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147> ‘이날치’ 보컬 안이호, ‘동양고주파’ 퍼커션 장도혁 -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를 흔드는 아티스트
수정 : 2025-04-21 23:54:45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147> ‘이날치’ 보컬 안이호, ‘동양고주파’ 퍼커션 장도혁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를 흔드는 아티스트
- “음악이 결속이나 연대를 다질 때 항상 앞에 있었어요.”
▲동양고주파 밴드의 장도혁과 이날치 밴드의 안이호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가장 세계적인 수준을 보여준 아티스트가 파주에 산다.
이날치의 보컬이자 정통 소리꾼 안이호가 그 주인공이다. 2021년,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범내려온다'란 곡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젠 해외까지 진출한 밴드 '이날치'의 대표곡이다. 이날치는 2019년에 결성된 밴드로 판소리를 대중음악으로 재해석하는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한 명이 있다. 타악기 연주자 장도혁. 그는 버스킹 밴드 '일단은 준석이들', 사이키델릭포크록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 등을 거쳐 지금은 '동양고주파'란 팀에 속해 있다. 동양고주파는 베이스, 퍼커션, 양금으로 이뤄진 3인조 밴드이다. 모두 록 음악이나 밴드를 좋아하는 리스너들에게 두루 지지를 받은 팀이다. 그는 쉽게 규정되지 않는 색깔로 늘 새로움을 탐구하는 뮤지션이다.
파주출판단지 목요일카페에서 음악과 삶, 그리고 사회에 관한 두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었다.
▲ 파주시민 장도혁과 안이호
파주시민 안이호와 장도혁
장도혁은 2023년 10월 파주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안이호도 파주시민이 됐다. 공연장에서 오며 가며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는 사이였는데 산책을 통해 친해졌다. 같은 단지에 거주해 코스가 자주 겹쳤고, 그 후 서로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생활 패턴도 비슷해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다.
두 아티스트가 파주를 선택한 이유와 바라보는 시선은 비슷했다. 파주의 다양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장도혁은 파주의 분위기와 그 아름다움에 반했다.
"이사 오기 전부터 파주는 항상 후보에 있었어요. 벚꽃 보러 데이트를 자주 왔었거든요. 이름은 잘 기억 안 나는데 정말 한 마을 안에서만 하는 벚꽃축제가 있었어요. 거기를 좋아해서 자주 갔었고, 출판단지 근처 카페 오는 것도 좋아했어요.“
“심학산과 한강 라인을 지킨 원칙이 아름다워”
안이호는 아내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위대한 계약 : 파주, 책, 도시>를 보고 이주를 결심했다. 파주출판도시를 만드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가 본 건 빈 땅을 채우는 사람들의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열정을 담아낸 원칙들이었다.
“이날치 장영규 감독님 작업실이 파주였어요. 첫 느낌은 생각보다 가깝고 저런 곳에 살고 싶다 정도였어요. 그리고 <위대한 계약>을 봤죠. 근데 출판도시를 만드는 분들의 원칙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습지를 보존해서 공원을 만들고 심학산과 한강 라인을 침해하지 않도록 건물 높이를 맞추고... 그 후로 파주가 다르게 보였어요. 아, 내 시야가 그 분들의 원칙 덕분에 이렇게 개운했구나. 금전적 풍요도 좋지만 여기 오면 일상의 풍요를 가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두 아티스트의 말에 따르면 아름다움과 원칙은 결국 연결된 것이다. 원칙은 결국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아름다움 또한 원칙을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파주의 날씨와 노을 얘기를 덧붙였다. 서울에선 알 수 없었던 맑은 날씨, 자유로의 불타는 노을을 보며 파주로 온 건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 이날치 밴드의 보컬 안이호
이날치의 안이호, 나를 만든 고마운 선생님들
판소리는 보통 한 선생님을 찾아가 그 밑에서 쭉 수련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안이호의 경우 그 반대였다. 중학교 3학년, 인테리어를 하시던 부모님이 새로 이사 온 집의 일을 받으셨는데, 그 집의 주인이 바로 첫 사사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댁에 도배나 커튼, 장판 등을 부모님이 도맡아하셨는데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어요. 또 선생님 조카가 저랑 같은 반이었어요. 그 친구는 이미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고요. 나중에 제가 선생님의 조카이고 고모한테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고 학교에 헛소문이 돌기도 했대요."
