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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㉞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책 펴낸 가족

입력 : 2016-04-27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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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한 가족위기 탈출 이야기

 

 
“저희는 책을 통한 작고도 큰 변화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이 실직과 파업으로 삶의 벼랑 끝에 선 가장이라면, 당신이 일을 위해 육아를 다소 포기한 워킹맘이거나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한 전업주부라면, 우리 가족의 성장기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쓴 김정은 유형선 부부가 쓴 머리말의 한 구절이다.

책으로 성장한 한 가족의 이야기이도 하지만, 가족의 성장을 위한 징검다리 같은 책이다.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5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맞으면 보통 ‘선물은 뭘로 하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선물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버려진다. 진짜 선물,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영혼을 키워주는 진짜 선물을 고민한 적이 있다. 여기, 그 진짜를 보여주는 가족이 있다. ‘책을 같이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

 

아빠의 파업, 엄마의 목디스크가 가족을 다시 만들다

부부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우연치않게 시작되었다.

 

유형선씨는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하게 되면서 144일동안 감원을 반대하는 파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부인 김정은씨는 출산 휴가도 3개월만 쉬었던 워크홀릭 프로그래머였다. 목디스크가 심해서 손가락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건강이 망가지자, 10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수민이 가족의 행복 물꼬 튼 ‘책 읽기’

 

 이렇게 부부가 자의든 타의든 평범하고도 상식적인 맞벌이 부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때 파주로 이사왔다.

 

그동안 부부는 육아를 부모님에게 의존하여왔다. 큰 딸 수민이가 태어나자마자 대전 친가에 맡겼다. 2년동안. 그리고 둘째 수린이가 태어나자 둘을 부산의 외가에 1년반 동안 맡겨 키웠다. 외할머니가 육아로 몸이 힘들어지자, 서울로 데려왔다. 큰 아이 7살, 둘째가 3살 때였다. 그러고도 맞벌이 한다고 육아도우미 아줌마에게 1년 반을 맡겼다.

 

이렇게 남의 손에 육아를 맡겼다가, 막상 집에 있게 되자, 김정은씨는 두 딸아이의 불신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열정을 다해왔던 프로그래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수치심이 끊이질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새벽시간 혼자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에게도, 할머니의 손 맛 가득했던 건강한 밥상 대신 엄마가 준비한 엉성한 식탁을 마주해야하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그저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내 딴에 정성 들인 음식도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공들여 집안 청소를 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육체 노동자로서 쓸모가 없어진 나는 나의 생산성 없음에 그저 한숨만 나왔다. 난 왜 태어난 걸까?”(‘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41쪽)

 

▲출판단지 헌책방 블루박스에서 수민이네 가족을 만났다.

 

엄마의 변신과 아빠의 동참, 책읽기로 행복 물꼬 터

우연히 들른 동사무소에서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을 위한 무료 집단 상담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 함께 했다. 각자의 현실에서 서로 다른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던 열 명의 엄마들은 권정생의 ‘강아지똥’과 우쓰기 미호의 ‘치킨 마스크’를 함께 읽었다. 그 책을 통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라’는 깊은 감동을 얻었다.

 

그리고, 스스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침대에 누어서 텔레비전 앞에만 있던 김정은씨는 “다른 엄마들이 맛있는 음식 만들고 집안을 깨끗하게 하여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마음으로 그림책을 집었다.”고 말한다. 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자신도 치유되었고, 수치심도 사라졌다.

 

김정은씨가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고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남편 유형선씨도 끼어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 행복이라는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영유아기를 떨어져 지내 엄마를 불신하는 아이들과 엄마를 이어준 것이 책이었고, 가족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 인문학이었다.

 

‘그림책 여행가’ 독서 모임도 만들고, 책읽어주기 봉사활동

2011년 조리도서관이 개관하자, 온가족 합산하여 최대로 빌릴 수 있는 28권 빌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또 가서 책을 빌렸다. 이렇게 1년을 다녔다. 그리고 봉일천 성당의 ‘꼬마책갈피’라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그 때 만난 이애경씨에게서 그림책 이야기를 듣고 배웠다. 그러다가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문에 운정으로 이사를 왔고, 한빛도서관에서 6명이 모여 엄마들 독서 모임 [그림책 여행가]를 만들었다. 매년 신입 회원을 뽑는데, 올해는 4기를 모았다.

 

교육청에 등록한 동아리로, 학교 책읽어주기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김정은 씨는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책은 이 독서 모임의 4년간의 기록이기도 하다며, 동아리 엄마들에게 감사해했다.

