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 (131) 이영식 사진가 - 문산에서 43년째 사진관 운영하는 문산역사의 산 증인
수정 : 2023-04-22 07:41:31
아름다운 얼굴 (131) 이영식 사진가
- 문산에서 43년째 사진관 운영하는 문산역사의 산 증인
문산역을 나와 건널목을 건너 오른쪽으로 250여 미터를 걸어가면 왼쪽으로 컬러풀한 단독빌딩이 나온다. 밖으로 돌출된 세련된 간판 ‘이영식 사진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영식 사진작가는 이곳에서만 20년, 그 이전 문산 시내에서도 20여 년 등 모두 43년간 사진관을 운영했다. 사진관이 바쁜 와중에도 없는 시간을 쪼개작품활동을 꾸준히 하여 각종 전국전시대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진대전에서 입상, 서울신록사진촬영대회 금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1980년부터 사진관을 연 이래 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작가의 인생은 한마디로 자수성가(自手成家)다. 아무것도 없는 적수공권(赤手空拳) 상태에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켜낸 인간승리 그 자체이다.
“1천원을 1백만원으로 여기며 아껴 살아야”
지독하게 가난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큰 형이 말했다. “너희는 이제 고아다. 1천 원을 1백만 원으로 여기고 아끼며 살아야 한다. 그 아낀 돈이 나중에 너희들에게 1백만 원으로 돌아올 수 있다”라고. 그 말을 그는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그 당시 형님친구가 운영하던 사진관에 취업하며, 사진을 열심히 배웠다. 성실함과 실력을 보고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전속사진관인 시경옆 제일사진관에 스카웃되었다. 이어 문산에서 일하던 시절 이 작가의 근면함을 보아온 건물주가 이전 근무했었던 사진관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작가에게 사진관 인수 제의를 해왔다.
1980년 연미사진관을 열며 시작된 사진인생
이 작가는 건물보증금은 나중에 채워 넣고 일단 일을 시작해보라고 한 건물주의 배려로 1980년에 ‘연미 사진관’을 오픈했다. 한 사람과의 귀한 인연이 삶의 판도를 바꾸게 한 셈이다.
2000년에 현 위치로 이전해 이름을 이영식 사진관으로 개명했다. 그는 인상 전문 사진가다. 여권, 취업, 결혼, 돌, 가족, 군인, 그룹, 출장, 반려견 사진 등 그 어떤 사진도 촬영 노하우를 알기에 사진들이 다 훌륭하다. 그의 1층 접객실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안정된 구도 속에 표정들이 살아있다. 색감도 좋고 액자 마무리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도 값이 비싸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관 멸종 시대에도 그의 스튜디오는 건재하다.
빛의 작가로 통하는 차일만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본인이 세계 각국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 인화를 늘 이 작가에게 의뢰하는 걸 보면 그의 색감 구현은 탁월해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되며 큰 손실
필름을 사용하던 아날로그 시절에는 사진관과 사진 현상소가 동네마다 꼭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사진관과 현상소들은 속절없이 문을 닫았다. 그도 사진 축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큰 손실을 경험했다. 코니카 사진현상 인화기로 쉴새 없이 사진 프린트를 뽑아내던 시절이 사라지자 프린트 수요가 줄고, 약품 관리에 문제가 생겨 결국 2억여 원에 달하던 두 기기를 헐값에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손님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일년 내내 거의 쉬지 않는 성실함으로 버텨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빠”
하루도 쉬지 않는 성실함은 가족여행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가족여행은 당일 새벽 4시에 출발해 동해에 몸을 담그고 당일 저녁 춘천 닭갈비 먹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그 당시 가족들은 불평불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버지의 노력과 성실함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인정한다. 큰 딸은 교수가 주도하는 대학모임에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주저하지 않고 아빠를 외쳤다 한다. 자기 가족으로부터 인정을 넘어 존경받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 이영식씨의 작품 [임진각 평화누리-평화의 핀]
사진관 초기의 주요 고객은 군인들
그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의 문산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온통 논밭이 대부분이었고 달랑 역 하나와 주로 군인들이 오가던 도시였다. 그러나 점차 외지에서 인구들이 유입되면서 자유시장도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사진관을 차린 후 주로 촬영했던 대상은 군인들이었다. 꼼꼼하게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돌자 인근 부대 군단장, 사단장, 대대장들과 이제는 JSA 경비대대 요원 등 일반 사병들도 휴가 나오면 이영식 작가에게 포즈와 촬영을 맡긴다. 군 수뇌부 촬영에 대해 이 작가는 “예전에는 사단장이 촬영한다고 하면 사이드카가 출동하는 등 요란했으나 요즘은 보좌관과 단출하게 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그간의 시대변화를 이야기한다.