우연과 오해는 계속 겹쳤다. 어느 날 우향숙 음악 선생님이 예고 준비하냐고 물어보더니 ‘제자 예고 보내기’에 돌입했다.
"저랑 그 조카 친구는 점심시간마다 음악실에서 악보 그리는 법부터 시창, 청음을 배웠어요. 급식이 없어서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다 까먹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죠."
서명숙 담임 선생님은 그에게 진로와 진정한 행복의 관계를 가르쳤다.
"예고 간다고 소문이 나자 진로지도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혼냈었어요. 서명숙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이 다른 선생님께 혼나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시는 분이었거든요. 맞은 게 억울해서 바로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너 그걸 하면 행복하겠니?” 선생님 본인의 얘기가 이어졌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가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는데 그게 대단한 행복이나 부귀영화는 주지 않더라는 말이었다.
“음악으로 행복하다면 어떻게든 밥벌이는 될 거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큼 좋은 삶이 어디있겠냐고 하셨어요. 사춘기 소년 마음을 뒤흔들었죠.”
▲ 동양고주파 밴드에서 퍼커션을 연주하는 장도혁 (위 사진 맨우측/ 아래사진 좌측)
시골소년 장도혁, “없으면 만든다, 스쿨밴드!”
장도혁은 시골의 끼있는 아이였다. 노래를 시키면 빼는 법이 없었다.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직접 스쿨밴드를 만든다.
“제가 곡성, 시골 출신이예요. 전교생이 4~50명밖에 없는 학교를 다녔어요. 서로 다 알고 친하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시키면 그냥 다 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자라서 고등학교 때 스쿨밴드 만들고, 대학교 때는 취미로 음악을 하다가 갑자기 음악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학을 하고 음악관련 학교를 1년 다녔죠. 거기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타악기를 접했어요. 그 때가 스물 넷 정도였어요."
그는 처음엔 카페 같은 곳에서 들리는 대중적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네 다섯 개의 밴드를 거치며 자신의 반골 기질을 깨달았다. 보컬이 없는 음악을 좋아하는 걸 보니 비주류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동양고주파의 음악이 음원보다 라이브에서 더 잘 전달된다고 여기며, 가사가 없어도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한다.
“사실 저는 어떤 의의나 의미를 가지고 밴드를 시작한 게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악기가 궁금하고, 연주했을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걸로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보컬 있는 팀도 했고, 지금은 연주 밴드를 하는데 혼자서도 또 뭔가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아니면 다른 악기랑도 새로운 걸 해보고 싶고 이런 과정에 있는 거 같아요. 결국 하고 싶은 뭔가를 몸으로 전달하는 것 같아요.”
▲ 이날치 밴드
이날치의 안이호, 판소리꾼 안이호
안이호는 이날치의 보컬과 판소리 소리꾼, 두 가지 정체성의 아티스트다. 그는 그 구분을 설명하면서 독특한 설명을 곁들인다.
“두 가지가 정말 달라요. 이날치 무대에서는 그냥 보컬 안이호로서 무대에 서있는 느낌이예요. 근데 판소리를 할 때는 살짝 한꺼풀 뒤에 있는 거 같아요. 고수하고 둘이서만 무대를 채워야 하니까 다 까발려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제 앞에는 이야기가 있어요. 원래 그렇게 지어진 이야기가 있고 전 그 순간에 어떤 인물이나 상황에 제 해석을 꺼내놓는 거 같아요. 이날치 무대는 여러 명과 함께 하니까 서로 의지하긴 해요. 그래도 저 개인에 관해선 필터 없이 그냥 툭 나와있다는 느낌이예요.”
“음악은 공무원처럼,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해야”
장도혁은 음악은 공무원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안이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무원의 이미지가 정시출퇴근, 꾸준함, 성실함이잖아요. 저희는 프리랜서란 면에서 스스로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나태해져요. 형(안이호)이 계속 노래를 연마하듯이 저도 계속 연주 연습을 해야하는 거죠.”
