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 신간 소개> 무인도 글 그림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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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신간 소개> 무인도
글 그림 강홍구
108×176mm / 양장 / 240면 / 작품 40점 / 17,000원
미술가 강홍구는 디지털 사진을 매체로 재개발 구역과 도시 공간, 작가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 등에 관한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신안군에는 1,025개의 섬이 있고,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그중 953곳이 무인도다. 작가는 2005년 무렵부터 약 이십 년 동안 신안군의 수많은 무인도 사진을 찍어 왔다. ‘무인도’ 연작은 그 사진들 위에 아크릴로 여러 대상을 그려 넣은 것으로, 2022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약 150점이 제작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무인도』는 그중 40점을 골라 그에 알맞은 글과 함께 엮은 그림 산문집으로, 그의 작업 세계에 바탕이 된 이야기와 추억을 엿볼 수 있다.
무인도 위에는 짜장면, 빨랫감, 연필, 눈사람 등의 뜻밖의 대상들이 비현실적으로 섬에 비해 큼직하게 놓여 있다. 이들은 강홍구에게 ‘꿈의 장소’인 무인도에 관한 몽상적 표현일 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살아온 경험과 욕망, 때로는 마음속 깊이 자리한 무의식의 발현이기도 하다. 무인도란 눈앞의 현실이자 몽상의 대상이라는 메시지가 책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무인도’ 연작과 글 모두에서 드러난다. 섬 소년의 성장기부터 대학과 교직 생활 중 겪었던 일, 미술가가 되기까지의 궤적, 세상과 미술계에 던지는 사유와 목소리 등이 솔직담백하고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 그가 들려주는 꿈같은 이야기 속으로 점차 빠져들게 된다.
섬 소년, 기억 속 무인도를 오가며
책을 펼치면, 글과 그림이 함께 흐르지 않고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에세이에 해당하는 ‘무인도—글’이 나오는데, 각 글 끝에 일종의 섬네일처럼 해당 작품을 흑백으로 작게 넣고 그 아래 원색 도판이 인쇄된 페이지 번호를 표시했다. 컬러 화보를 ‘무인도—작품’으로 모아 뒤쪽에 별도 배치한 이러한 방식은, 글에서 작품으로, 작품에서 글로 독자가 ‘이동’해 가야만 하는 낯선 읽기를 유도한다. 다소 번거로운 이같은 독서 행위를 통해, 독자들은 책이라는 물성 안에서 작가가 신안 바다의 이 섬 저 섬을 오갔던 거리, 대상들을 찍었을 때의 시간을 간접적으로나마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납작한 지면 위에 삼차원의 무인도가 펼쳐지고 작가가 풀어내는 풍성한 이야기에 접속되듯이 말이다. 더불어, ‘무인도’ 연작은 아니지만 작가가 직접 그린 〈신안전도〉를 함께 수록하고 ‘작품 목록’에 섬이 위치한 지리 정보를 밝힘으로써, 이 무인도들이 꿈의 장소이자 동시에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글은 자유롭고 분방하게 흐르지만, 크게는 섬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와, 미술로 밥을 먹고 사는 작가가 되면서 겪은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소풍날이 하필 모내기를 하는 날이라 집에서 아무도 밥을 챙겨 주지 않아 혼자 찌그러진 양재기에 담긴 팥밥을 싸 들고 가서 먹고, 밀가루를 처음 먹어 보고 그 맛에 놀라워했으며, 장날에 갔다가 배를 놓친 사람들이 무인도에 봉화를 켜고 기다리던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지금은 목포에서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만재도에 여섯 시간 넘게 걸려 가야만 했던 시절이다. 당시 섬에서 쓰던 삘기, 껄떼기와 같은 방언을 곳곳에 그대로 사용해 향토적 분위기를 풍기는 문장들은, 어린 시절 그가 섬 소년으로 자랐던 추억들을 세세하게 전해 준다.
석유 등잔불이 발전기를 사용한 전등이 되고, 전등이 전깃불이 되었다. 이 급격한 현대화의 시간을 거쳐 디지털 매체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된 강홍구는 ‘무인도’ 연작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것들을 다시 여기로 가져온다. 기억 저편의 흩어진 조각들을 꺼내고 모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내는 이같은 행위는, 그것이 한갓 사적 노스탤지어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작은 울림과 발견이 되어 주기 바라는 예술가의 소박한 몸짓이다. 섬을 떠나 교육 대학과 미술 대학에 진학하고, 수십 번 이사를 다니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 등 성인이 되어 살면서 마주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진솔하고 담담하게,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털어놓는다. 선도를 대표하는 수선화, 학교 운동장의 동상들, 피아노, 배추, 지게…. 작품 속 그림들은 일차적으로 작가의 개인적 기억과 연결되지만, 우리들 역시 각자의 기억 속 사물과 사연들을 하나씩 꺼내 떠올려 보게 된다.
