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설치미술가 황 란 - 단추로 우뚝 선 세계적 미술가, 유명 미술관에 다수 작품소장

입력 : 2023-06-01 06:47:25
수정 : 2023-07-03 02:45:13

예술은 나눔이다.

설치미술가 황 란

 

단추로 우뚝 선 세계적 미술가, 유명 미술관에 다수 작품소장

 

파주 출판 단지 회동길 끝자락에 위치한 RH스튜디오는 황란(63세) 설치 작가의 작업실이다. 회동길엔 여러 유명 작가의 작업실이 있지만, 빌딩 전체를 사용하는 작가는 드물다. 그만큼 작품 활동의 성과가 크고 활발하다는 표시가 아닐까. 작업장에 들어서니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로 가득하다.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올해 아트 부산에 출품할 작품을 위해서다. 그녀는 부산 태생으로, 97년 미국 뉴욕으로 도미해 SVA(School of Visual Art)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 Another Freedon FB H380xW1080Cm. 2021. Meta,Manhattan New York

 

IMF9/11 테러가 계기가 되어 시작된 단추 작업.

 

황 작가가 뉴욕에 도착한 후 얼마 안되어 IMF가 터졌다. 그녀도 학비를 벌기 위해 뉴욕의 패션 관련 업종에서 알바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9/11 테러 현장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졌다. 황 작가는 “내가 있는 곳 바로 건너편 쌍둥이 빌딩에서 화마를 견디다 못해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느끼게 되었고, 보잘 것 없는 물체인 단추를 통해 찰나적 삶의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단추 작가로 규정 짓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핀이다”라고 말한 황 작가는 “핀은 관계를 잇는 매개체 같은 것, 그리고 단추나 크리스탈같은 것은 전체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구성품이다”라고 말했다.

 

 

  ▲ 작품 이미지

 

,, 단추 같은 재료들은 나에겐 극세화에 쓰는 물감 같은 것

 “처음엔 벽에 설치 작업을 했다. 단추를 꿴 핀을 망치로 두드려 꽂고 그걸로 형상을 만들어 가는게 흥미로웠다”라고 밝힌 황 작가는 “재료들은 나에게 있어서 극세화 물감과 같다.”고 정의한다. 황 작가의 작품은 드로잉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전체 레이아웃, 실제 설치 테스트, 핀 레이져 타공, 실 연결 작업, 단추 설치 중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 고도의 정밀 작업이다. 촘촘하게 연결된 단추 작업에서 단 한 과정이라도 어긋나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매 단계가 완벽해야만 한다. 핀 사이의 거리, 핀의 깊이, 핀을 연결하는 실, 핀 위에 올릴 단추(한지, 크리스탈, 일반 단주, 구슬 등)의 종류 모두 황작가의 심계에서 기인한 결과다. 그리고 한지는 5겹으로 겹친 한지에 색을 입혀 타공한 후 사용하는데, 황 작가는 한지가 갖는 영속성과 한국적 소재로서의 감성에 주목했다.

 

 

▲ 두바이 전시광경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황란 작가

7-8명의 조수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황 작가는 마치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이 각 분야 마다 일일이 작업을 검수하는데 진심을 다한다. 조수에 대한 관리도 철저하다. 조수들은 본 작업에 투입되기 전 테스트와 훈련을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전 작업이 치밀하고 시스템화된 대형 작가인 셈이다. 세계적인 작가로 더 멀리 뻗어나갈 기반이 단단해 보이는 작업 방식이다. 독특한 소재와 방법으로 작업하는 황 란 작가의 작품은 작업 초기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Becoming Again, Coming Together 2017

 

페이스북 본사에 대형 조형물 설치, 펜데믹 시기에 희망을 노래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극심했던 2021년 가을, 미국의 메타(옛 페이스북) 기업은 9/11 테러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뉴욕에서 활동하는 뉴욕의 유명 작가들 중에서 황 란 작가를 선정해 본사에 그녀의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명은 ‘또 다른 자유’. 폭 10.8미터 높이 3.8미터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독수리와 봉황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생명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작품은 날렵한 진홍색 부리와 활짝 편 푸르고 큰 날개, 그리고 영롱한 꼬리를 흔들며 비상하는 생명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 들어간 핀 개수만 해도 족히 수만이 넘는다. 거기에 핏줄과 거미줄을 상징하는 수천가닥의 색실이 핀과 핀 사이를 연결하며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와 동양의 신비한 봉황새의 에너지가 합쳐져 함께 팬데믹을 극복하자는 희망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실 색깔을 다채롭게 쓰는 이유를 묻자 작가는 뉴욕을 이루는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라며 명쾌하게 답했다.

 

▲East wind from old palace H180XW360Cm 2012. brooklyn Museum

 

역대급 전시와 작품소장. 세계유명 갤러리와 소장에 진심인 컬렉터들

 

황 란 작가의 전시와 작품 소장처는 다양하다. 그녀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MASS MoCA 미술관, 퀸즈 미술관 등 뉴욕의 주요 화랑들과, 미국 플로리다의 Baker 미술관, 두바이의 레일라 헬러 갤러리(Leila Heller Gallery), 파리의 유네스코, 스위스의 카샤 힐드브랜드, 중국 베이징의 AAW, 한국의 학고재, 싱가폴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다. 그리고 2014년 에르메스 파운데이션에서 선정되어 싱가폴에서 개인전을 했고, 크리스챤 디올과도 작품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또한 미국 휴스턴 미술관과 브루클린 미술관, 중국 난징의 데지 아트 미술관, 두바이 왕족들과 윔블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도 그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잠실의 소피텔 앰배서더호텔과 광화문 포시즌 호텔, 회현동의 그랜드센트럴 로비에서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9월에는 청주 공예 비엔날레에서 9.6미터에 육박하는 벽 설치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며, 내년에 있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도 준비중이다

▲ Becoming Again B4 2021

 

작업이란 수행을 통해 내가 없어지는 종교적 과정과 같다

 

그녀는 잔잔한 수면처럼 차분하지만 누구보다 불타오르는 열정을 갖고 있다. 어릴적 서예를 하시던 부친을 따라 그림을 그리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불교 정서가 강한 집에서 성장했다. 흰 한지 단추로만 제작한 반가사유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 없이 많은 노고를 통해 한땀 한땀 만들어 가는 그녀 작업의 제작 과정도 어찌보면 불가의 수행과정과도 같다. 그녀도 자신의 작업을 자기 자신을 비우는 종교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그녀의 매화 연작에서 두드러진다. 밝게 개화한 화려한 꽃 밑으로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고 검은 가지에서 핀 꽃들이 만개한다. 서울과 뉴욕 스튜디오를 오가며 어둔 밤에 밝은 폭죽을 계속 터트리 듯 열정을 식히지 않는 황란 작가. 2010년부터 평면과 입체영상을 랩핑 비디오 설치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그녀는 최근에는 석화된 산호초 등 환경 이슈를 소재로 새로운 작업을 펼치고 있다. 아마도 그녀가 뜨거운 열정을 완전히 산화시키기 전에는, 그녀의 단추들이 또 다른 유명 미술관의 조명 빛 속에서 계속 반짝거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김석종 기자
#160호

 

▲ 잊혀진 물의 치유H173xW300Cm.2023 Leila Heller Gallery, Dubai

 

RAN HWANG,

www.ranwhang.com

ranhwang.art@gmail.com

파주시 회동길 503-3 (RH Art Studio)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