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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현 박사의 통일 문화 산책 ⑩ 한반도의 통일 전망⑴

입력 : 2015-05-15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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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들의 통일 경험과 한반도의 통일 전망⑴



 





 



이번 호부터 분단국들의 통일경험과 한반도의 통일전망을 연재하고자 합니다.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 민족으로서 분단된 나라는 독일,예멘,베트남,한국 등이었는데 그 중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 나라는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분단되었다가 재통일된 나라들은 역사, 분단 원인, 국제정치적 환경, 내부 세력구도, 민족적 특성 등이 각각 달라 통일 경로와 과정이 상이하지만, 그 통일과정을 분석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의 통일과정과 경험을 살펴보는 것은 남북한통일의 방법과 경로를 찾는데참고가 될 것입니다.



 



한 민족으로서 분단되었다가 재통일된 나라들의 통일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이번 칼럼에서 다룰 내용은 통일의 다이나믹스(동력)이다. 통일 동력은 일단 작동하면 계곡의 급류처럼 순식간에 예측을 뛰어넘어 진행되었다. 통일 과정은 처음 시작이 어렵지 일단 발동이 걸리면 빠르게 진행됐던 것이다. 통일의 움직임이 시작된 후 마무리까지 걸린 기간이 독일은1년 반, 예멘은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그 방향이나 과정에 대해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외부의 관찰자들은 물론이고 내부의 정책 결정자들도 수동적으로 큰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국민 여론과 국제정세의 추이에 배치되는 행동을 했던 정파는 몰락의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독일의 통일과정



독일의 통일은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인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 5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국경에 설치되어 있던 철조망을 제거하고 국경을 개방하자 이 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900여 명의 동독인들이 8월 19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였으며, 체코와 폴란드에 있던 14,000여 명의 동독인들도 이 소식을 들은 후 서독 대사관에 몰려가 망명을 신청하였다. 동독 내부에서는 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는 10여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의 평화기도회가 열렸다. 강압정치로 일관했던 동독 공산당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더 이상 대처할 수 없게 되자 호네커 서기장 사퇴 ->크렌츠 서기장 취임 ->개혁파 모드로프 수상 임명으로 위기를 수습하고자 했지만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당시 서독의 콜 총리나 동독의 모드로프 수상은 1년 후 통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한 채 점진적으로 단계를 거쳐 통일을 진행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90년 3월 실시된 동독의 자유총선거에서 사실상 결정되었다. 동독의 신속한 서독 편입을 공약으로 내건 드메지에르의 독일연합이 승리함으로써 동독인들의 통일의지가 대내외적으로 확인되면서, 7월 경제통합을 거쳐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편입됨으로써 통일은 완료되었다.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한 채 적대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처지에서 통일의 경로와 방향을 논의한다는 게 빠른 감은 있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게 통일의 속성이다. 따라서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통일 과정이 시작되면 그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유비무환! 준비의 핵심은 교류·협력이다. 교류를 통해 남북 간 이질성을 줄이고 민족 구심력을 크게 하며, 협력을 통해 남북 간 격차를 좁혀 놓아야 한다.



-다음호에는 예맨의 통일과정 연재합니다.



 



백장현



정치학박사 ?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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