 

엄마보다 언니가 더 좋은 이유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김정은 유형선 가족이 함께 읽고 공부했던 것을 가족 이야기와 잘 버무려 10개의 주제로 정리한 책이다. 각 장마다 아빠 유형선씨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쓴 ‘아빠의 편지’가 있고, 주제에 맞는 책을 어린이, 청소년, 성인으로 나누어 권하고 있다. 아이에 맞게, 또는 주제별로 선택해서 책읽기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정리되어있다.

 

‘형제’라는 주제로 정리된 4장에 나오는 큰 딸 수민이 얘기가 감동적이다.

 

수민이가 동생이 엄마보다 자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려준다고 ‘청소년용 맹자’를 들고 왔단다.

‘큰 아이 말에 따르면, 동생의 마음을 얻는 법 또한 군자가 천하를 얻는 법과 그 원리가 같단다. 첫 번째로 동생이 생겼다면, 두 번째로 동생의 마음을 얻어야하며, 세 번째로 동생이 원하는 것은 베풀고 동생이 원하지 않는 것은 베풀지 않아야 한다. 동생의 마음을 얻는 것을 군자가 천하를 얻는 것에 빗댄 큰 아이의 통 큰 비유에 나는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101쪽)

 

수민에게 물었다. “아빠가 친절해? 엄마가 친절해?” 질문을 하고나서 왜 우리는 이렇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질문하게 될까하며 속이 불편했다. 그래도 수민이는 빙그레 웃으며 “아빠가 친절해요.”라고 답하고는 “같이 책을 읽는 게 좋았어요.”라고 덧붙인다. 책을 읽고 갔으면 형제애를 맹자에 빗대는 의젓한 수민에게 이렇게 유치한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걸.

 

▲책밥 먹고 자란 수민과 수린

 

중년 남자가 사는 법-파업에서 철학으로

아빠들이 책 읽기 모임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술이 한 잔 들어가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털어놓는 게 세태인데. 유형선씨는 어떻게 가족과 함께 책을 읽게 되었을까?

 

유형선씨의 변신은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하던 회사가 어느날 매각을 발표했다.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어요.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회사. 그래서 MBA(경영학 석사과정) 가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먹게 되었어요.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MBA과정을 마친 선배가 ‘첫사랑을 만나는 것 같은 열망이 있다면 가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냥 먹고 살려고 가려던 것이었죠.”

 

그때 떠오른 것이 자신이 좋아했던 ‘철학’이었다. 그래서 3개의 독서모임을 다녔지요. 그중 구본형 선생님의 ‘꿈벗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매주 1권의 고전을 읽고 A4 20쪽짜리 리뷰와 칼럼을 내야했다. 월요일 12시까지 내지 않으면 짤리니 잠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50권의 고전을 그렇게 읽었다. 1년을 그렇게 공부하고 나니 중심이 보였다. 유형선씨가 2014년 9기 연구원이고, 이어서 아니 김정은씨도 10기 연구원으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 꿈벗여행을 하고 나니 그림책이 달리보이고 이제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이다.

 

“가족이 나의 스승이예요”

고전 공부를 통해 중심을 잡고, 아이들과 인문학의 세계를 풍성히 맛보면서, 이 가족은 자유롭고 행복해졌다. 책을 먹고 자란 이 김정은 유형선 유수민 유수린 가족에게 ‘책밥가족’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싶었다.

 

“자녀로부터 배우고, 아내로부터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면 가정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편의 파업을 계기로 기존의 시스템을 벗어난 생활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벗어났죠. 그런데 우리들은 아이들이 자유와 행복이 충만하게 살기를 원하면서 기존의 시스템에 얽매어 있잖아요. 아이들도 시스템에 쫓아가도록 교육하게 되고. 그런 부모가 아니라,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도록 교육하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의 동심을 찾고 아이들을 쫓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김정은씨의 말이다.

 

아빠 유형선씨가 거든다. “자식이 스승이 되는 것, 가족이 나의 스승이예요.”

 
수민에게 물었다. “이 신문을 읽는 파주시민, 아니 이웃들에게 한마디 말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웃고 웃고 또 웃다가 수민이가 말했다. “과외를 다니는 게 좋은 게 아니라고…애들이 놀 때는 놀아야 하는데….”

 

맞다 놀아야 할 때 놀아야 한다. 그게 고전에서 하는 말이 아니던가?

 

 

 

글 사진 임현주 기자

1면 사진 유형선 제공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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