▲ 이영식씨의 작품 [문산통일공원 - 육탄10용사]
백일사진 주인공이 30년 지나 아들 백일 사진을 찍기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고추를 내놓고 백일 사진을 찍었던 사람이 30 여년 만에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와서 똑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었다. 또, 딸 다섯을 낳고 6번째로 아들을 본 부부의 아이들을 빠짐없이 촬영했던 일 등이다. 이 작가는 “6번째로 아들을 보았던 부부의 흐뭇해하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라고 회상한다.
문산에서만 43년간 사진관을 운영하다 보니 웬만한 문산의 토박이들은 다 알고있어, 이 인맥이 이영식 사진관을 돌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심지어 문산에서 살다가 운정이나 일산으로 이사 갔던 사람들도 그를 찾는다.
그는 인상사진 전문가이긴 하지만 풍경사진도 일가를 이루고 있다. 특히 그가 찍은 밤풍경 사진은 자체로 포스터를 만들어도 무방할 만큼 멋지다.
▲ 늘 함께하는 김미숙, 이영숙 부부
타고난 친화력으로 촬영을 돕는 아내 김미숙 씨
그는 사진 작가들과 지방 출사를 다니며 가끔 숨을 돌린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부인 김미숙(63세), 혹은 대를 이어 사진작가가 된 그의 아들이 자리를 지킨다. 부인 김 씨는 ”우리사진관에서 촬영하면 입사, 취업, 진급등이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사진 찍으러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라고 웃는다.
타고난 친근감과 부드러움으로 손님들의 미소를 끌어내는 매력이 있어 사진이 잘 나온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부부가 되어
두 부부가 만난 인연은 사진관에서였다. 부인 김 씨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 사진을 부탁하러 이 작가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 작가의 사진 찍는 모습에 끌려 사진을 핑계로 자주 들리게 되면서 4년 만에 주인과 손님은 부부가 됐다. 이영식 사진관은 실상 부인 김 씨의 도움 없이는 이만큼 크지 못했을 것 같다. 늘 함께 출근해 지금까지 같이 일하며 숱한 위기를 넘겼고 남편은 성실함으로 부인은 알뜰함과 친화력으로 사진관을 문산의 명소로 키워가고 있다.
▲문산종합복지관 어르신잔치 사진봉사
▲사진관을 찾은 아이들이 이영식부부가 하는 불우이웃돕기에 참여한다.
부부 모두 봉사활동에도 열심
이 작가는 문산종합복지관의 노인들의 잔치 사진 촬영을 무료 봉사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2천 원을 기부함에 넣게 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하기도 하는 등 사회봉사에도 열심이다. 부인은 라이온스클럽 백일홍의 20대 회장으로 일했다. 또 파주시 여성단체협의회 회장으로 크고 작은 봉사일에 헌신하고 있다. 2녀 1남을 잘 키워 시집·장가를 다 보냈고 6명의 손주 손자를 본 이 작가는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만한 성실한 인생을 살았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성공한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이영식 사진관: 파주시 문산읍 문산역로 139
E mail : lys45200@hanmail.net, 010 5355 2488
김석종 기자
#159호
▲ 이영식씨의 6명의 손자 손녀들
▲ 텃밭에서 고추를 따는 김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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