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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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국정교과서는 그대로 강행하고, 누리과정예산은 계속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겠다고 한다. 일당 2만원으로 탈북자를 동원한 관제 시위 단체와 전경련은 반성은 커녕,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마저 일당 운운했다. 공중파 방송과 주요 언론들은 전경련의 5억 넘는 자금이 어버이연합의 관제데모에 들어간 것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한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는 ‘기득권’
모두 시스템의 맨 꼭대기에서 톱니처럼 벌어지는 일이다. 한 치의 양보도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파주에서도 기성 정치인이 지역위원장을 계속하겠다며 선거 패배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다. 항상 제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만 있다. 새로운 정치인, 참신한 리더가 크거나, 지역을 위한 개혁적 아이디어가 설 자리가 없다.
세계는 지금 매일 5만명, 1년에 1,800만 명이 굶어죽는다. 매년 1,100만여명의 아이들이 다섯 살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한다. 매일 밤 8억명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세 사람이 가장 가난한 나라의 6억 인구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다.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다. 도대체 왜 이럴까?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언론과 방송
이런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시스템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주저앉거나, 무관심이라는 동굴로 도망을 가거나, 입으로 평론을 하면서 몸으로는 “우리는 약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돌아볼 일이다. 어처구니 없는 여론조사로 사람들의 사고를 경도하는 것에 대한 반성은커녕 또다시 정당별 지지도를 여론조사해서 발표하고 있다. 그것을 믿으란 말인가?
모든 언론과 방송은 떠든다. 권력자와 정치인, 기업인과 자본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가 기사가 되고,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 미움과 친근함이 보도된다. 그래서 우리는 잊어버린다. 세상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마치 그들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우리가 뽑아서 우리의 일을 하도록 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13일간의 머슴행세를 빼고는 세상의 주인이 되어버린다.
자유를 위한 건배로 7년형 선고 받은 포르투갈 학생
1960년 포르투갈은 독재자 치하에 있었다. 11월의 어느날 학생 두 명이 카페에서 자유를 위한 건배를 했다. 이 일로 두학생은 7년형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 막걸리 반공법이 떠오른다.이 기사를 본 39세의 영국인 변호사 피터 베네슨은 분노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탄원’이라는 캠페인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61년 ‘옵저버’ 신문 1면에 기사를 냈다. ‘의견차이나 종교적 이유로 수감, 고문 혹은 처형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베네슨은 12개월에 걸쳐 양심수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모으고, 탄원 캠페인을 벌였다. 국제사면위원회, 엠네스티는 이렇게 탄생했다. 61년 창설된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전 세계 12개국에서 탄원 조직이 생겼다. 오늘날 전세계 200만명이 넘은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이다.
학생 두명의 7년형 선고에서 분노한 변호사 한 사람이 지금의 엠네스티를 만든 발단이다.
사실 모두, 하나에서 출발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없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다. 주체가 사라진 채 방송에서 말하는 것에 빠져서 우리 자신의 힘을 잊어버리고, 급기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다가 투표를 했고, 그리고 지금의 정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에 놀라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그것을 말해준다. 여소야대, 3당 체제의 시작, 지역주의 극복 정치 등등의 무수한 수사에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다는 어마무시한 말 대신, 바로 ‘당신이 주인’이라는 말을 복구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떠드는 추상적인 국민이 아니라, 바로 ‘나’를 정치 전면에 등장시킨 것이 이번 총선이었다. 내가 직접 결정하고, 직접 실천하고, 직접 논의할 수 있다는 그것을 대한민국 역사에 증명한 날이었다. 이제는 언론과 방송에서 말하는 ‘주체’없는 정보에 흔들리지 말아야한다.
이제 모든 변화의 출발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해야한다. 한 변호사의 분노로 시작한 엠네스티, 여섯 살 꼬마의 행동에서 시작한 ‘라이언우물재단’, 백인전용 버스칸에 앉았던 로사 팍스의 용기로부터 세상은 변했다. 강정마을 농사꾼에서, 밀양의 할머니에게서, 고리 원전의 주민 투표에서부터 세상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믿을 때, 세상은 즐겁게 변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 내 손안에 있소이다.”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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