장도혁은 번뜩임보단 꾸준한 기록과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 경험으로 얻어낸 자신만의 창작 방식이다.
“어떤 게 트리거로 작용해서 영감을 주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상도 단조로운 편이고요. 근데 뭔가 생각이 나면 다 기록을 남겨요. 그리고 그걸 데이터베이스화 시키고 그걸 계속 들으면서 음악을 전개해요. 오늘은 어떤 것에 관해서 곡을 쓰겠다 이러지는 않아요. 곡의 해설을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 반대로 곡을 쓴 후 이게 어떻게 느껴지는구나, 라고 앞뒤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안이호는 가사를 쓸 때 영화처럼 이미지를 떠올린다. 구체적인 상상을 통한 작업 방식이다.
“예전에 했던 작업 중 조선소 얘기가 있었어요. 조선소에 혼자 있으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더울까, 추울까, 어떤 계절일까 이런 식으로 이야기처럼 접근하는 쪽이예요.”
▲파주 출판도시 목요일 카페에서 인터뷰중인 두 아티스트
“음악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두 아티스트의 음악관은 확고하고 아름답다. 안이호와 장도혁에게 음악이란 단순히 직업을 넘어서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사회와 음악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장도혁은 음악을 연대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점을 강조했다.
“음악이 다른 예술 매체보다 결속이나 연대를 다질 때 항상 선두에 있었어요. 가장 생명력이 긴 것도 음악이라 생각해요. 반전이나 반핵, 또는 히피 운동 등 저항 정신을 주도했던 수단이었잖아요. 밥 딜런이나 존 레논의 평화적인 메시지 등을 접할 때처럼 감정적인 결속을 다질 때 가장 효율적인 거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항상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팀은 아니지만 거기에 의미를 붙이고 재해석하는 건 청자들의 몫이죠.”
안이호는 인간이 음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음악을 듣는다는 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란 뜻이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는 사람들은 평생 음악을 듣지 않았을 거라 느껴져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음악을 가까이 두고 살면 어떨까 생각해요. 혼자 피아노를 치더라도 내 손발이 이 악기를 어루만졌을 때 어떤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귀 기울이게 되잖아요. 일상에 음악을 가까이 둔다는 것은 더 잘 살피고 잘 듣게된다는 것 같아요. 자신만 알고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평소에 음악을 듣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이호는 최근 탄핵 촉구 집회에서 열정적인 공연과 발언을 한 바 있다. 인간이 어떤 태도로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는 음악에 빗대어 설명했다. 나의 행동과 세상이 반응하는 소리에 섬세해지는 것, 그게 바로 그가 바라보는 음악의 본질이다.
파주 공연을 기대하며
안이호는 올여름 이날치 정규 2집 출시를 목표로 앨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공연도 예정돼 있다. 통영 공연 후 7월엔 3주간 유럽에 간다. 장도혁은 서울, 김해, 춘향제에서 동양고주파 공연을 한다. 춘향제엔 이날치도 참여한다.
두 아티스트 모두 파주에서 공연해 본 경험이 있다. 안이호는 재작년 지지향에서 열린 쌈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장도혁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음악제에서 몇 차례 공연했다. 현재 예정은 없지만 파주에서도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줄 날을 기대하고 있다.
“파주에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같이 엮어서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요.” 안이호가 재작년 공연 때 느낀 점이다. 장도혁은 파주가 공연 장소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홍대에서 소규모 책방 콘서트를 꽤 하거든요. 파주에도 이런 게 있으면 재밌을 거 같아요.”
아름다운 도시엔 아름다운 사람이 산다. 반대로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도 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쯤 안이호의 작업실 창문엔 꿩이 온다고 한다. 그저 한참을 보다가 어디론가 가버린다고. 지금쯤 그의 작업실에 꿩이 왔을까. 곧 따뜻한 봄이 오니 다들 행복한 마음으로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장도혁의 말처럼 파주에서 두 사람의 무대를 곧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인터뷰어 임현주
기자 최홍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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