미술로 먹고살기, 작가로 살아남기
이 책에는 예술적 열정과 노력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작업해 온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사연과 함께 담겨 있다. 강홍구는 예술가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재능을 말하며 ‘지속성’과 ‘열정’을 꼽는다. 「바다의 색깔」에서 뭔가를 표현하려는 욕망과 좌절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작가로서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데, 그는 “바다의 색을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물감으로 표현하거나 사진을 찍어내는 것은 가능할까?” 묻고는 이내 “당연히 불가능하다”며 자신은 그저 그 색깔 언저리를 얼쩡거릴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좌절감이 작업을 하는 동력이 되는 작가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는 자신을 바다를 응시하는 그림 속 황새에 빗대어 글을 끝맺는다.
미술가가 되고 나서도 그 여정은 이렇듯 실패와 번민의 연속이었는데, 작가가 되기까지의 길 역시도 험난했다. 유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외상으로 도구를 사서 부려놓았지만 차마 집에 연락하지 못해 풀밭에서 흐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목탄을 써 보고 싶어 나뭇가지를 직접 구워 쓰기도 했다. 비록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미술은 거부할 수 없이 그의 삶 속에 점차 스며들었고, 염판에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어느새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형성한 미술가로 성장했다.
“빈 캔버스를 이젤 위에 올려놓고 바라볼 때의 막막함은 화가라면 누구나 느끼는 일이다. 막연한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기대와 두려움은 습작생 시절에도, 작가로 살아가면서도 늘 겪는다. 내 경우도 그렇다. 화가나 미술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고 작업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운명이고 달리 보면 선택의 연속이 만들어낸 결과이다.”—「그림의 시작」 중에서
그는 미술가로서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가로 성공하는 것에 대해 “단지 나이가 들어 가면서도 할 이야기가 있고, 나름의 방법으로 꾸준히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세잔, 겸재, 렘브란트, 단원, 수화 등의 작가처럼 말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꾸준함’의 태도를 읽게 된다. 바로 자기만의 시각을 견지하고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 나아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가 강조하듯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객관적인 좌표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강홍구는 “개인적인 것 이상의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별 할 말이 없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지 않고 써 두지 않으면 그냥 묻힐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읽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고 털어놓는다. 그의 추억들을 묻어 두지 않고 풀어놓고 공유함으로써, 지칠 때 찾아가 몽상하며 쉴 수 있는 무인도라는 공간을 내주었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자기 자신에게 그곳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한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무인도가 하나씩 필요한 시절이니, 저마다의 무인도를 찾아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바다에 누워 송장헤엄을 치면서” 그 몽상의 섬을 바라보자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위 그늘에 누워 한잠 자고 와도 된다고.
저자 소개
강홍구(姜洪求)는 1956년 전남 신안군 지도읍 어의도에서 태어났다. 목포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육 년 동안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디지털 사진을 매체로 재개발 구역과 도시 공간, 고향인 신안군 등에 관한 다양한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삼성미술관플라토, 원앤제이갤러리, 고은사진미술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사비나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단체전에 참가했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가상, 2008년 동강사진상을 수상했고,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우민아트센터, 고은사진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 『디카를 들고 어슬렁』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20년 후』 『아틀리에 탐험기』, 작품집으로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집, 꽃, 마을—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 『신안 바다』 등이 있다.
차례
책머리에
무인도—글
구렁이섬의 황금
바다와 나비
황포 돛배
배추의 기억
수선화섬
바다의 색깔
등잔불에서 전깃불까지
장날의 봉화
갯메꽃과 칠면초
함박눈 소리
찔레꽃과 소풍
무가 뽑힌 자리
짜장면과 식빵
지게의 역사
말린 생선, 혹은 장소 맞춤 설치 미술
어머니와 함께
매화와 단원
그림의 시작
연필이라는 뼈
하모니카와 바이올린
꽃밭에서
독서하는 소녀와 이승복
빨래 말리기 좋은 날
노근란의 뿌리
무인도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풍금 소리
바위섬 위의 니케상
피아노를 새로 만나다
종이비행기와 물 감옥
바위섬 위의 롱샹성당
사람의 집
사진, B급 작가의 시작
사진이라는 매체
가거도의 숲에서
섬들은 죄가 없다
작가로 살아남기
마을들이 사라진다
어린 왕자의 마지막
수화의 별
서른다섯 번의 이사
무인도—작품
수록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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