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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열의 미디어칼럼 (22) 원인을 묻는 언론이 필요하다

오피니언 | 작성일: 2025-12-17 18:45:02 | 수정일: 2025-12-17 18:45:02

윤장열의 미디어칼럼 (22) 원인을 묻는 언론이 필요하다

 

윤장열(언론학자)

 

얼마 전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지면서많은 언론 보도는 급식 공백과 학생 피해를 전면에 내세웠다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학생들의 모습학부모들의 불안학교 현장의 혼란이 반복적으로 재현됐다그러나 이러한 보도 방식은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비켜간다왜 이 노동자들은 파업이라는 선택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이다.

 

파업은 언제나 불편을 동반한다이때 언론의 역할은 그 불편 자체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오히려 그 불편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원인과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급식 노동자들의 경우고강도의 노동환경과 반복적인 건강 위협친환경 재료 손질과 수제 조리로 인한 업무 과중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방학 중 무급 구조그리고 겸직 제한까지 수많은 쟁점이 존재해 왔다그럼에도 많은 보도에서 이러한 현실은 부차적인 설명으로 밀려나고파업으로 인한 불편만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보도는 결과적으로 책임의 화살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게 한다마치 파업이 이기적인 선택인 것처럼공공서비스의 중단이 노동자 개인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그러나 공공서비스를 유지해 온 것은 오히려 이들의 장시간 노동과 감내의 역사였다그 노동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타난 것이 파업이라면언론은 당연히 그 지점이 무엇인지 조명해야 한다.

 

실제로 독일 베를린에서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을 때언론은 단순히 교통 혼란이나 시민 불편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시민들이 파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묻는 것을 보았다베를린 지역 언론이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지하철 파업으로 일상적인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상당한 비율로 나타난 바 있다.

 

언론 보도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여론 수치가 아니다시민들은 불편을 느끼면서도그 불편의 원인이 무엇인지그리고 공공교통을 지탱하는 노동이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는지를 함께 사고하고 있었다언론은 이러한 시민 인식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파업을 이기적 행동이나 사회적 민폐로 단순화하지 않고사회 전체가 감내해야 할 구조적 문제로 공론화했다이는 언론이 갈등을 자극하기보다사회적 판단의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언론이 무엇을 비추고 무엇을 생략하는가는 여론 형성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불편만을 강조할 것인지아니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시민들이 왜 연대의 판단을 내리는지를 함께 전달할 것인지는 언론의 선택이다특히 공공 영역의 노동 문제를 다룰 때언론은 소비자의 불편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공공서비스를 지탱하는 노동의 조건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주목해야 한다.

 

최근 급식 노동자 파업 보도는 우리 언론이 어떤 기준으로 노동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노동을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만 다룰 것인지아니면 인간의 안전과 존엄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 말이다베를린의 사례가 보여주듯시민들은 언제나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충분한 정보가 제공될 때시민들은 불편 속에서도 사회적 연대를 선택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언론은 불편을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언론이 아니라그 불편이 발생한 이유를 끝까지 묻고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제시하는 언론이다파업을 사건으로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그 파업이 드러내는 구조적 균열을 설명하는 것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언론이 회복해야 할 공적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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