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 <15> 나를 구해줄 왕자님보다 내가 닮아갈 여왕님을

입력 : 2016-12-09 12:13:00
수정 : 0000-00-00 00:00:00


 

나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를 좋아한다. 동시에 어벤져스를 보면 무척이나 불편해진다. 나는 데이빗 핀처의 스릴 넘치는 영화를 좋아한다. 동시에 그의 영화를 보며 어쩔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나는 많은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 그럼에도 늘 서글퍼지는 것은, 나와 같이 어린 여성이 깊게 이입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보통 남자 주인공을 보듬어주고 응원해주는, 혹은 그에게 변화의 계기를 주는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토르 영화 속의 ‘제인 포스터’가 그러하고, 엄청나게 흥행한 액션 영화 킹스맨 속 스웨덴 공주 역시 그러하다. ‘제인 포스터’는 능력 있는 천문학자이지만 그에 대한 어필은 찾아보기 힘들다.

토르를 돕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이 강조 되는 것이다. 킹스맨에는 록시, 가젤과 같이 인상 깊은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지만,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인 스웨덴 공주가 영웅을 위한 보상이 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퀄리티를 낮춰 놓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에 아예 이름을 가진 여성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여성 중심 영화는 커녕 여성이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영화가 드문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그렇다. ‘신세계’ ‘아수라’와 같이 남자만 우르르 등장하는 영화가 중심이 되고, 포스터는 온통 익숙한 남배우들의 얼굴로 덮여있다. 심지어 액션이 아닌 드라마 장르에서도 여성은 늘 뒷전, 누군가의 아내로, 딸로, 어머니로서의 역할로 등장한다. 믿기지 않는다면 등장인물을 확인해 보자. ‘ㅇㅇ모’, ‘ㅇㅇ댁’ ‘ㅇㅇ아내’ 등의 명칭이 넘쳐나고, 혹 이름이 있더라도 영화 속에서 자주 불리며 관객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지는 못한다.

 

물론 내가 언급한 영화 속에 등장한 여성들도 자신만의 개성과 성장, 활약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베테랑’ 속 황정민의 아내로 나와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 ‘주연’역 이라 던지, ‘퍼스트 어벤져’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적 지주이자 첫사랑, 실력 있는 여군인 ‘페기 카터’ 등이 있다. 둘 다 멋있는 여성의 면면을 선보이지만 ‘황정민의 아내.’ ‘캡틴 아메리카의 첫사랑’으로 기억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벡델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영화 속 성차별을 재어보는 지표로, 조건은 퍽 간단하다. 첫째,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두 명 포함할 것. 둘째, 여성 캐릭터끼리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셋째, 그 대화가 남성에 대한 것 이외의 다른 주제의 대화일 것. 이렇게 기본적이고 단순한 조건을 설마 충족 못 할까 싶지만, 사실 한국의 흥행영화 대부분은 첫 번째 조건에서 걸러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 영화 중 최다 관객을 모은 ‘명량’, 주연 중 여성은 단 하나고, 극중 역할은 ‘정씨 부인’이다. 두 명의 이름 있는 여성 캐릭터에 한참 부족하다.

 

두 번째 흥행작 ‘국제시장’. 여성 캐릭터는 넷 이지만 이름이 있는 캐릭터는 ‘영자’와 ‘끝순’ 대화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다른 이들과의 대화 역시 남성이 주제가 아닌 것은 없다. 마음속으로 영화 하나를 떠올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영화를 세어보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들 한다. 선천적인 성향일지, 후천적으로 벌어지는 차이일지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매체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확실한 것은 여자아이들은 자신과 닮은 곳이 없거나 적은 남성 캐릭터를 보며 공감하며 즐겨야 했다는 점이다.

 

여자아이들이 축구선수를 꿈꾸지 않는 이유가 과연 선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활동적이지 않아서일까? 그저 ‘저렇게 되고 싶어.’하고 말할 수 있는 대상, 혹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어.’하는 믿음을 주는 것들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여성들에게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보여주며 수많은 미래를 꿈 꿀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더 한계 없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은현 고1 「파주에서」틴 청소년 기자

 

#54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