 빠져서 살게 되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 학교심리학을 지배한 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이었다. 물론 나중에 유기체(O)의 변수를 고려하긴 했으나, 자극(S)에 반응(R)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가정은 심리학의 과학화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우리 교육은 이런 편협한 심리학에 기초하여 모든 교육이론과 학습이론이 만들어졌다. 교육의 목표는 모두 행동적인 용어로 기술되어야 했으며, 교육목표 진술부터 학습경험의 선정과 조직, 수업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행동주의적인 방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타일러와 블룸의 교육과정을 우리 교육과정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인간의 인지적 측면과 감정과 사고의 복잡한 과정을 사상(捨象)시켰고, 결과적으로 인간관계와 개인의 행동을 탈윤리적이고 탈정치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권위주의 지배체제에 동조하게 되었다.

우리교육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미국주의이다. 현대교육의 기본틀은 미군정 시대에 학제를 비롯하여, 미국의 교육제도와 교육이론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으며,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미국 유학파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미국주의자 이승만이 대통령이었고, 오천석 같은 미국 유학파들이 문교정책을 주관하였으며, 지금도 고시에 합격한 교육 관료들이 국비 미국유학에서 공부한 이론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온 유수한 대학의 교수들과 함께 교육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미국의 사조와 이론들이 배경과 근거가 되었다. 홍익인간이라는 교육이념은 해방 후부터 교육기본법의 머리 부분에 근사하게 허울의 아우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 교육의 실질적인 국부는 죤 듀이이다. 그마저도 죤 듀이의 진정한 철학은 왜곡된 채 미국정신과 제도가 그 부작용과 모순과 불평등과 함께 우리교육의 고갱이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가 되었다. 전쟁과 교육과 교회를 통해 미국은 우리의 모국이 되어 미국을 비판하는 일은 불경과 불온의 대상이 되었다. 광화문에는 지금도 미국 깃발이 우리 깃발인 냥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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