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③ 꽃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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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싸움(화투) 에 나오는 식물이야기
명절 때 많이 하는 놀이 “꽃 싸움”, 일반적으로 한자어인 화투(花鬪)라고 부릅니다. 꽃 싸움의 시작은 일본에 들어왔던 포르투갈의 선원이 하던 놀이를 일본식으로 변형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전해 들어온 것이죠. 이름 그대로 12개의 패에는 전부 식물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열두 달의 계절과도 일부 관계가 있기도 합니다.
첫 번째 패는 늘 푸르른 소나무를 나타냅니다. 겨울에도 푸르러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기도합니다. 여기에 겨울 진객인 두루미가 함께 그려져 있는데, 실제 두루미는 나무위에 앉지 못하지만 십장생으로 둘은 짝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2월에는 매화가 피기 시작합니다. 나무 꽃 중에는 꽤 이른 편이라 꽃 위로 눈이 내리기도 하죠. 이 시기에 봄을 알리는 전령사 꾀꼬리가 함께 하여 2번 패를 매조라고도 부르게 됐습니다. 3월은 벚꽃입니다. 매화보다는 조금 느린 편이죠. 이 그림에 나타나 있는 화단 같은 모양은 만막이라는 일본식 휘장입니다.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패가 바로 4월 등나무입니다. 등나무는 칡과 같은 덩굴성 식물이므로 뒤집어 들어보시면 등나무의 덩굴손이 표현 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함께 그려져 있는 새는 두견새입니다.
다섯 번째 패는 꽃창포를 표현한 것으로, 주로 습지에 서식합니다. 그래서 습지 공원 등에 있는 산책용 나무다리가 함께 표현되어 있습니다. 6월을 상징하는 식물은 모란입니다. 신라 선덕여왕은 당 태종의 모란 씨앗과 그림 선물을 받고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는 것으로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꽃싸움 패에는 모란꽃과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군요. 사실 인간의 후각은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대기 중의 5%정도의 냄새에만 반응한다고 하니 사람에게는 없는 향기라도 곤충이 느끼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여름이 짙어지는 7월에는 싸리 꽃이 많이 핍니다. 싸리의 종류에 따라 피는 시기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싸리’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은 이 시기에 주로 꽃이 피죠. 일본에서는 7월이면 멧돼지를 사냥하는 철이므로 멧돼지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보통 8번 패를 공산명월이라고 하여 산위로 뜨는 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산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실제로는 억새입니다. 그림의 단순화 과정에서 전부 까맣게 칠해진 것이죠. 패를 하나하나 잘 살펴보시면 일부 까만 부분이 완벽한 호를 그리지 않고 살짝 찌그러져 있는 것도 있습니다.
9월인 가을은 국화의 계절입니다. 우리나라 야생에도 많은 종류의 국화가 이 시기에 핍니다. 9번 패에 목숨 수(壽)가 써 있는 붉은 물체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술잔으로 일본에서는 물에 술잔을 띄워 국화주를 마시면 장수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열 번째 패는 단풍을 나타내는데, 이것을 단풍나무로 보는 견해와 풍나무로 보는 견해가 갈립니다. 다만 풍나무는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습니다. 11번 패는 흔히 똥이라고 부릅니다. 꽃싸움 패에 똥을 왜 그려놨을까요? 거기에 큰 닭의 그림도 있으니 닭똥인걸까요? 과거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면 벽오동을 동(桐)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11월은 바로 이 벽오동을 이야기합니다. 중국 “산해경”에는 닭을 닮은 전설의 동물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봉황입니다. 봉황이 내려앉는 나무가 벽오동인 것입니다.
12번 패는 일본 색채가 가장 강하지요. 이 그림은 일본의 서예가 오노 노도후가 공부에 질려 방랑을 떠나던 길에 비 오는 날 수양버들에 기어오르는 개구리의 노력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공부에 정진했다는 내용입니다. 12번 패의 검은 그림은 수양버들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이렇듯 놀이 하나에 많은 동식물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동양의 놀이는 자연과 가까이 있는 듯합니다. 일본식 색채가 강하고 도박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인식이 좋지는 않습니다만, 그림의 뜻을 알면 재밌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물소개꾼 김 경 훈
자연환경연구소 식물상 조사원/세명대학교 대학원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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