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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옛날이야기 ⑤ 신기한 깡통따개 ‘깡그리’

입력 : 2016-03-03 18:14:00
수정 : 0000-00-00 00:00:00

신기한 깡통따개 ‘깡그리’

 

▲6.25 전쟁 중 전투식량 깡통으로 식사하는 미군 병사들.

 
 1970년대 초 파주 파평면 두포리의 봄날.

 

 학교 끝난후 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앞서가던 아이들이 얕은 냇가를 건너다가 환호성을 지르면서 무언가를 물속에서 줍기 시작했다. 미군이 떨군 씨레이션 (전투식량 통조림)들이었다.

 

 영어는 몰랐으나 모양을 보니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자란 딸기로 만든 잼이 들어 있거나 텍사스초원에서 풀도 미국풀을 먹고 자라 어떻게 먹어도 맛있을 것이 분명한 미제쇠고기가 들어 있을 것 같았다.

 

 당장 따먹고 싶어 군침이 돌고 마음이 급했으나 도구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돌로 찍거나 연필 깎는 칼로는 딸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때 늦게 뒤에서 따라왔던 친구가 보더니 말없이 자기 가방을 뒤져 손가락만한 작은 쇠붙이를 꺼내 보였다. 미군부대가 많아 양키물건이 넘치는 파주의 아이답게 늘 준비된 이 친구에게 일제히 박수를 쳤고 그 신통한 물건으로 깡통을 따기 시작했다.

 

 봄날 두포리 냇가옆의 그 깡통속에 들었던 음식은 충분히 많았고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을 만큼 특별한 맛이었다.

 

 그 작은 물건은 깡통을 따는 도구였고 이름을 “깡그리”라고 불렀다. 왜 그런 이름인지는 모르고 그냥 깡그리라고만 기억했다.

 

 세월이 지나 미군부대가 대부분 파주를 떠난후 갑자기 그 이름은 어디서 유래되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당시에도 제대로 있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나 그런 지식은 공유되는 시절이 아니었고 그럴 만큼 중요성이 있는 물건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지나가버렸고 잊혀졌다.

 

 파주 사람들 중 미군과 관련한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수없이 물어보았으나 유래나 어원을 아는 분이 없었다.

 

한국전쟁당시의 미군 전투식량 씨레이션

 

 왜 그 깡통을 따는 도구를 깡그리라고 했을까?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 특별하게 맛이 있고 영양가 높았던 씨레이션 통조림을 따서 깡그리(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부사적 표현이었을까?

 

 그 후에도 어원을 찾아다녔으나 헛수고만 하다가 우연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알게 되었다. 우리가 부르던 깡그리는 일본어 칸키리 (かんきり) 였다.

 

 일본말이 전해진것이고 이것을 파주에서는 동네에 따라 깡기리-->깡그리로 변화되면서 굳어진 것이었다. 이 단순한 것을 나만 몰랐고 내 주변의 파주사람들만 몰랐던 것이었다.

 

▲깡통따개 P-38과 P-51


“깡그리”라고 부르던 이 깡통따개 정식 명칭은 P-38 캔 오프너.

 깡그리는 1942년 시카고의 한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편리함과 간편함으로 한국전쟁부터 베트남 전쟁이후까지 미군들의 필수소지품이 되었다. 명칭은 이 도구의 길이가 38mm여서 모델명이 되었으며 38번을 눌러야 깡통이 따지기에 거기서 왔다는 재미있는 속설도 있었다. 이보다 조금 더 큰 P-51은 51mm이었다.

 

 수십 년 후, 이제는 유물이 된 미군 깡통따개 P-38을 구했다. 그리고 오래전 사라진 깡통에 담긴 형태가 아닌 비닐에 담기는 방식의 미군 전투식량 신형 (MRE)를 사와서 식탁위에 뜯어놓고 시식을 시작했다. 훨씬 맛있고 다양하며 고급스러워졌다는 밀리터리매니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밥을 굶던 시절도 아닌데 미군 깡통 캔하나 있으면 풍요로운 마음이 들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나 많은 것이 변하고 잊혀질 만큼 충분히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 맛은 마치 파주시청 사거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무단 좌회전을 했는데 숨어있던 교통경찰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의 당황스러움 같은 맛이었다.

 

 게다가 달디 단 투명한 국물과 함께 큼직한 조각이 풍족하게 들어 있고, 복숭아 간스메라고 불렀던 그 아름다운 것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다. 대신 대청마루에 나 앉은 명월관 퇴기의 저고리같이 대충 구색만 갖춘 과일화채가 들어 있었다.추억은 추억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 미군 깡통안에서 느꼈던 위대한 아메리카는 이젠 더 이상 달달하지 않았다.

 

 

 

파주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사람 김현국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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