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역사교실 제2부 ⑨ 황수신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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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명: 황수신 묘역
황정욱 묘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다가 왼쪽 언덕쯤에 황수신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황수신은 황희의 셋째 아들이자 영의정을 지냈다. 황희와 함께 2대에 걸쳐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으나 장수 황씨 가문에서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꼭 자랑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조인물고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황수신의 삶을 들여다보자.
우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다
황수신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우직하고 두려움을 몰랐다. 국조인물고에는 황수신의 어릴 때 이야기가 전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한 친구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우아, 이 일을 어찌 하냐? 큰일 났다.”
“큰일은 무슨? 구하면 되지.”
아이들이 모두 놀라서 걱정하고 있던 차에 황수신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우물에 들어가 그 아이를 구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황희는 자신의 아들이 장차 재상의 될 인물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겼다.
기생에 빠져 살다
황수신은 젊어서 기방에 자주 드나들면서 호방한 생활을 하였다. 아들을 아끼던 황희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수신을 내치기로 하였다. 황수신이 그날도 기방에서 놀다가 밤늦게 집으로 들어왔다.
“황수신 나리, 어서 오십시오. 어찌 이리 누추한 집에 방문하셨나이까?
“아버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나리라뇨?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그동안 공을 아들로 대했는데 제 말을 전혀 듣지 않으시니, 제 집의 손님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공을 손님의 예로 대하겠나이다.”
황희는 관복 차림으로 대문까지 나와서 큰 손님을 맞이하는 예로 아들을 대하였다. 수신은 그때 크게 깨닫고 기방 출입을 삼갔다.
음서 출신으로 영의정 까지
황수신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벼슬을 한 까닭에 음서로 종묘를 지키는 벼슬을 얻었다. 이렇게 시작된 벼슬살이는 개인의 역량과 가문의 힘이 어우러져 탄탄한 길로 접어들었다. 사헌부(현재의 검찰청)장령이 되었을 때, 도성에서 백성을 현혹시키던 무당들을 성 밖으로 쫓아냈고, 지방으로 나가서도 공을 세웠으며, 내직으로 돌아와서는 도승지(현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거쳐 한성부윤, 형조참판, 병조참판 등 주요 벼슬을 두루 역임하였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꾀할 때 동조하여 좌익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세조 즉위 후 좌참찬, 좌찬성,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 13년(1467) 4월 61세에 이르러 영의정에 올랐다. 국가 설립 초기라서 과거를 거치지 않은 인물이라도 능력이 되면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수신의 영의정 벼슬은 아버지만큼 오래 가지 못했다. 영의정에 오른 지 한 달 보름 만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성이 황이니 마음 또한 황하다.
그가 죽자 곧바로 국가에서는 졸기를 작성한다. 세조실록에 나오는 황수신의 졸기를 통해 그가 뇌물을 꾀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뇌물이 폭주하여 한 이랑의 밭을 탐하였고, 한 사람의 노복을 다투어서 여러 번 탄핵을 받는 데 이르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이 황(黃)이니, 마음도 또한 황(黃)하다.’ 하였다.”
공식적인 기록조차 이렇게 밝혀 놓았으니 황수신이 뇌물을 좋아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통 시대에 벼슬을 하면서 뇌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에도 청탁과 뇌물은 공공연하다. 올해 9월에서야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시행되자 여기저기서 “장사가 안 된다.” “만나지 말자.” “전화하지 마라.” 등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청렴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장수황씨 가문에서 항의 전화를 받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600년 전의 일이고, 그릇된 것을 통해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므로 공직자로 하여금 경종을 울리고 싶기에 이 글을 쓴다. 공직자는 퇴임을 한 후에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정헌호(역사교육전문가)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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