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0> 교사, 호모 사케르
수정 : 2020-07-17 05:59:56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0> 교사, 호모 사케르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2020년 4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정당법 및 국가공무원법에서 초·중등교원의 정당가입을 금지한 조항에 합헌 6인, 위헌 의견 3인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정당법 제22조 제1항 단서 제1호,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1항 및 제4항에 대한 2014년 헌재 판결과 동일한 내용, 동일한 이유이다.
교원의 정당가입 금지조항은, “교원의 활동이 미성숙한 학생들의 가치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번 헌재 판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가공무원법에서 교원이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라는 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과, 판결에 대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연대 청소년단체의 논평이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 박탈, 학생을 위한 것일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교사들로부터 정당가입과 같은 중대한 정치적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하고 있는 법이 합헌 판결을 받은 것은, 여전히 학교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며, “학생을 위해서”라는 박탈의 명분은 “학생을 정치로부터 떨어뜨려 놓아”, 경쟁 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교사-학생의 수직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학생도 교사도 시민으로서의 정당 가입 등 정치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고 요구하였다. 한마디로 학생 핑계대지 말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교원의 정치적 자유권을 보장하라는 말이다.
정치적 자유권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교원과 공무원의 경우 법적 근거에 의해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데, 법적 근거는 헌법 제7조 제2항, 헌법 제31조 제4항과, 이 헌법 규정에 근거한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교육기본법, 교육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지방공무원복무규정 등이다. 이런 법과 규정을 통해서 교원과 공무원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정당 가입 및 활동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피선거권의 보장 등 정치적 기본권이 포괄적으로 금지당하고 있다.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직업적, 교육적, 시민적 차원으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교원의 집단적 이해 실현을 위한 직업적 정치 참여는 노조활동을 통한 교섭 외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노조의 정치참여는 금지되어 있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2012 헌바 185 병합) 교육적 정치 참여를 보장한다고 되어 있으나 현실에서 그런 범위 내의 교육활동은 없다. 교육적 정치 참여는 정치교육과 관련된 것으로 교육 또는 수업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문제이다. 전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공무원의 특수 신분으로 인해 교원의 시민적 정치 참여도 전면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다. 이는 신분에 의한 차별 금지를 어기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2019년 국회 앞에서 ILO 기준에 부합하는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한 쟁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으로서의 교원과, 공무원인 교사의 입장과 기대가 다르다. 헌법 제21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와 헌법 제7조 “①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봉사한다.”라는 조문의 정신 즉 정치기본권의 보장과 제한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공익’과 ‘직무 전념성’을 저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교원(공무원)의 정치활동과 단체 활동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공무원이라는 특수 지위를 인정하더라도 비례성, 과잉금지,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시민으로서의 정치 기본권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둘째, ‘교원(공무원)의 정치 활동이 공익과 정치적 중립성을 저해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과관계에 있어, 교원의 정치활동과 공익의 관계가 적대적이라는 입장, 사안과 유형에 따라 다르다는 입장, 오히려 상보적 관계라는 입장까지 다양하다.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도 교원의 비정치적 활동이 중립성을 견지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부터 원래 헌법의 입법 취지가 상위의 정치권력으로부터 교육과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까지 다양하다.
셋째, 교원의 정치활동 보장이 헌법(제1조)과 교육기본법(제2조)의 정신인 민주주의와 민주시민 양성을 촉진한다는 견해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다. 우리 사회는 정치와 ‘정치적’이라는 말을 불온시, 위험시 여기는 경향이 있고 헌재의 판결에서도 무비판적으로 이런 편견이 반영되고 있다. 정치는 공공의 평화나 안녕, 질서와 마찰을 빚을 수 있고, 교원의 정치활동은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법원은, 국민의 정치참여나 정치적 관심을 막기 위해 정치를 불온하고 불순한 것으로 이미지화했던 권위주의 시대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신장이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 교육의 선순환을 가져온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주의의 출발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고, 교원(공무원)은 정책의 집행과정의 체험에서 정보와 문제점에 대한 이해력이 높으며 정부의 공공성과 균형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결과적으로 민주시민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교원의 정치활동이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보는 수동적 학생관은 현대 교육학의 인간관과 학습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리(條理)를 꼼꼼히 따져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교학적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첫째,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방법이 정당하고 합리적인가, 수단이 과잉되거나 비례성에 맞는 것인가 따져 봤을 때 우리나라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제한은 지나치고 민주주의 진전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감이 없지 않다. 둘째,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자.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제한의 규정을 전혀 두지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자유롭고 민주적인 근본질서(FDGO)에 대해 시인하고 그의 유지를 옹호해야 한다.”는 헌법충성과 “공무원은 정치활동에 있어서 일반에 대한 그의 지위와 공무원의 의무에 대한 고려에서 나오는 정도의 절제와 자제를 해야 한다.”는 근본의무 규정만 있을 뿐 어떠한 정치참여 금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독일연방의회의 의원 630명중 28명이 교사 출신으로 단일 직업군으로는 가장 높은 비율이다. 교사 중 가장 유명한 정치인은 빈프레드-크레취만으로 바덴-뷰템베르크 주 대통령이다. 일본도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제한을 직무 수행 중으로만 한정하고 사적 생활에서는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포괄적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공사 관계를 막론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정치적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학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선진국의 입법 경향이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국민의 법의식을 두루 참고해 볼 때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향적인 결단을 할 때가 되었다. 법적인 방법은 현행 법률의 적극적 해석을 통한 실현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법 개정을 통한 전면적 허용 방안이 있다. 또한 교원의 정치적 자유권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방법이 있고, 영역별로, 단계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면 교사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은 현행 상태를 유지한 채 교원단체의 정치적 기본권을 풀어주는 방법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만 허용해 주거나, 정당의 가입과 활동까지 허용하는 방법도 있다. 일본처럼 근무 외 시간의 직무 수행과 관련되지 않은 활동만을 허용하는 방법도 있다. 현직 교원 공무원의 직무 전념상의 문제가 있다면 교사들의 휴직을 활용하여 정당 활동을 허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적어도 정치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 같은 교육적 정치참여는 교사들에게 전면적으로 허용하여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민주시민 양성의 활성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당장 시행해야 한다.
교육자치의 시대이다. 18세 고3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넘어 16세 학생들이 교육감 선거 참여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이제 로칼 거버넌스를 구축하지 않으면 행정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도모할 수 없다. 학부모 단체도 시민단체도 교육공무직 단체도 지역 교육 거버넌스에 참여한다. 교육의 주류이며 교육 전문가인 교원 또는 교원단체만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울에 가두어 방관자가 되어야 하는가. 교원들의 음성적인 정치 활동을 양성화해야 한다. 교원들을 더 이상 호모 사케르로 만들지 말라!
* 호모 사케르, 권력에서 배제된 희생양을 의미함,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되지 않는 존재, 이탈리아 문화비평가 조르주 아감벤의 저서
▲ 조르주 아감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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